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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산업안전’을 또 하나의 생산 요소로

등록 2020-11-20 19:36수정 2020-11-21 16:20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18일 국회 소통관에서 연 정의당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18일 국회 소통관에서 연 정의당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토요판] 다음 주의 질문

“우리나라에서 기업하는 사람들은 전기 안전 공사나 가스 안전 공사를 그저 골치 아픈 규제로만 여기는 풍조가 수십년간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안전’을 또 하나의 생산요소로 도입하자. 그래야 산업재해도 줄이고 일자리도 창출해 청년실업을 낮출 수 있다.” 두 해 전, 현장 연구차 여러 작업장을 수십년간 돌아다닌 어느 국책 경제연구기관의 박사가 문득 꺼낸 제안이다. 안전이 생산활동뿐 아니라 취업에서도 국민경제에 ‘거대한 저수지’ 노릇을 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둘러싸고 논의가 무성하다. 새로 법을 제정할지, 기존 법을 고쳐 벌금을 대폭 올릴지, 종사자 규모에 따라 적용을 몇년간 유예할 것인지 등 여러 대목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25년 넘게 산재사망률 1위인 한국에서 사뭇 강력한 ‘처벌’과 ‘벌금’은 효과적인 정책 조준이다. ‘사람들은 유인(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말은 긍정적인 유인뿐 아니라 부정적인 유인도 포함한다. 보상을 줄 뿐만 아니라 징벌을 앞세워서도 산업안전 활동·투자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비롯한 30개 경제단체 및 업종별 협회가 19일 “정책적 효과는 낮고 기업 활동만 위축시키는 과잉규제”라며 들고일어났지만, 사납게 저항할 일이 아니다. 기업 생산함수에는 자본·노동·토지(공장)·기술 등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여러 물적·인적 요소가 변수로 들어간다. 여기에 모든 산업·업종 또 모든 경쟁기업들이 작업장 산업안전을 고정불변의 또다른 생산요소처럼 투입하면 이제 안전은 비용 항목을 넘어 ‘투자’이자 ‘자원’이 된다. 그러면 안전 활동·투자는 시장논리에 따르더라도 이윤 극대화를 위한 생산요소로 바뀌게 된다.

전기차·수소차, 그린·디지털 뉴딜만 할 것이 아니다. 총 취업자 2700만명이 한해 1914조원의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있으나, 작업장에서 숱한 죽음 및 재해 위험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 우리 시대 노동의 생애다. 공장에서 죽음을 맞는 노동자는 세상에서 가장 불우하다. 날마다 6명이 산업재해로 죽고 땀내 나는 작업복이 그 옆에 나뒹구는 나라에서 작업장 안전은 결코 타협의 대상일 수 없다. 우리 산업구조가 중후장대형 제조업을 등뼈로 삼고 국내총생산에서 건설·토목 비중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높아 재해가 많다고 말하는 사업가도 있으나, 사람이 죽어 나가는 산업재해에서 국제비교는 안일하고 몹쓸 일이다.

이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의 모델은 영국이라고 한다. “런던에서 벽돌공과 석공은 매우 춥고 날씨가 나쁜 날에는 일할 수 없고, 일자리는 언제나 고객의 우연한 주문에 달려 있다. 이런 불확실한 상태가 야기하는 불안과 초조를 보상해줘야 한다. 취업 불안정이 작업의 어려움·불쾌함·고약함과 결합되면 받는 임금이 숙련공보다 높아지는 일도 간혹 있다.” 250년 전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이렇게 묘사한 당시 벽돌공·석공의 보수는 보통 일꾼보다 1.5~2배가량 높았다. 훗날 경제학자들은 이를 ‘보상적 임금격차’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산업재해는 저임금에 시달리며 위태롭게 일하는 노동자에게 주로 닥치는 울분 어린 숙명처럼 돼 있다. 일그러진 ‘노동시장 이중 분절구조’로, 산업안전은 노동조건에서 인간적 존엄과 사회경제적 정의의 요청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 3만달러를 넘은 한국에서 산업안전과 저출산은 대표적으로 뒤틀려 있는 ‘비교열위’ 지표다. 정부·지자체가 2006년부터 올해까지 많게는 매년 30조~40조원씩 총 200조원을 저출산 대책에 쏟아붓고 있다. 그러나 전체 대·중소기업의 산업안전설비 투자금액은 공식 추계자료를 얻을 수 없다. 안전설비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1~10%)을 기초로 일정한 가정을 동원해 그저 역산해 추산할 뿐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산출한 2015년 국내 안전설비 총투자액은 3723억원이다. 산업안전분야 종사자 수도 파악·관리되지 않고 있다. 테러·자연재해·범죄예방 등 재난안전 관련 사업체와 종사자는 행정안전부가 추계한다. 하지만 몇몇 곳에 물어봤으나 산업재해 관련 안전종사원(본사 및 안전관리위탁회사 소속)이나 안전감독 책임자가 몇명인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부부처도, 민관 연구소도 “글쎄요”라고만 되풀이했다.

국내 영리법인은 총 70만8700개(2018년·중소기업 99.1%)다. 작업장마다 산업안전 종사자를 더 많이 고용하도록 의무화하면 공공부문 못지않게 거대한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기업가들이 무재해 500일·1000일·5000일 기록을 세워 산업훈장을 받고 1조원 매출을 올린 것 못지않게 가치 있다고 뿌듯해한다면 그것이 ‘사업보국’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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