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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 이영기

등록 2020-05-24 18:24수정 2020-05-25 02:35

이영기 ㅣ 변호사·민변 교육위원

사학비리로 지탄받던 수원대학교가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 6명을 파면하거나 재임용거부 한 지도 무려 6년이 지났다. 그중 4명의 파면 교수들은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에서 모두 대학 측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받아 약간이나마 피해 회복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2명의 교수들은 심히 불공정한 상황에 처해 있다. 민사소송 1·2심에서 대학 측의 재임용거부가 위법하다고 인정되었음에도, 고의 또는 과실이 없다는 이유로 수년의 급여 상당 손해배상이 인정되지 않았다. 결국 그 생활비는 전부 빚이 되었고 정신적 고통은 말할 나위 없이 가중되었다. 가족들도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문제는 대법원의 심리 기간이 늘어나 더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점이다. 2명의 교수들이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이 2014년 6월이고 2심 민사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한 게 2015년 12월이다. 소 제기일로부터 6년, 상고일로부터 4년6개월째가 된다. 대법원은 ‘관련 사건들의 통일적인 처리를 위하여’ 또는 ‘쟁점을 검토 중’이라는 이유로 현재까지 판결을 미루고 있으나, 일반 상식에 한참 어긋난다. 너무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는 동안 대학 측은 1인에 대해서는 복직 이후 무고한 꼬투리를 잡아 해임 처분을 하였고, 다른 1인에 대하여는 또다시 재임용거부 처분을 하였다. 벌써 4번째다. 수원대학교 측의 보복은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당사자들은 또다시 길거리로 내쫓긴 상태다.

사실 수원대학교에서 파면된 또 다른 한 사람인 이원영 교수는 파면 도중 재임용거부를 당했으나, 2018년 3월 복직된 뒤 수원대 쪽을 상대로 급여 상당 및 위자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여 1·2심에서 모두 승소한 뒤 2019년 12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하였다. 이때의 판결문은 ‘학교법인이 보통 일반의 대학을 표준으로 하여 볼 때 객관적 주의의무를 결하여 교수에 대한 재임용거부 처분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인정된다’고 판시하였고, 그에 따라 임금 상당 손해배상을 인정하였다. 나아가 ‘학교법인이 재임용을 거부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없음에도 부당한 방법으로 원고를 몰아내려는 의도로 재임용을 거부함으로써 피고의 재임용 여부 심사에 관한 재량권 남용이 건전한 사회통념이나 사회상규상 용인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는 이유로 위자료도 인정하였다.

두 재임용거부 사건의 본질은 동일하다. 즉, 재임용거부 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이 교수협의회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막무가내 재임용거부를 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원영 교수 건은 2년도 안 되어 대법원의 상고 기각으로 일찌감치 원고승소로 최종 확정되었으나, 위 2명에 대한 재임용거부 사건은 6년이 다 되도록 아직 심리 중이다. 이런 지연이 악의에 찬 사학재단의 교권 탄압, 비리 은폐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교육 현장을 학생들이 지켜보고 있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처리하는 것이 평등의 원칙이다. 위 2건의 재임용거부 사건은 본질이 동일한 사건이므로 같게 처리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관련 사건의 통일적 처리’를 명분으로 4년이 넘도록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했다. 이제라도 대법원은 하루빨리 당사자들의 고통을 헤아려 잘못된 하급심 판결을 바로잡고 당사자들의 상처를 회복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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