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YBANNER3%%] “스님, 어떻게 하면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지금 내려놓지 못해서 너무도 힘이 들어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과거의 상처를 내려놓지 못해서, 이룰 수 없는 내 안의 욕망을 내려놓지 못해서 괴롭다고 토로하는 분들이 많다.
예를 들어, 내게 상처를 준 누군가를 잊고 내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생각하지 말아야지 다짐할수록 더 생각이 나서 괴로워진다는 것이다. 또 어떤 경우는, 내가 정말로 이루고 싶었던 일에 문턱까지 다다랐는데 결국 이루지 못하고 좌절했을 때, 그걸 내려놓고 새로운 일을 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 삶을 시작해야 하는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과거의 욕망과 기억에 끄달리게 되는 것이다. 삶이 가져다주는 실망, 좌절은 누구나 경험한다.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흔히 “다 잊어,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 다 내려놓아”라고 조언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내려놓아야 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게다가 잊는 것도 쉽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잊고 싶은 사람, 잊고 싶은 일들은 아무리 내려놓으려 해도 이상하게 점점 더 생각이 나고, 실패했던 일들이 더 생생하게 떠오를 뿐이다. 내려놓고 비우기는커녕 괴로운 그 과거를 마음속에 담아놓은 채 ‘그리워하고’ 있는 셈이니,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어떻게 해야 정말 내려놓고 좀 편안해질 수 있을까? “내려놓는다”는 말은 사실 “받아들인다”의 다른 말이다. 과거에 있었던 기억을 없애고 지운다는 말이 아니고, 그 기억에 저항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를 실제로 힘들게 하는 것은 사실 그 과거의 일이 아니고, 그 과거의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리적 저항감이기 때문이다. 이 둘의 차이는 미묘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흔히 사람들은 내려놓기 위해 예전의 아픈 기억들을 무작정 없애려고, 참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힘들었던 과거의 기억을 잊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실제로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생각나고 더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능한 일이 있다. 바로, 과거의 기억 때문에 지금 힘들어하고 있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즉, 힘들어하는 지금의 나를 부정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어하는 나를 허락하는 것이다. 힘들어하는 나를 허락하게 되면, 허락하는 즉시 마음의 상태가 미묘하지만 곧 바뀌게 된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힘들어하는 나 자신, 내 마음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하루빨리 벗어나려고 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고 버거워했는데, 허락을 하고 나면 이상하게도 힘들어하는 마음이 계속 진행되지 않고 멈추게 된다. 그리고 나를 힘들게 했던 대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나 사이에 공간이 생기면서, 나를 좀더 자애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나를 힘들게 했던 대상과 내가 완전히 하나가 되어 그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했는데, 그것을 있는 그대로 허락하고 나면, 힘든 상태를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는 진정한 내가 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내 마음이 지금 힘들어하는구나. 힘들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마음아, 그동안 많이 아팠지?’ 하고 말이다. 여기까지 오면 힘들었던 기억에 저항했던 마음이 쉬게 되면서 좀 편안해진다. 힘든 것을 부정하거나 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허락하고 인정하는 노력을 하길 바란다. ‘좀 힘들어도 괜찮아, 좀 아파도 괜찮아.’ 마음속으로 속삭이며 내 안의 상처를 거부하지 말고 자애의 눈길로 보듬어주길 바란다. [%%BODYBANNER%%] 혜민 미국 햄프셔대학 종교학 교수 <한겨레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