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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코로나19, 백신, 시민사회 그리고 인권

등록 2021-06-17 18:33수정 2021-06-18 02:37

[세상읽기] 황필규ㅣ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그런 상상을 해봤다. 대통령의 지시로 인종, 젠더, 연령, 빈곤 등 여러 이유로 취약한 집단에 대해 코로나19 상황에서 차별 없는 건강 보호와 사회적 회복을 책임지는 조직이 만들어진다. 보건담당 장관은 물론이고 관련 부처나 기관의 대표들, 인권·보건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한다. 홈리스, 피구금자 등 취약집단의 의견 청취는 핵심이다. 충분한 실무적인 뒷받침을 할 수 있는 사무국을 둔다. 이 조직은 관련 데이터나 정보를 신속하게 취합해 처리하고 대통령에게 불균등한 코로나19 영향으로부터의 보호, 재원의 평등한 배분, 취약집단과의 효과적인 의사소통 등에 대하여 수시로 권고한다. 활동이 마무리되면 코로나19를 둘러싼 불평등의 원인 및 실태 분석, 대안 제시 등을 포함하는 종합보고서를 작성한다.

상상 속의 조직이었다. 미국에서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이러한 조직, ‘코로나19 의료형평성 태스크포스’가 실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한국은 코로나19와 인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조직이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개별 집단이나 이슈에 대해 권고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코로나19를 둘러싼 거시적, 미시적 인권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룰 의지는 없어 보인다. 인권위 내 소수 인원으로 구성됐던 코로나19 대응팀은 몇달 만에 해체됐다. 청와대도 보건, 방역 당국도 인권 문제를 먼저 고민하지는 않는다. 최근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방역인권보호팀이 신설되는 등 작은 변화가 있다고는 하지만 법치주의와 인권의 날개 잃은 추락은 계속되고 있다.

현장 복지서비스를 통해 정부나 민간의 지원을 받는 비영리사회복지단체들의 경우, 복지서비스 제공에 제한을 받으면서 심각한 재정적 타격을 받았다. 주로 개인들의 풀뿌리 후원으로 유지되는 다수의 시민사회인권단체들도 코로나19로 인해 후원이 급감하면서 활동이 위축됐다. 일부 지자체와 민간재단의 지원이 있기는 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냥 ‘불운’으로 여기면 끝인가.

미국에서 작년 3월에 시행된 ‘코로나바이러스 지원, 구호 및 경제적 안전법’에 의하면 비영리시민단체들은 일반적인 중소기업과 동일한 혹은 중소기업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급여 및 고용 유지 지원, 대출 지원 등의 대상이 된다. 비영리단체들도 기업과 마찬가지로 건전한 경제활동의 기본이 된다는, 더 나아가 대체 불가능한 사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즉 “지역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보호하는 최전선에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기업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 못지않게 시민사회가 창출해내는 사회적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제한된 백신의 접종 순서가 논의될 때, 관련 인권단체에서는 다음을 요구했다. 첫째, 인간의 존엄에 기반한 인권의 원칙 반영과 모든 과정 투명 공개. 둘째, 시민사회 참여 보장과 ‘실효적인 정책’ 강구. 셋째, 현존하는 불평등 위험을 완화할 방안 마련. 미국에서도 이미 작년 11월에 혜택 극대화 및 피해 최소화, 보건 불평등 완화, 정의 추구, 투명성 추구 등의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한국의 백신 우선접종 대상을 보면 보건의료나 방역과 직접 관련된 이들, 시설 입소자, 종사자를 제외하고는 주로 나이순으로만 되어 있다. 시설 밖에 존재하는 다양한 취약집단과 시설 종사자가 아니면서 시설 내외의 취약집단을 수시로 만날 수밖에 없는 지원단체 등에 대한 고려는 사실상 전무하다. 거리 홈리스는 접종 대상에서 배제되었고, 이후 노숙인 지원기관에 의해 절차가 진행되기는 했지만 짧은 접종 일시는 큰 제약이었다.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비인가 시설 및 재가장애인 접종 방식에 대한 대책도 보이지 않고, 이주민들도 백신에 접근하기 어려운 여러 사정을 토로하고 있다.

코로나19 시대, 취약한 집단은 더욱더 취약해지고 차별과 혐오에 노출된다. 정보 접근은 제한적이고 건강할 권리는 멀어지고 통제될 의무는 강해진다. 현장에서 힘겹게 활동하는 시민사회인권단체 구성원들도 경제적, 보건상 취약성에 노출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현장의 취약집단,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통로의 부재도 문제다. 당대 우리에게 취약집단의 인권, 시민사회의 가치, 백신의 원칙은 무엇인가. “백신 접종 ○○○만명 돌파” 중계방송 속에 응답해야 할 질문들, 인권을 침해당한 이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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