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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양복으로 세운’ 50대 남성만의 국회, 류호정 ‘원피스’가 깼다

등록 2020-08-06 20:55수정 2020-08-07 08:48

‘다양한 이들의 국회’ 대표성 상징
20대 여성의 평범한 복장에 논란
사회 현실과 동떨어진 국회 반증
류호정 정의당 의원(왼쪽)이 3일 열린 국회의원 연구단체 ‘2040 청년다방’ 창립식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류 의원은 이날 함께 연구단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과 4일 국회 본회의에 창립식 때 입은 옷을 입고 가기로 약속했다. 류 의원은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4일 국회 본회의에 그 원피스를 입고 등원했다. 류호정 의원실 제공
류호정 정의당 의원(왼쪽)이 3일 열린 국회의원 연구단체 ‘2040 청년다방’ 창립식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류 의원은 이날 함께 연구단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과 4일 국회 본회의에 창립식 때 입은 옷을 입고 가기로 약속했다. 류 의원은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4일 국회 본회의에 그 원피스를 입고 등원했다. 류호정 의원실 제공

너무 평범해 직장이나 길에서 스쳤으면 눈에 띄지도 않았을 옷차림이었다. 스물여덟살의 국회의원 류호정이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장에 입고 온 옷은 또래의 동료나 친구들이 흔히 입는 원피스였다. 하지만 그 평범함은 국회의사당의 에메랄드빛 돔 아래에선 아주 낯선 차림새였다. 그의 원피스는 ‘국회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라는 논란을 일으키며 단박에 온라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젊은 여성의 평범한 옷차림이 그처럼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는 것은 그만큼 국회가 한국 사회의 ‘현실’과 다른 이질적 공간임을 보여준다. 21대 국회의원 300명의 평균 나이는 54.9살이며 남성이 81%를 차지한다. 평균 재산은 21억8천만원이며 출신 직업은 국회의원·정치인(220명), 법조인(20명), 교수 등 교육자(19명), 기업인(9명) 순이다. 평균 나이 42.6살, 성별 비율(여 50.1%, 남 49.9%), 가구 평균자산 4억3191만원인 한국 사회의 ‘평균’과 여러모로 동떨어져 있다. 55살·남성·전문직·22억원의 자산가가 지배하는 국회에 등장한 28살·여성·전직 노동자·7078만9천원의 재산을 가진 류 의원은 단지 ‘원피스’ 때문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다양한 이들의 국회’라는 새로운 대표성을 상징한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17대 국회에서 지체장애인인 장향숙 의원이 당선된 뒤 국회에 처음으로 건물마다 휠체어 라인이 깔렸다. 그때 처음으로 장애인들이 국회에서 세미나도 하고 항의도 할 기회를 얻었다. 장 의원으로 인해 국회는 비로소 장애인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대표성’을 획득했다”며 “류 의원은 현실에 존재하는 20대 여성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옷을 입고 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의회엔 까만 양복도 있고 빨간 원피스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류 의원이 언론이 주목하는 대상이 되고 찬반 의견집단이 나뉘어 논쟁하는 것만으로도 한국 사회의 정치적 다양성에 대한 논의의 진전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여성주의 연구가인 권김현영씨는 “20대 남성 정치인들을 보면 대부분 평소에 안 입었을 양복을 입는다. 지금껏 20대에게 그런 공식적인 자리 자체가 주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세대와 달리 20대만의 티피오(TPO, 시간·장소·상황에 따른 옷)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20대의 옷이 국회에 안 어울린다는 건 국회가 지금껏 20대를 전혀 대표하지 않고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분석했다.

‘민의의 전당’이라고 하지만, 외국에서도 의회는 국민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보다는 기득권의 이해관계를 대표하고 권위를 중시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다. 이 때문에 ‘낯선 의상’은 차별과 관행에 저항하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미국 하원의원이자 흑인인 바비 러시는 2012년 의사당 연단에 올라 흑인 청년이 후드티를 입고 걸어가다 백인 자경단원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을 언급하며 양복 안에 입었던 후드티의 모자를 뒤집어썼다. 미국 여성 하원의원들은 2017년 민소매 옷을 입지 못하게 하는 의회의 암묵적인 드레스코드에 맞서 ‘소매 없는 금요일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2월 영국의 트레이시 브레이빈 의원은 한쪽 어깨를 드러낸 검은 드레스를 입고 의사진행발언을 해서 논란이 됐다. 그는 영국 정가에서 성차별 문제에 대해 꾸준히 발언해온 인물이다. 특별한 주장이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단순히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편한 옷을 입는 의원들도 늘어나고 있다.

류 의원이 일으킨 ‘국회 복장’ 논란은, 2003년 당시 유시민 개혁당 의원이 ‘백바지’를 입고 등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지 17년 만이다. 그러나 ‘유시민에서 류호정까지’ 흘러온 그간 세월엔 변화가 있었다. 유 전 의원은 백바지를 입고 온 다음날 양복을 입었다. 류 의원에겐 동료 의원들의 응원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날 “원피스가 입고 싶은 아침”이라며 류 의원을 격려했다. 이원욱·고민정·김남국 등 민주당 의원들도 페이스북을 통해 응원 글을 남겼다.

류 의원도 달랐다. ‘원피스’ 기사가 쏟아진 다음날인 6일 그는 하늘색 셔츠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을 하고 국회 의원회관으로 출근했다.

정환봉 이지혜 기자 bonge@hani.co.kr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원피스’를 입어 찬반 논란을 일으켰던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6일엔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국회 의원회관에 출근했다. 류호정 의원실 제공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원피스’를 입어 찬반 논란을 일으켰던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6일엔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국회 의원회관에 출근했다. 류호정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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