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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칼럼

달의 이면을 보다

등록 :2021-06-10 14:05수정 :2021-06-11 02:39

[세상읽기] 조이스 박 ㅣ 영어교육가·에세이스트

‘Locked out’은 한국어로 번역하기 힘든 표현이다. 이 표현을 알게 되면서 내 세계에는 달의 이면을 보는 거대한 장이 열렸다. 지구에서는 달의 앞면만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달의 면이 달의 모습 전부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드러나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달의 앞면만 보고 사는 삶,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고 사는 삶에서, 다른 시선을 얻게 되면 명시적인 말, 드러나는 말이 전부가 아니라, 이면에 숨겨진 뜻이 무엇인지 비로소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문이 잠겨서 방에 갇히면 ‘locked in’ 되었다고 한다. ‘locked out’은 반대말이다. 문이 잠겨서 들어가고 싶은 방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태이다. 보통 열쇠를 차 안에 두고 내려서 차 문을 열 수 없을 때 “I’m locked out of my car”라고 한다.

이 표현이 나를 강타한 건, 20세기 이전 서구 여성들이 배우고 싶고 읽고 싶은데 배울 수 없고 읽을 수 없었던 처지를 묘사하는 글을 읽으면서였다. 남성에게만 허용된 서재(study) 밖에 여성들은 서서 “We’re locked out of the study”라고 분루를 흘렸다. 하지만 그다음에 이어진 말이 촌철살인이었다. “그런데 남자들 당신들은 모르지, 우리를 ‘locked out’ 시키는 동안, 자신들이 ‘locked in’ 된 것을! 갇힌 건 바로 당신들이다!”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다른’ 타인들을 배제하느라 자신들이 고립되는 것을 모르는 몰지각을 꼬집는 말이었다.

2000년대 초반, 북미 지역의 청년들은 “No Fear”라고 쓰여 있는 캡을 쓰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다. 그 모자를 쓰면 자신이 강하고 용감해 보인다고 생각해서 그 모자를 골랐겠지만, 조금만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이건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대체 무엇이 그렇게까지 두렵길래 ‘두려워하지 않겠노라’고 앞머리에 써 붙이고 다니기까지 해야 하나?” 이런 질문을 어떤 남성이 던지는 것을 보았다.

이누이트족을 ‘에스키모’(날고기를 먹는 사람)라고 부를 때는, 이 이름을 지은 이들은 날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과 날고기 먹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까지 끌어낼 수 있지 않은가. 이처럼 소리 내어 외치는 말들, 타인에게 강요되는 이름들에는 늘 다른 뜻, 진짜 뜻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는 것들을 들여다보면 달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젊은 시절, 보면서 가장 무서웠던 말은 “보통 사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대통령 후보였다. 대통령을 아직도 군주처럼 여기는 문화가 잔존하는 나라에서, 대통령이라는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보통 사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거는 일은 소름 끼치지 않나. 마치 육식동물이 초식동물들의 땅에 와서 살게 해달라고 ‘나도 초식을 해!’라고 초식동물들에게 외치는 것 같았다. 초식을 한다고 육식동물이 말하니까, “와~” 하고 환호하던 어른 초식동물들을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기도 했다.

언어가 선을 긋고 경계를 긋는 지점을 본다. 언어가 권력이 되어서 누군가를 배제하는 걸 본다. 그렇게 생긴 파워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사실 내가 갇혀 있던 하나의 언어 밖으로 나가서 비로소 가능했다. 동일한 사물을 보고 내 언어에서 A라고 묘사하는 걸 다른 언어에서 B라고 묘사하는 걸 보면, 동일 대상에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두 언어를 가로지르다 보면, 이렇듯 달의 이면을 보기가 쉬워진다. 하나의 현상에 해석이 하나 이상 있을 수 있다는 것, 하나의 사물에 다른 이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 누군가 큰소리로 외치는 말들에 예민해진다. 그리고 외국어를 하면, 하나의 이름을 외치는 자들에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런 이름을 쓰는걸!’ 하고 들이댈 수도 있다. 그렇게 언어를 통해 부당한 파워를 획득하고 행사하려는 이들의 저변을 흔들 수 있다.

외국어를 한다 함은, 달의 앞면만 가리키는 자가 달을 자기 것이라 하지 못하도록, 달의 이면의 풍경을 소환할 수 있음을 뜻한다. 다른 풍경을 불러와 앞면과 뒷면의 경계를 지우는 것, 이게 외국어를 구사하는 자들이 경계를 넘나들며 갖는 힘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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