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9일 국회 민주당 대표실에서 상견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김대기 비서실장을 지난 28일 전격 경질하고, 그 자리에 이관섭 정책실장을 임명했다. 정책실장에는 대통령 선친의 제자인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국가안보실장에는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이 각각 보임됐다. 국민의힘도 같은 날 한동훈 위원장이 이끌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 명단을 발표했다. 곧 집권 3년차를 맞는 대통령실, 총선을 100일 남짓 앞둔 여당의 체제 정비라고 한다.
대통령실은 이번 인사로 3실장이 한꺼번에 바뀌었다. 지난달 30일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을 신설된 정책실장에 승진·임명하면서 ‘용산 2기’, ‘3실 체제 완비’라고 설명한 지 한달도 안 됐다. 김대기 전 실장은 11월 인사 때 유임됐다. 10월 보궐선거 참패, 엑스포 유치 실패에도 불구하고 재신임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한달도 안 지나 돌연 경질하면서 설명 한줄 없다. “정책 조율의 최적임자”라던 이관섭 실장은 28일 만에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자리로 이동했다. 윤 대통령 특유의 즉흥적인 돌려막기 인사 아닌가. 시기·인물·방식이 모두 부적절하고, 이렇게 급조된 인사는 전례도 찾을 수 없다. 국정 안정성, 국민 신뢰는 뒷전이다.
여당 상황이 “9회말 2아웃 2스트라이크”의 위기라고 했던 한 위원장은 ‘싸움꾼’을 불러모았다. 극우로 전향한 옛 운동권 인사, ‘조국흑서’의 저자, 자타칭 ‘이재명 저격수’ 등으로 비대위 진용을 꾸렸다. 지명직 비대위원 8명 중 정치인은 김예지 의원 1명뿐이다. ‘40대·전문가 중심’을 내세우고 있으나, 대다수는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 그래서 참신할 수도 있지만, ‘반정치’ 성향을 띠기도 쉽다. 더욱이 위원 명단은 한 위원장이 철저한 보안 속에 혼자서 짰다고 한다. 이런 ‘밀실 인선’은 겨우 하루 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29일 민경우 위원의 과거 ‘노인 폄훼’ 발언, 박은식 위원의 ‘여성 혐오성’ 발언이 재조명되며 논란이 벌어졌지만, 한 위원장은 사과 한 마디 없이 임명을 강행했다. 되레 “상대 당의 왜곡과 선동에 맞서자”며 민주당 등 야당과의 싸움을 앞장서 독려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에게 기어이 임명장을 줬다.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한 이 정부의 24번째 인사다. 당정 어디에서도 성찰과 쇄신의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직후엔 “국민이 늘 옳다”더니, 말뿐이었다. 원칙 없는 땜질 인사, 오직 총선 승리만 염두에 둔 갈라치기 정치가 무한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