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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해진의 세계+] 타인의 죽음, 갚을 수 없는 채무

등록 2021-06-13 17:00수정 2021-06-14 17:44

조해진 ㅣ 소설가

최근에 우리는 이런 소식을 들었다.

광주에서 철거작업 중이던 건물이 무너지면서 버스를 덮쳤고 이 사고로 사상자가 다수 나왔다. 며칠 전에는 선임 중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중사가 혼인신고를 한 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때까지 수사는 부실했고 가해자는 사과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피해자인 여군에게 조직적인 회유와 압박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경기 평택항에서는 학비를 벌기 위해 아버지를 따라 일을 나간 이선호씨가 개방형 컨테이너 합판을 정리하다가 그 날개에 깔려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그 일은 이선호씨의 업무가 아니었다. 처음 떠맡게 된 일인데도 안전교육은 시행되지 않았고 현장에는 감독자나 신호수가 없었다.

안타까웠다. 그런데, 그 안타까운 마음과 별개로 기시감이 밀려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안전불감증으로, 모욕을 당한 사람이 오히려 조직에서 배척되어서, 그리고 안전장비나 인력이 부족해서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를 이미 수없이 봐온 탓이다. 기시감은 곧 미안함으로 확장됐다. 죽음은 개별적이고 당사자나 그 가족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인데, 그 죽음 앞에서 기시감을 느끼는 건 예의가 아닐 테니까. 기시감은 익숙함으로, 익숙함은 다시 무심함으로 변형될 수 있으므로.

얼마 전 나는 이런 문장을 읽었다. “(타인의 죽음 이후에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채무 상태에 놓이게 된다. 기억이 있으니까. 타인에 대한 기억이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채무로, 우리를 조여온다.” 김금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에는’(<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창비)의 주인공이 엄마를 떠나보내며 느끼고 생각한 것을 표현한 문장이다. 물론 소설에 나오는 타인의 죽음은 사적인 관계, 그래서 기억을 나눈 관계에 해당되지만 사회적인 죽음에도 채무를 생각한다면 어떨까, 소설을 읽고 난 뒤 나는 생각했다. 단순한 채무가 아니라 결코 갚을 수 없는, 영원히 새롭게 기억하며 미안하고 또 미안한 그런 부채감이라면….

1995년,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기억할 것이다. 임성순의 단편소설 ‘몰:mall:沒’(<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은행나무)은 삼풍이 무너진 뒤 그 잔해를 처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난지도에서 잔해 정리에 투입된 일꾼들은 처음엔 ‘설치미술’ 같은 콘크리트와 철근과 마주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핏자국이 남은 신발이나 쇼핑백을 발견하는가 하면 사람의 허벅지와 손 한쪽도 발견하게 된다. 전역 뒤 학비를 벌기 위해 인력사무소를 통해 난지도에 온 ‘나’는 함께 일한 만수 아저씨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 “무너진 쇼핑몰을 쓰레기장에 버리는 놈들이 있는 나라니까, 그러니까 백화점이 무너지는 거야. (중략)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라 잊어버린다고. 봐라, 또 무너진다. 분명히 또 무너진다고.”

내년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 5인 이하 사업장은 처벌에서 제외되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몇 년 뒤에야 처벌 가능하다는 점에서 법의 한계가 뚜렷하지만, 그럼에도 이 법이 가져올 변화에 한 가닥 희망을 갖게 되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에 충분히 살릴 수 있었던 죽음이 흔해서일 것이다. 이런 생각도 한다. 다시는, 결코 다시는, 돈을 아끼고 다수의 무사태평을 위한다는 기만적인 이유로 단 한명의 사람도 죽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는 모든 생명 앞에서 ‘부채’의 감각을 갖는 것, 그리고 잊지 않겠다는 우리 각자의 다짐에서 ‘설계’되고 ‘건축’되어야 훗날에도 무너지지 않고 굳게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 소설 ‘몰:mall:沒’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망각했으므로 세월이 가도 무엇 하나 구하지 못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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