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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왜 민주화 세대는 피해자를 비난할까 / 권김현영

등록 2020-08-04 17:06수정 2020-08-05 09:44

권김현영 | 여성학 연구자

나에게 세대론은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혈액형 심리학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누가 세대론의 주역으로 호명되고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예컨대 세대론의 주체로 호명된 이들은 언제나 곧 사회의 주역이 될 존재들로 그려졌다. 88만원 세대, 아이엠에프(IMF) 세대, 엑스(X) 세대, 삼포 세대, 밀레니얼 세대 등 세대를 지칭하는 말들은 대체로 ‘청년’을 그 대상으로 한다. 기성세대는 이들에게 당장 사회를 바꾸는 혁명을 일으키라고도 하고 개탄을 하기도 했다. 청년세대에 대한 이러한 호들갑은 급기야 청년세대 당사자 연구자에 의해 ‘청년팔이 사회’(김선기)라는 냉소적인 진단까지 듣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대란 단지 연령주의적 구분이라기보단 동시대의 사건을 경험하고 이에 대한 해석을 공유하는, 일종의 정치적 정체성으로서의 동질성을 확보하고 있는지가 핵심이다. 해당 세대에 속하는 모든 이들이 동일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대 내의 특정한 세대 단위가 세대의 상징적 대표성을 점유하는 데 성공해내기만 한다면 그 세대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유사한 의견을 가지는 집단적 힘으로서의 세대 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이런 식의 세대 효과를 유지한 유일한 세대는 ‘86’ 세대다. 그런 점에서 세대론의 진짜 주인공은 청년이 아니라 ‘86 세대’다. 이들은 386으로 시작해 586에 이르기까지 삼십년간 시대의 주인공이었다. 이들을 통칭해 ‘민주화 세대’라고도 부르는데, 진영에 관계없이 이 당시에 태어난 이들은 민주화운동을 정치적 자산으로 사용해왔고, 독재 타도와 민주주의 수호를 시대정신으로 공유했다. 민주화 세대를 하나의 세대 위치로서 호명하는 역할을 해낸 핵심 ‘세대 단위’는 전대협 세대이다. 2017년 전대협 동우회 및 전국대학 민주동문회 소속 회원 423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한 이들은 전대협 세대가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고 경제적으로는 보수화되고 있다고 보았다. 외교, 안보 등의 영역은 연령효과에 구애받지 않고 진보적이었고, 최저임금 인상, 대기업 규제 강화, 복지 확대 등의 경제복지 영역은 산업화 세대와 가까운 의견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민주화 세대는 소득과 자산에 있어서 세대 기회가 작동하여 계층 이동의 기회를 마지막으로 잡은 운 좋은 세대, 신자유주의 이후 불평등의 위계 구조가 고착되면서 사다리를 걷어찬 ‘불평등의 세대’(이철승)로 불렸다. 정말 경제적으로 보수적이고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일까? 전대협 세대의 100%가 투표에 참여했고 촛불시위 등 민주화 이후의 광장에 나갔다는 것이 진보적이라고 판단하는 근거 중 하나였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민주화 세대는 정치적으로도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최근 안희정과 박원순을 고발한 피해자를 소위 민주화 세대라는 이들이 성별과 무관하게 앞에 나서서 집중적으로 비난하는 광경을 매우 자주 목격하고 있다. 세대 내 비균질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성별이라는 변수까지 통하지 않은 이 상황을 보자니 확실히 민주화 세대는 역시 다른 어떤 세대보다도 세대로서의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 지경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믿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믿음을 상호 강화해주는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왜 민주화 세대가 오히려 더욱 피해자를 비난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사는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다.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2차 피해를 유발하는 사회심리적 기저에 ‘공정한 세상 신념’(Just World Belief)이 있다는 연구가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세상이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신념을 가진 집단일수록 피해자가 겪은 부정의한 일에 함께 분노하기보다는 피해자를 비난하는 경향이 높아진다고 한다. 이 신념이 강한 집단에서는 소위 가장 피해자다운 피해자, ‘완전무결한 피해자’를 시나리오상에 제시했을 때조차 피해자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피해자의 고통에도 별로 반응하지 않았는데, 세상이 공정하다면 그 고통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만큼이나 좋아졌다고 믿는 민주화 세대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이들은 이미 세상은 진보했으며 그 진보를 만들어낸 것이 자신이라는 생각에 취해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신보수주의자들과 완전히 똑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다. 제발이지, 민주라는 이름에 그만 먹칠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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