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이승홍의 맞울림] 나의 정체성을 ‘허락’하겠다는 당신에게

등록 2020-02-23 18:17수정 2020-02-24 02:37

이승홍 ㅣ 녹색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얼마 전 군 당국은 성전환수술을 받고 복귀한 한 군인을 강제전역 조치했다. 의무조사 결과 고의에 의한 성기·고환 결손으로 간주되며 이것이 심신장애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주관적 성별이 태어날 때 지정된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었음을 고백하고 오랜 준비 끝에 성전환수술을 받은 사람에게 남성 기준의 의무조사 규정을 적용한 것은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법원은 성별정정을 위해 생식기관 제거 수술이나 생식능력이 상실되었음을 증명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군 당국은 고환을 제거한 남성 군인은 복무자격이 없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규정대로라면 어느 군인이 성별정정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결국 복무자격이 박탈될 수 있다. 군 당국은 뒤늦게 관련 규정을 정비했다지만 새 규정들도 해석에 따라 성전환자의 복무 유지가 가로막힐 여지가 있다는 비판이 있다. 반복되는 군에서의 차별, 배제가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파급효과를 또 한번 만든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곧바로 숙명여대에서는 성별정정까지 마친 트랜스젠더 여성이 아무런 절차적 문제가 없는데도 일부 학생들의 반대 여론에 위축되어 입학을 포기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을 뿐인데 뭇사람들이 이를 ‘반대’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삶을 영위한다. 우리는 각자의 모습대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정체성이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지는 연속성을 띤 주관적 느낌이다. 이는 태어날 때 완성된 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조건과 경험 속에서 점차 세분화되고 복잡해지는 과정을 거치며 자신만의 고유성을 향해 통합되어가는 것이다.

성 정체성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일부인데, 어떤 이들은 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과 자신이 내적으로 경험하는 성별이 다르다는 것을 생애의 어느 시점부터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불일치감이, 어쩌면 자기 생각이나 바람과 무관하게, 일관되게 되면 그는 일련의 숙고 끝에 그것이 자신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자신이 내적으로 경험하는 성별과 사회적 상황에서 대해지는 성별이 일치되기 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바람일 것이다. 세계 정신의학계에서도 성별 불일치를 더 이상 정신병리로 간주하고 있지 않으며 의학은 다만 그런 불일치를 줄이고자 하는 이들에게 호르몬요법이나 수술 등의 수단을 제공할 뿐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어느 쪽 성별에 속해 있느냐는 유무형의 질문 앞에 끊임없이 놓인다. 대다수는 자신이 그런 질문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인식도 못 하는 동안, 성별 불일치를 겪는 사람들은 남모르게 마음을 졸여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을 때 마주하게 되는 편견과 그것을 숨겨야 하는 데에서 오는 우울함 사이를 오가게 된다. 성전환이나 커밍아웃 이후 직업을 잃거나 포기하게 되는 경우는 언론에 알려진 것보다 많다.

이러한 차별은 일정 수준의 불편함을 뛰어넘는 개인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일정한 기준을 두고 성별정정을 허용하는 것은 트랜스젠더들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기본권을 침해받지 않고 직업적, 사회적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성소수자들을 배제하는 제도적 장벽들과 보이지 않는 차별들이 도처에 존재한다. 성인인데도 부모의 동의를 구하는 등의 불필요한 요건은 점차 생략되는 추세지만 법원의 성별정정 절차는 아직 외국에 비해 까다롭다. 성전환수술에 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기에 경제적인 이유로 수술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여전히 삶의 기본적인 조건들에서조차 차별받는 구조와 그러한 구조를 지탱하는 편견을 동시에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힘을 보태야 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간호법 제정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왜냐면] 1.

간호법 제정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왜냐면]

[사설] ‘국정방향 옳다’는 대통령, 그럼 국민이 바뀌어야 하나 2.

[사설] ‘국정방향 옳다’는 대통령, 그럼 국민이 바뀌어야 하나

이대로 3년 더 갈 수 있다는 오만과 착각 [아침햇발] 3.

이대로 3년 더 갈 수 있다는 오만과 착각 [아침햇발]

대형병원 매출 연 2조원…돈벌이 수단된 생명 [왜냐면] 4.

대형병원 매출 연 2조원…돈벌이 수단된 생명 [왜냐면]

목련이여, 한동훈을 잊어다오 [유레카] 5.

목련이여, 한동훈을 잊어다오 [유레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