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긴급조치사람들’과 대법원의 책임 / 김이택

등록 2020-02-23 18:15수정 2020-02-24 02:38

영화 <남산의 부장들>엔 대통령 박정희의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 얘기가 등장한다. 실제 박 정권은 스위스 은행에 계좌를 두고 통치자금을 빼내 썼다.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아들은 1977년 미국 하원 프레이저 위원회에서 그 내막을 폭로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정보부장 김규평(김재규의 극 중 이름)이 박정희를 암살하기로 결심하는 과정에서 비밀계좌는 부마항쟁이나 경호실장과의 갈등 못잖게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거사 당일 김 부장이 경호실장에 의해 박정희가 탄 헬리콥터의 동승을 거부당하는 장면도 실제 상황이다.

김재규는 박정희가 부마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걸 보고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했다. 유신체제를 뒷받침한 게 유신헌법과 그에 따른 긴급조치였다. 1979년 박정희 암살 때까지 긴급조치가 9호까지 발령됐다. 이 가운데 1·2·9호 피해자만 114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참여정부 이래 과거사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지면서 법원을 통해 재심절차를 밟던 긴급조치 피해자들은 승소 배상금으로 공익재단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양승태 대법원이 ‘긴급조치는 고도의 정치적 국가 행위’라는 등의 이유로 기각하는 바람에 대부분 패소하고 말았다.

이들이 꾸린 ‘긴급조치사람들’은 최근 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노태악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임명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가 긴급조치 피해를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을 뒤집고 5건이나 기각한 때문이다. 그가 인용한 게 바로 ‘정치적 국가 행위’ 판례나 손해배상 시효 3년을 돌연 6개월로 당겨버린 대법원 판결들이었다. 모두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청와대에 바친 ‘정부 협조사례’로 사법농단 문건에 등장한다. 노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고법 부장판사로서 한 긴급조치 판결들의 문제점을 추궁하는 박지원·장제원 의원 질의에 끝까지 수정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다.

2017년 사법농단 논란 당시 ‘대법관 일동’은 ‘재판 거래는 없었다’는 집단성명을 냈다. 대법원은 이미 국민의 신뢰와 정당성을 잃은 판례를 바꿀 책임이 있다. 곧 본회의 표결을 앞둔 노 후보자가 대법관이 되면 판례 수정에 동의할까. 의지가 별로 안 보인다. 유감스럽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목련이여, 한동훈을 잊어다오 [유레카] 1.

목련이여, 한동훈을 잊어다오 [유레카]

윤석열이 사는 길 [강준만 칼럼] 2.

윤석열이 사는 길 [강준만 칼럼]

간호법 제정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왜냐면] 3.

간호법 제정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왜냐면]

대형병원 매출 연 2조원…돈벌이 수단된 생명 [왜냐면] 4.

대형병원 매출 연 2조원…돈벌이 수단된 생명 [왜냐면]

윤 대통령 착각이 불러올 파국의 위험 [박찬수 칼럼] 5.

윤 대통령 착각이 불러올 파국의 위험 [박찬수 칼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