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1%%]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직후 대학원에 입학했다. 장학금과 기숙사를 제공한다는 지방의 사립대학. 당시만 해도 대학원생에게 장학금과 기숙사를 제공하는 건 파격이었다. 서울에 있던 모교의 대학원 선배들은 본인 돈으로 등록금 내고 연구하던 시절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두뇌한국21(BK21)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대학원생의 노동에 대한 인식이 변하기 시작했다. 공부하는 학생이 무슨 임금을 받느냐는 오래된 인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얼마 전 브릭(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 게시판에 교수로 짐작되는 인물이 “대학원 인건비 착각… 제발 정신 차리길”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대학원 인건비란 원래 없는 거요”라는 훈계로 글을 시작해서 연구도 잘 못하면서 임금 타령만 하는 대학원생들을 저주하며 글을 끝냈다. 자본주의 사회의 교수는 조그만 구멍가게 사장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저 글을 쓴 인물은 알바를 고용하고 교묘하게 월급을 떼먹는 악덕 구멍가게 사장을 닮았다. 실상 교수들의 수준이 저기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노동권이 뭔지 모르는 평생 책상물림이기 때문이다.
학생 인건비 지원제도 하한선 규정이라는 게 생겼단다. 좀 복잡한 규정이긴 하지만, 하한선은 석사 월 80만원, 박사 120만원, 상한선은 석사 월 180만원, 박사 250만원이라고 한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에 월 80만원이면 시간당 몇천원도 안 되는 임금이다. 아마 저 돈을 아껴 등록금도 내야 하고 숙식도 해결해야 할 테니, 결국 월 80만원을 받는 서울 지역의 대학원생이라면 어쩔 수 없이 부모에게 손을 벌리거나 다른 알바라도 뛰어야 하는 셈이다.
대학원생노동조합의 역사는 1960년 후반 미국의 신좌파 운동과 유시(UC)버클리의 자유언론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과 캐나다의 대학원생들은 공격적으로 노조를 설립하고 학교와 정부를 상대로 협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사립대학의 노조 결성을 금지하는 2004년의 브라운 결정 때문에 대학원생노조는 험난한 길을 걸었지만, 2016년 전미노동관계위원회가 브라운 결정을 뒤집으면서 대학원생노조 설립에 물고를 텄다.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미국대학교수협회와 전미교육협회 등의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단체들이 대학원생노조와 그들의 단체교섭권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도 대학원생노조가 생겼다. 지난 2월24일 구슬아 위원장, 강태경 부위원장을 주축으로 하는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그 용기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구슬아 위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가속되는 대학의 기업화에 따라 대학원생은 노동계급 가운데 한 직종이 되었다”고 말했다. 적확한 지적이다. 한국 대학들이 학생들의 교육과 복지보다 재단 출연금 불리기에 몰두하며, 최순실 사태의 도화선을 제공한 건 교육기관의 본질을 벗어난 일이다. 대학을 기업처럼 운영하고 싶다면 당연히 노조의 설립도 감당해야 한다.
인분 교수, 스캔 노예 사건 등을 거치며 대학원생 인권 문제는 사회적 관심사로 부상했다. 대학원생 인건비 착복은 처참한 적폐다. 교수들에게도 변명의 여지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폐쇄적인 도제관계로 유지되는 대학원에서 교수는 권력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그 권력을 옳은 일에 써야 한다. 민교협의 대학원생노조 지지 발언은 반가운 일이다.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이 작은 용기의 씨앗을 퍼뜨려 학술 한국의 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노조가 없냐!” 이 한마디야말로 한국의 희망이다. 희망을 찾는다면 이들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