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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걱정 마라, 변화해도 안 죽는다

등록 2021-06-13 13:45수정 2021-06-14 02:38

[뉴노멀-트렌드]

김용섭 |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기업이 먼저 삽질을 했고, 정치는 여전히 삽질을 한다. 바로 이삼십대에 대한 대응 얘기다. 밀레니얼 세대가 기업에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기업에서 세대론이 부각되었다. 세대 차이와 세대 갈등이 조직문화의 심각한 변수가 되었다고 여겼다. 기성세대가 밀레니얼 세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이끌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고,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분석하고 대응하는 데 급급했다. 밀레니얼 세대에 이어 제트(Z)세대도 기업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엠제트(MZ)세대에 대한 대응은 기업에서 더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주로 임원급을 비롯해 과장급 이상 관리자, 직책자들에게 엠제트세대 대응을 위한 세대론 교육이 이뤄졌다. 신입사원과 저연차 직원들에게는 기성세대 상사에 대한 이해와 그들과의 소통, 그리고 조직문화에 어떻게 잘 적응할 것인가에 대한 교육이 이뤄졌다. 수년간 이런 교육이 대기업부터 중소기업, 공기업과 공무원 조직에 이르기까지 확산되었다. 과연 교육의 효과는 어땠을까?

효과가 있을 리 없다. 애초에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세대가 ‘서로 다르다’ 혹은 ‘요즘 이삼십대가 좀 특이하다’ ‘서로 다른 세대니까 소통하고 양보하자’ 같은 관점으론 풀 수 있는 문제가 전혀 없다. 기성세대는 엠제트세대의 등장을 ‘세대론’으로 대응하려 들었지만, 사실 실체는 ‘시대론’인 것도 이미 알고 있다. 세대가 달라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시대 변화가 만들어낸 문제다. 더 이상 평생직장도 없고, 상명하복하며 충성할 수도 없다. 수직적 위계구조로는 빠른 비즈니스 환경 변화에 대응도 어렵다. 일자리 문제, 젠더 이슈, 경제와 산업의 뉴노멀, 조직문화의 수평화, 경쟁과 공정의 문제 모두 특정 세대가 만들어낸 게 아니라 지금 시대가 만들어낸 것이다. 기업에서의 세대 이슈도, 특이한 ‘요즘 애들’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니라 산업과 비즈니스 환경, 사회의 변화에 따른 문제다. 산업구조가 변화하면, 일하는 방식도 변화해야 하고, 조직문화도 변화해야 한다. 특히 수직적이고 경직된 한국식 조직문화는 비효율과 불합리의 문제를 갖고 있었기에 더더욱 변화해야 할 여지가 많다. 바꾸면 된다. 지킬 만한 전통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 변화를 선택하는 대신, 서로 다른 세대여서 갈등이 생기니 소통하고 양보하고 공감하자는 식의 감정적이고 모호한 접근을 한다. 수술을 해야 하는데 진통제만 먹이고 있다. 수술할 시간을 자꾸 놓치면 상황만 악화된다. 간단한 수술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을 방치해서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든다. 바로 지금 조직문화 얘기다. 산업구조 변화와 시대 변화에 맞게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게 핵심이지 결코 세대가 다른 게 핵심이 아니다.

결국 시대 변화에 대한 근본적 대응 없이, 특정 세대를 겨냥한 현상 중심적이고 근시안적인 대응으로는 문제를 풀기는커녕 더 악화시킨다. 사실 세대 간의 갈등, 대립, 대결 구도를 만들어낸 것은 그런 프레임이 유리하다고 생각한 그들 때문일 것이다. 문제를 판단할 때 ‘세대’ 혹은 ‘성별’을 빼고 봐야 한다. 세대나 성별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이자 시대의 문제인 것이 대부분이고, 결국은 구조와 제도에 대한 개선으로 해결될 것들이 많다. 그런데 문제 판단에서 ‘세대’나 ‘성별’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도 왜곡되어 못 풀게 된다. 세대 프레임, 성별 프레임이 정치적으론 효과적인 무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쓸데없이 갈등만 증폭시키는 참 못된 짓이다. 진짜 변화를 원한다면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아닌 변화의 대상이라고 인식하자. 걱정 마라. 변화해도 안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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