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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세화 칼럼] 염치없는 두 거대정당을 심판하자

등록 2020-03-26 18:22수정 2020-03-27 02:40

4·15 총선이 3주도 남지 않은 오늘, “국민의 수준을 뛰어넘는 정부 없다”고 했던 19세기 유럽의 반동적 보수주의자의 말이 뇌리를 때린다. 우리는 3년 전 촛불을 들어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세력을 몰아냈다. 그랬던 우리의 정치의식은 오늘의 거대 양당 정치세력으로부터 알바니아나 레소토의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독일이나 뉴질랜드라면 감히 저지르지 못할 파렴치한 행위를 거대 양당이 노골적으로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독일에서 의석수를 늘리기 위해 위성정당이라는 꼼수나 변칙 행위를 벌이는 정당이 있다면 곧바로 유권자들로부터 배척될 것이다. 그들의 정치의식이 그런 반칙행위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그리고 그들의 위성정당들을 심판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초라하고 낮은 정치의식의 소유자임을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은 오랜 동안 국민의 의사를 과잉 대표해왔다. 적대적인 두 당이지만 대의제에 있어서는 공조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해왔다. 그 결과, 노동자와 서민, 장애인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국회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기 어려웠다. 이런 역사적 현실 앞에서 비례성 원칙을 지키는 선거제 개혁은 민주주의 성숙을 열망하는 국민의 일반의지에 속했고 촛불 시민의 가열 찬 요구의 하나였다. 실제로 우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법 개정을 위해 1년의 시간을 보냈다. ‘패스트트랙’이라는 말과 달리, 느리고 답답한 시간이었는데 우여곡절을 거쳐 통과된 개정안은 누더기에 가까웠다. 비례의석을 늘리지 않은 채였고 30석만 연동시키는 지극히 부족한 내용이어서 만족할 수 없었지만, 다음 단계의 성숙을 위한 작은 발판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 획득한 비례대표제가 오늘 어떤 모습을 드러내고 있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들의 놀이터가 되었다는 것이다! 민주시민이라면 이들을 심판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에 속한다. 최근 민변이 지적했듯이, 위성정당이 단지 꼼수, 반칙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훨씬 심각한 헌법적 문제점, 즉 헌법이 정한 대의제 정당민주주의 질서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미래통합당은 본디 사익 추구를 위해 염치를 내던진 집단에 가까웠다. 촛불의 힘으로 집권한 여당이라면 그들과 달리 꼼수와 변칙에 단호히 맞서고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믿고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민주주의 성숙을 도모해야 마땅했는데 적폐세력과 함께 진흙탕에 뛰어드는 편을 택했다. 미래한국당이 뻔뻔한 그들의 정체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면, 민주당은 ‘아닌 척하며 할 짓 다 하는’ 야바위꾼을 연출했다. 국회에서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가 대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결성된 ‘정치개혁연대’의 기류를 타고 위성정당의 필요성을 띄운 뒤 자기들 입맛에 맞는 ‘친문 친조국’ 세력인 ‘시민을위하여’를 플랫폼 정당으로 선택했다. 후보 중에 성소수자가 있다는 이유로 녹색당을 배제하는 등 다루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정당들은 내치고,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을 양념처럼 곁들였을 뿐이다. 노동당은 정치개혁연대로부터도 초청되지 않았다.

이처럼 거대 양당이 정치의 타락상을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정치지도자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열린민주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자들이 천명하듯, “지켜”주어야 할 국회의원이 많이 필요한 만큼 어려움에 처해 있어서 발언하지 않는 것인가? 문재인 정권은 지난 3년의 집권기간 동안 개혁의 실적으로 내세울 만한 게 무엇이 있을까? 그나마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꼽을 수 있겠는데, 그 취지가 여지없이 배반당하고 민주주의의 퇴행을 불러오고 있는데 후보 시절 선거제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던 대통령이 침묵하는 것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납득하기 어렵다. 집권 자체가 목적이었을 뿐, 집권하면 자신의 어떤 정치철학 아래 어떤 정책을 펼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이 없었기 때문일까?

둘째 배경은, 거듭 말하건대 두 정치세력이 적대적 공생관계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역사적인 ‘신의 한 수’는 속된 표현으로 “우리 아니면 수구 적폐세력을 찍을 거니?”였다. 그렇지만 수구 적폐세력이 약해지거나 사라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민주당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가 자기들보다 “조금만 더 수구적이고 부패한 정치세력의 존재”에 있기 때문이다. 가령 집권한 민주당이 선거 때마다 강조해온 민생정치를 제대로 편다면 미래통합당의 지지율이 떨어질 수 있지만, 민주당으로선 달갑기만 한 일이 아닐 수 있다. 미래통합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만큼 민주당의 지지율이 높아질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는 개혁진보적인 정당이 강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촛불 시민의 힘으로 3년 전에 10%대까지 지지율이 추락했던 자유한국당은 오늘 미래통합당으로 30% 안팎의 지지율을 회복했다. 그것이 황교안 대표의 정치력 덕일까? 3년 동안 집권세력으로서 자유한국당과 다른 점을 보이지 못한 민주당 덕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민주당에 ‘신의 한 수’는 계속 유효하게 되었고 위성정당의 필요성을 강변할 수 있게 되었다.

두 거대정당은 실상 자본친화적, 노동배제적인 점을 비롯해 정책 지향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다. 재벌개혁, 노동개혁은 앞으로도 말만 무성하거나 시늉만 벌일 것이다. 전교조가 여전히 법외노조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나, 교육개혁의 긴요성이나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점에서도 그들은 별 차이가 없다. 금태섭 의원을 낙천시킨 반면, 대법 판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한 이강래 전 사장을 공천하는 민주당이 미래통합당과 얼마나 다르다는 것인가. 오늘도 강남역 철탑 위에서 반노조 삼성재벌에 맞서 300일 가까이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용희씨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관하고 있는 두 당은 ‘데이터 3법’과 ‘삼성보호법’이라는 별칭을 가진 산업기술보호법은 일사불란하게 통과시켰다.

위성정당은 염치없는 정치가 연출한 막장 드라마다. 하지만 민주시민에겐 정치혐오와 냉소에 빠질 권리가 없다. 정치적 동물로서 우리는 분노를 적극적 참여로 표출해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두 거대정당과 위성정당을 제외한 정당과 후보에게 표를 주자. 그 득표수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얼마나 성숙한 정치의식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확한 가늠자가 될 것이다.

홍세화 ㅣ 장발장은행장·‘소박한 자유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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