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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충걸의 세시반] 엄마는 누구를 위해 쇼핑을 하나

등록 2021-06-13 17:35수정 2021-06-14 02:37

이십대 청년이 ‘이충걸의 세시반’을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이십대 청년이 ‘이충걸의 세시반’을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이충걸 ㅣ 에세이스트

엄마는 늘 더 이상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고 말했다. 아무리 부인해도 노인이 된 삶은 이미 늦은 거라고. 나는 늘 관 속에 들어가기 전까진 죽은 게 아니고, 엄마의 팽팽한 피부는 입술 한번 바르면 삼십년 젊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존재 가치에 대한 엄마의 냉소, 생각과 몸의 분리에 따른 신체적 불편은 아무리 페이스트리의 결 사이로 파고들어가도 알 길이 없었다. 나는 엄마가 사는 법을 다시 배워서 가진 것이 없어 더 부자이던 그때로 돌아가 재생의 길을 찾길 바랐다. 그러나 삶이 후유 장애를 의미하는 사람에게 무슨 인생 코치가 필요하단 말인가.

엄마의 기쁨은 창밖의 꽃나무를 보거나, 성경을 필사하거나(이미 요한복음까지 쓰셨다), 가끔 친구들과 데시벨 낮게 나누는 한담밖에 없었다. 사실 가만히 누워 있는 걸 제일 좋아하셨다.

햇빛보다 화사한 오월, 엄마를 달래 서울 남부터미널 근처에서 치과 진료를 보고 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길 건너편에 생활 소품 가게가 보였다. 내 눈이 반짝했다. 예전 집 앞에 있던 마트는 건물이 통째 들어가도 남을 만큼 커서 엄마와 거기 갈 때마다 무모했지만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곤 했다. 온통 북적대는 곳에서 엄마를 잃어버리면 서로 전화해서 상봉할 때의 즐거움! 그러나 작은 마트까지 걸어서 15분, 시장까지 25분 거리에 사는 지금, 주부의 기쁨은 까만 바나나처럼 물컹해져버렸다.

“우리 저기 가서 이것저것 살까?”

귀찮다고 할 줄 알았는데 엄마는 웬일로 좋다고 하셨다.

그곳에는 그곳만의 날씨가 있었다. 우리는 1층에서 문구며 공구, 등산용품을 대충 훑다가 동굴 같은 지하로 내려가기로 했다. 거긴 에스컬레이터가 없었다. 계단은 지옥만큼 길어 보였다. 불안했다. 엄마가 “내가 왜 네 말 듣고 여기 왔는지 모르겠다. 계단하고 원수진 내가”라고 말할까 봐. 나는 엄마 손을 꼭 잡고 마구 격려했다. “사고 싶은 거 다 사. 나 돈 많아.”

엄마는 건강보조 장비나 벨크로 같은 것엔 관심이 없었다. 인생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지금, 품위는 그런 장비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듯이. 그리고 지팡이로 둘러싸인 노인들의 침울한 세계 말고 알록달록 코너로 나아갔다. 맨 먼저 집은 것은 프라이팬이었다. 나는 내 생전 처음으로 만류했다. (나는 엄마가 부르면 문가에서 헥헥거리며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뭐든 해드리고 싶었다. 홈쇼핑의 중국냉면을 먹고 싶다 하시면 안 드실 줄 알면서 주문했고, 채소 말리는 기계를 원할 때도 빨래나 말릴 운동기구 꼴이 될 줄 알면서 ARS를 따라갔다.) 욕구는 변환된 희망. 나에겐 엄마에게 욕구가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러나 워낙 낡은 프라이팬도 절대 못 버리게 해서 우리 집은 아예 프라이팬 공장이 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리기 위해 뭔가를 샀다. 엄마는 존재의 특별함 때문이 아니라 그 손이 미치는 범위의 노동을 위해 뭔가를 찾았다. 한풀 꺾인 엄마는 채반을 살펴보았다. “상추 씻어서 여기 올려놓으면 물이 쫙 빠질 거야.” 나는 채반이 일곱개인 채 다른 채반으로 마법을 부리고 싶은 엄마의 연두색 권위, 녹색 꿈을 깨기 싫었다. 개수대 안의 그릇 자체를 못 참는 엄마는 수세미도 몇 묶음 골랐다. 매번 “설거지하려고 태어났어?” 하며 착한 척 세제를 뺏던 내 앞에서. 나는 고분고분 프라이팬 뒤집개와 주걱, 가위와 과도, 비닐 랩과 포크를 담았다.

카운터는 1층이었다. 계단은 천국만큼 높아 보였다. 엄마는 한발짝 한발짝씩 올라갔다. 일곱 계단을 올라가자 힘에 부친 듯했다. 나는 <아이다>의 죽는 장면처럼 엄마가 계단 난간을 잡고 장렬히 주저앉을까 봐 걱정했다. 고령자는 교통체증의 원인, 긴 줄의 시작, 청년들의 방해물, 약국과 병원의 진짜 주인이라는 걸 인식하는 엄마의 자의식을 걱정했다. 엄마는 다행히 한번에 다 올라갔다. 그러곤 나에게 카운터 앞에 놓인 초코바 두개를 건네주었다. 그날의 마지막 쇼핑 여행이었다.

비닐봉투는 산타클로스 복부처럼 부풀었다. 나는 성가신 척 함부로 돈을 쓰고 싶었다. 엄마를 위해 방심한 듯 펑펑 쓰고 싶었다. 누계 3만5천원. 절차상의 죄의식은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쇼핑 테라피도 없었다. 매장을 어슬렁거리다 콜라병을 본 부시맨처럼 마냥 신기해하며 물건을 살피는 건 오로지 나의 유희일 뿐이었다. 엄마는 집에 돌아와 평소보다 두배 고단해하셨다. 남은 것은 건강했지만 불행했던 청춘의 회고밖에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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