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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광화문광장, 미래 세대에게 맡겨야 / 배정한

등록 2020-10-23 15:49수정 2020-10-24 02:33

2020년 9월28일 서울시가 발표한 광화문광장 조감도.
2020년 9월28일 서울시가 발표한 광화문광장 조감도.

누가 원하는지, 왜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가 결국 강행된다고 한다. 지난 9월28일 서울시는 시민의 뜻을 담은 “쉬고 걷기 편한 광화문광장” 공사를 10월말에 시작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번 최종 계획안의 골자는 서쪽(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광장을 넓혀 공원처럼 꽃과 나무를 풍성하게 심고, 6차로로 계획했던 동쪽 차로는 7~9차로로 넓혀 교통정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지난해 초 계획안의 논란거리였던 광화문 앞 월대 복원과 역사광장 조성, 사직로 선형 변경, 지하공간 개발은 취소되거나 보류됐다.

이럴 거면 왜 하는 건가. 세종로 중앙에 위치한 현재 광장을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이는 게 거의 전부인 표피적 성형시술을 800억원이나 들여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당장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지난 2년간 서울시가 이 사업의 명분으로 내세워온 건 “잃어버린 역사성의 회복”과 “시민의 일상과 조화된 보행 중심 공간화”였다. 사직로를 유지하고 월대 복원과 역사광장 조성을 포기한 이번 최종안에 대해, 서울시는 “자연과 공존하며 재난에 대비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갖춘 ‘생태문명도시’로 본격적 전환을 하는 사업”이 될 것이라고 또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절차적 당위성과 계획적 합리성을 갖추지 않은 자화자찬, 공감하기 어려운 ‘좋은 말 대잔치’다.

누가 보더라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새로운 광화문광장’ 구상은 전시성 공간정치 프로젝트였고, 2021년 5월로 못박은 완공 일정은 차기 대선을 의식한 과속 주행이었다. 그러나 전문가와 시민사회의 비판이 이어지자, 지난해 9월 그는 “광장의 주인인 시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의견수렴 과정을 더 가질 것이며 시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가을과 겨울, 소통과 공론화를 위한 토론회가 열네차례 열렸다. 숨가쁘게 이어진 이 과정에 대해 결국 ‘답정너’ 아니겠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속도보다 방향, 결과보다 과정을 지향하는 그의 평소 철학에 기대를 걸 만했다. 올해 5월에는 시민단체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견이 있어서 합의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코로나 상황이 계속된다. 그래서 광화문광장 사업을 중단하려고 한다”고까지 말했다.

목적, 과정, 결과가 따로 놀며 뒤엉켜버린 이 사업을 지금 급하게 진행할 이유가 없다. 물론 10년 전에 졸속으로 완공된 현재의 광장은 여러모로 만족스럽지 않다. 특히 대로를 건너야 광장으로 갈 수 있는 보행 접근성 문제는 해묵은 숙제다. 그러나 최종 계획안대로 추운 겨울에 광속의 공사를 강행해 서쪽 광장을 공원처럼 만들고 동쪽 차로를 넓힌다고 광화문광장과 그 일대의 복잡한 문제가 모두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난맥을 교정할 지혜로운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서쪽이든 동쪽이든 필요할 때마다 차도를 막아 광장으로 쓰면 된다. 교통량이 적은 휴일엔 한쪽 차로를 통제해 보행자의 해방구를 만들어도 된다. 밀실에 유폐된 진실을 시민의 힘으로 밝혀냈던 그날처럼.

서울시가 지향하는 서울의 좌표가 ‘생태문명도시’라면, 그리고 이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미래 도시계획의 중심에 광화문광장이 있다면, 긴 호흡의 계획과 실험, 열린 소통과 치열한 토론이 먼저다. 사대문 안 도시 구조를 교정하고 보행과 녹색교통체계를 마련하는 계획이 선행되어야 하고, 미래의 도시 비전과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내는 연구도 동반되어야 한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서울의 얼굴을 뜯어고치길 원하는 시민은 없다. 10년 전 실패를 왜 반복하려 하는가. 광화문광장의 미래는 미래 세대에게 맡겨야 한다.

배정한 ㅣ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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