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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후쿠시마 오염수, ‘반일’ 아닌 세계의 문제다 / 박민희

등록 2021-04-15 15:56수정 2021-04-16 02:37

일본 정부가 오염수 방류를 결정한 13일 후쿠시마 원전 옆으로 오염수를 담은 탱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후쿠시마/AP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오염수 방류를 결정한 13일 후쿠시마 원전 옆으로 오염수를 담은 탱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후쿠시마/AP 연합뉴스

원폭 피해 국가임을 내세워 온 일본이 대량의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쏟아버리기로 결정했다. 역사상 최악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일으키고도 일본 시민들과 주변 국가에 제대로 사과하지도 책임지지도 않은 채 미국의 지원을 앞세워 오염수 방류를 강행하려는 행태는 식민지배와 전쟁의 책임을 외면하고 그 기억마저 지우려해온 일본 권력자들의 태도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강상중 전 도쿄대 교수는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에서 “왜 일본에서 인류 역사의 비극이 반복되는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미나마타의 전례 없는 공해, 후쿠시마 원전 폭발 같은 묵시록적 사건들이 왜 되풀이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일본 근대국가가 ‘약한 사회 위에 우뚝 솟은 국가주의의 생리’를 버리지 못하는 것을 원인으로 진단했다. “전쟁과 사고는 성격이 다른 비극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 상황이 닥쳤을 때 국가나 기업, 조직이나 제도 뒤로 몸을 감추는 파워엘리트(권력집단)을 목격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들은 ‘전쟁은 피할 수 없다’ ‘원자력 에너지는 포기할 수 없다’라고 하며 상황에 순응하고 굴복한다(…)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 체제’를 뭐라 부를 수 있을까.”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이 있다. 왜 일본은 지금 방류 결정을 강행했는가.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일은 사전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일본의 방류 결정 뒤 미국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곧바로 지지 뜻을 밝혔다. 반면, 일본은 한국, 중국에는 정보 제공도 협의도 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당연히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예상했다. 일본 전략가들에게 이것은 ‘호재’다. 한-중이 한편이 되어 미국, 일본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미-중 경쟁 와중에 한국이 줄타기를 하면서 사실상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미국 내 의구심을 확고하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2차대전 이후 미-소 냉전은 일본에 매우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일본은 전범국 책임을 쉽게 벗어났고 한국이 발언권을 가지지 못한 채 형성된 샌프란시스코체제를 발판으로 경제강국으로 부상했다. 탈냉전은 일본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1980년대 미국의 도전자로 떠올랐던 일본은 1985년 플라자합의와 이듬해 미·일 반도체협정으로 금융과 산업의 주도권을 뺏기고 ‘잃어버린 세월’로 추락했다. 이제 미-중 신냉전으로 새로운 국제질서의 판이 짜여지고 있다. 한국의 발언권을 줄이고 일본 뜻대로 새 판을 짜려면 ‘한국은 중국편이라서 믿을 수 없다’는 담론이 워싱턴에서 커질 수록 일본에 유리하다. 한국이 ‘반일의 덫’에 빠질 수록 일본의 주장이 미국에서 힘을 얻는다.

한국은 일본의 불투명한 오염수 방류 결정에 대한 반대가 한-일 갈등 문제가 아니며, 전세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엄중한 환경 문제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삼중수소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프레임을 만들었다. 한국 월성원전을 비롯해 전세계 원전들이 삼중수소가 포함된 오염수를 방류하고 있는데, 한국이 비과학적으로 후쿠시마 오염수만 트집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멜트다운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는 삼중수소 외에도 스트론튬90, 세슘137 등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은폐하는 프레임이다. 도쿄전력은 기준치 아래로 낮춘 뒤 방류할 계획이라면서도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 외에도 세계보건기구(WHO)나 국제 환경단체들, 한국, 중국, 대만 등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 시민들과의 연대다. 일본인 70% 이상이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고 있다. 가장 직접적 피해자는 후쿠시마 인근 주민들과 일본 어민들이다. 한국과 일본 시민들이 함께 바다와 공동체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꾸준히 협력하면서,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일본 우익들의 허구적 주장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린피스가 “방류 결정은 후쿠시마와 전 일본, 그리고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인권을 완전히 무시한 결정”이라는 성명을 내는 등 국제사회에서도 우려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한 미국인 친구는 “미국 정부가 동의했다고 해서 미국 시민들이 동의했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해 달라”며 “세계가 함께 막아야 한다”고 했다.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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