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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이런 ‘겸손한 제안’

등록 2010-01-11 19:15수정 2018-05-11 15:05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태어날 때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듯 일생 동안 쓸 탄소배출량을 지정받는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공평하게 일정한 양만 배정받는 거다. 각자의 수명은 예상할 수 없으니까 평균수명만큼씩만 계산해서 준다. 일찍 죽은 사람의 탄소배출량은 거래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피를 팔듯 탄소배출량을 부자들에게 조금씩 판다. 자신이 배출한 탄소량을 다 쓰면, 그걸 살 돈이 없으면, 당연히 죽을 수밖에 없다….

제설작업 하느라 바빠선가 쓰레기를 수거해 가지 않아 골목마다 쓰레기가 쌓였다. 춥다고 하루종일 보일러를 틀어놓았다. 하루 세끼 먹고 사는데 이렇게 쓰레기가 많이 나오나, 이렇게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나 궁리를 하다가 뭉게뭉게 상상력이 발동했다. 지구온난화 대처 방안으로 누구나 탄소배출량을 배정받고 태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서다. 유럽에선 공장마다 탄소배출량을 배정받고 그 이상 쓰면 다른 공장의 탄소배출량을 사다 써야 한다는데, 미래에 이런 법이 개인에게도 적용되지 말란 법이 없다.

온난화 문제와 더불어 저출산도 지구적 문제다. 아이들이 미래의 자원이자 노동력이라며 출산장려책을 쓰고 있지만, 정작 아이 낳을 사람들은 출산비 보조나 교육비 보조에 꿈쩍도 안 한다. 개발도상국이나 교육받은 인구가 많은 나라의 공통되는 현상이다.

이렇게 ‘겸손한 제안’을 한번 해본다.

…아이가 태어나면 국가는 성인이 되어 낳을 아이 수를 공평하게 지정해준다. 결혼할 때가 되면 아이를 낳아 기르고 교육시키고 결혼시키고 직장을 얻게 해주고 재산을 얼마나 물려줄 수 있는가를 심사해서 아이 수를 다시 결정한다. 재벌 아들과 재벌 딸이 결혼하면 그 부의 정도에 따라 백명을 낳아라, 천명을 낳아라 할 수 있다. 자녀 수는 권리이자 의무이다. 그러나 일부일처제가 법으로 규정되어 있으면 한 부부가 낳을 수 있는 자녀의 수가 한정된다. 국가의 미래가 달린 일인데 일부다처가, 일처다부가 대수이겠는가. 부자 남자는 가난한 여자를, 부자 여자는 가난한 남자를 여럿 거느리고 의무 자녀 수를 채워야 한다. 그렇게는 죽어도 못 한다고 하면 의무 자녀 수만큼 세금을 내게 한다. 몰락한 집안의 아이들을 사오는 방법도 있겠다. 아이를 판 사람은 그 돈으로 재산을 늘려 다시 아이를 낳을 수도 사올 수도 있다. 의무 자녀 수보다 더 키우는 사람에겐 세제 혜택을 왕창 준다. 어차피 승자독식의 세상이니까. 세상의 아이들은 전부 부자의 아이들이 될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으니까 가난은 당대에서 끝나고 세습되지 않을 것이고… 살지도 않는 집을 수십채씩 사두는 것보다 아이를 사서 키우는 일이 도덕적으로 국가적으로 낫다는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그리고 세상엔 부자만 살아남았다는… 해피엔딩 아니겠는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1700년대에 <겸손한 제안>이라는 통렬한 에세이를 썼다. 아일랜드 출신인 그는 아일랜드의 아이들을 포동포동하게 살찌워서 영국 귀족에게 식품으로 팔자는 제안을 했다. 아일랜드의 가난도 해소하고, 잉글랜드인들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아일랜드인들도 합법적으로 제거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영화 <아바타>를 보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풍자소설이나 공상과학판타지 영화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소재를 가져오는 것이고 현실에 대한 발언이자 고발이고 경고이다.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은 길이 미끄러워서 집안에 틀어박혀 책과 텔레비전, 영화를 끼고 뒹구는 동안 헛것도 많이 보고 판타지 내공도 부쩍 늘어난 때문이다. 어제 아침에 대통령이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 되고 싶으시다는 듯한 발언을 하셨다. 그 양반의 판타지 내공도 만만찮은 듯하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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