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회담장소 묘향산-금강산 놓고 줄다리기
2004년 탈북자문제 등 이유 회담 10개월 지연
2004년 탈북자문제 등 이유 회담 10개월 지연
남북회담은 늘 진통을 수반했다. 2000년 7월부터 2007년 6월까지 21차례 열린 남북 장관급 회담도 여러 차례 파행을 겪었다. 대체로 북한이 국제 환경 악화나 남한 정부에 대한 불만을 이유로 짧게는 열흘, 길게는 10달까지 일방적으로 회담을 늦춘 일이 있었다. 물론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엔 재개와 관계 복원이 이뤄지곤 했다.
가장 큰 진통을 겪은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8월 예정된 15차 장관급 회담이었다. 회담을 한달 앞두고 동남아 지역에서 탈북자 460명이 남한에 입국하고 남한 정부가 박용길 장로 등의 김일성 주석 10주기 행사 참석을 막자 북한은 실무접촉을 거부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회담이 재개되기까지는 무려 10달이 걸렸다.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이듬해 6월 대통령 특사로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5시간 단독 면담을 하면서 풀렸다. 정 장관은 김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200만㎾ 대북 송전이 포함된 이른바 ‘중대 제안’을 했다. 북한은 곧바로 대표단을 서울로 보냈고, 남북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이산가족을 위한 금강산 면회소 건설 등에 합의했다.
북한은 또 이를 계기로 그동안 거부하던 6자회담에도 다시 참여하겠다고 선언했고, 몇 달 뒤엔 ‘9·19 공동성명’에 합의했다. 그러나 9·19 공동성명 합의 직후 미국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을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해 이 은행에 개설된 북한 계좌를 동결시킨 이른바 ‘비디에이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정세가 급속히 악화됐다. 결국 남북 정상회담은 2007년 10월까지 기다려야 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3월 열릴 예정이던 5차 장관급 회담도 6개월 남짓 늦춰졌다. 당시 전금진(전금철) 북한 단장은 회담 당일 아침에 “여러 가지를 고려해 나올 수 없다”고 남한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아들 조지 부시 행정부의 ‘악의 축’ 발언 등 대북 강경노선에 대한 반발로 해석됐다. 북한은 6개월여의 냉각기를 거친 뒤 9월 서울 회담에 동의했다. 이 회담에서 남북은 개성공단 건설 추진, 경의선 철도·육로 연결 등에 합의했다.
당시 경색 국면 해소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민간 교류였다. 회담 결렬 3개월 뒤 민간단체 중심으로 금강산에서 6·15 공동선언 1돌 남북 공동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는 평양 8·15 통일축전 참가로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 일부 남한 인사들이 북한의 통일노선 상징물인 ‘3대 헌장탑’ 앞 행사에 참석했다. 이 일로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책임을 물어 국회에서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자 북한은 12일 뒤 5차 장관급 회담을 재개했다. 당시 보수세력의 색깔몰이가 확대되면서 남한에서 대화파의 입지가 좁아지자 북한이 온건 노선을 채택한 것으로 풀이됐다.
2001년 10월로 예정됐던 6차 장관급 회담은 회담 장소를 둘러싼 남북간 줄다리기로 16일간 지연됐다. 남한은 장소로 묘향산을 요구했으나, 북한은 금강산을 주장했다. 남북은 10여 차례 전화통지문을 주고받으며 신경전을 벌였다. 북한은 당시 “금강산도 산이고 묘향산도 산인데 구태여 금강산을 반대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며 남쪽을 압박했다. 결국 남한이 양보해 ‘지각 회담’이 열렸다.
노무현 정부의 첫 회담도 험로를 피해가지 못했다. 2003년 4월 열릴 예정이던 10차 장관급 회담은 ‘대북송금 특검법’이 발목을 잡았다. 국회는 2월 김대중 정부와 현대아산이 6·15 정상회담의 대가를 북한에 송금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북한은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자 격하게 반발했다. 결국 10차 장관급 회담은 애초 예정일보다 20일 늦어졌다.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은 “남북간 회담은 한반도 안팎의 상황에 따라 갈등과 파행을 겪을 수 있다. 이런 어려움을 뚫고 나아가려면 남북이 함께 정치적 의지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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