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장비 구매 목록 이견
한국이 러시아에 빌려준 경협차관 미상환금 13억여달러 중 7억달러 가량을 군사장비와 군사기술협력으로 돌려받는 한-러 군사기술협력사업(3차 불곰사업)이 군사장비 구매목록을 둘러싼 양국 이견과 부처 간 조율 미비로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사업 양해각서에 서명한 뒤 올 들어 4월14일 국장급 실무협상과 21일 한-러 방산군수공동위를 통해 러시아와 두 차례 이 문제를 협의했으나 협력 프로그램 합의에 실패했다. 어떤 군사장비를 살지를 두고 한-러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서다.
한국은 러시아에 개량조준기와 카모프(KA-32) 헬기, IL-103 생도실습기의 도입을 제시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한국이 2006년 제시했던 원래 목록에서 T-80U 전차와 BMP-3 장갑차, 대전차 유도무기인 메티스-엠, 공기부양정인 무레나를 제외한 것은 원칙 파기로 수용할 수 없다고 맞섰다.
러시아는 “군사장비인 메티스-엠과 무레나를 빼고 민수용 장비인 KA-32와 IL-103만 사겠다는 것은 군사기술협력 취지에 어긋난다”는 입장인 반면, 한국은 “KA-32와 IL-103은 민수용 장비지만 상륙기동헬기와 생도실습기 등 군사용으로 쓸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다. 러시아는 지난달 말 드미트리예프 군사기술협력청장 명의로 이상희 국방장관 앞으로 서한을 보내 “한국이 군사장비를 제외한 것은 기존 합의로부터의 이탈이자 균형된 협력 위반”이라며 군사장비 추가구매를 강력 요청했다고 정부 관계자가 밝혔다. 두 나라의 입장이 이처럼 첨예하게 맞서면서 협상은 중단된 상태다.
정부는 지난 10일 외교안보정책 실무조정회의를 열어 대책을 모색했으나, 부처 간 견해가 엇갈려 방침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협상 실무를 담당하는 방위사업청은 “현재의 장비 목록으로는 협상재개가 불가능하다”며 구매 목록 확대를 건의했다. 그러나 국방부와 합참은 “러시아 군사장비의 경우 정비 지연과 부속품 조달 차질 등 후속 군수지원이 문제이며, 현 국방예산으로 군 소요가 없는 장비를 구매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외교부는 9월로 예정된 한-러 정상회담에 끼칠 파장을 우려하며 “후속 군수지원 문제의 해결을 전제로 군사용 완성장비 도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 사업이 러시아 최대 관심현안으로 양국 관계의 주요 척도인 만큼, 7월초 선진 8개국 정상회의와 대통령 방러를 앞두고 우리쪽의 합의 파기는 양국간 협력관계 구축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외교부는 특히 서캄차카 유전개발과 사할린 천연가스 도입, 시베리아 개발 등 에너지·경협 외교 추진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는 분석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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