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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외교관으로 잘나가던 그가 4월 말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잔 하는 자리에서 불쑥 “마음을 어느 정도 굳혔다. 외교부를 떠나 다른 인생을 도모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동북아시아국장으로 재직할 때 벌어진 한-일 군사정보협정 파문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뒤 1년 가까이 무보직 상태로 방치돼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이겠거니 하고 내심 추측했다.
그 말을 듣고 ‘외교관의 꽃’이라고 하는 대사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는데, “대사라도 한번 하고 난 뒤에 그런 결정 해도 늦지 않다. 그간의 경력이 아깝지 않으냐”고 물어봤다. 한-일 군사정보협정 파문 때 당시 청와대에서는 대외전략기획관이었던 김태효씨가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외교부에서는 ‘다 청와대에서 시킨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한 조병제 당시 대변인(현 말레이시아 주재 대사)과 그가 보직해임된 바 있다. 외교부로선 청와대와 국방부가 주도한 일에 뒤늦게 끼어들어 억울하게 정을 맞은 감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도 말리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앞으로 공관장을 해도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의외의 말이 돌아왔다.
며칠 전 그가 조세영(52) 전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이라는 명함을 버리고 동서대 특임교수, ‘살아있는정치경제연구소 대표’라는 새 명함을 들고 나타났다.
인터뷰/오태규 논설위원 페이스북 @ohtak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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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강의는 어땠나?
“이제 겨우 두 번 했는데, 학생들 반응이 진지하고 좋았다. 대학 4학년생 대상의 ‘동북아 현안 연구’라는 강의인데, 교과서를 따로 정하지 않고 외교부 경험과 실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외교부를 떠난 것에 대한 미련은 없나?
“앞에 볼 게 너무 많이 있어서 뒤를 볼 겨를이 없다.”
남들이 선망하는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버리고 비정규직이라고 할 수 있는 특임교수의 길을 가는 데 대한 불안감을 찾아보기 힘든 밝은 표정이었다. 그래도 30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떠난 것인데 뭔가 속사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한-일 군사정보협정 체결 문제로 국장에서 보직해임되고, 원하던 자리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 때문에 외교부를 떠나기로 마음을 굳힌 것 아닌가?
“인생의 큰 전환은 대개 우연한 일이나 사건 같은 게 계기가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20대 젊은 시절부터 계속 ‘자유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그런 게 없으면 아무리 우연한 계기가 와도 결단을 할 수 없지 않나. 일생일대의 방향 전환인데 그런 불만 때문이겠는가.”
-한-일 군사정보협정 처리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어떤 문제가 있었다고 보는가?
“매우 민감한 문제임에도 안에서 충분하게 공론화를 하지 못했고, 그래서 국민의 충분한 이해와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 정권 차원에서 그 일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각오와 의지가 과연 충분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앞으로 특임교수 말고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을 텐데,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국내외 인물 중 본받고 싶은 인물은 있는가?
“실천적 문필가, 평론가를 하면서 사회와 소통하고 그래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 우선 우리 외교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외교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넓히는 일을 하고 싶다. ‘살아있는정치경제연구소’라는 개인연구소를 만든 것도 전직에 갇혀 있지 않고 평생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다. 롤모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70, 80이 넘어서도 자기 분야에서 열정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는 외교관 생활 통산 29년3개월 동안 일본대사관 3차례 근무와 연수를 포함해 모두 일본에서만 12년을 생활한 일본 전문 외교관이다. 서울 외교부 본부에서 일본 업무를 담당한 것까지 합치면 외교관 생활의 8할을 일본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가 일본군 군대위안부를 비롯한 역사인식의 문제로 심하게 꼬여 있는데 일본 전문가로서 해법은 무엇인가?
“한-일 외교 현장을 25년간 지켜본 사람으로서 요즘이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시선이 가장 차가운 시기인 것 같다.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같은 진보 성향의 매체까지 한국 정부와 정치인의 민족주의가 일본의 국민감정을 자극한다고 비판할 정도다. 지금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잠복하여 있는 영토, 역사 문제 등 근본 모순이 모두 표면화하는 느낌이다. 이른바 65년 체제라는 한-일 관계 1.0이 한계에 봉착했는데 새로운 버전은 보이지 않는 상태라고 본다. 한-일 관계 2.0을 모색하는 진통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증요법으로 서둘러 마찰을 봉합한다고 해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근본 모순을 해소하지 않는 한 뭔가 보여주려고 만든 성과는 금방 잊히고 마찰은 다시 불거질 것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취임하고 6개월 이상이나 일본 총리와 만나지도 못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면서 두 나라 정상이 빨리 만나야 한다는 얘기도 많이 나오는데.
“정상회담을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런 때일수록 정상이 서로 만나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정상회담은 개인이 만나듯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2011년 12월 교토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독도, 일본군 군대위안부 문제가 있음에도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분위기 속에서 만났는데 결과가 어땠는가. 그렇게 서로 얼굴 붉히고 정면충돌할 거라면 하지 않는 게 좋았을 것이라고 당시 회담을 준비했던 실무자(동북아시아 국장)로선 후회를 한다. 정상회담 개최보다 대일외교의 큰 그림과 한-일 관계 버전 2.0을 고민하는 게 더욱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부나 정계의 소통이 소원해진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상회담보다 양국의 외교통상 실무 당국자들이 지금보다 몇 배 더 자주 만나 긴밀히 소통할 필요가 있다. 그를 통해 새로운 한-일 관계의 틀을 만들어내야 한다.”
2011년 엠비-노다 만났지만
얼굴만 붉히고 끝나버려
지금은 외교 실무자들이 만나
한일관계 시즌2를 모색할때
군위안부 문제 철저히 따지되
독도 문제는 ‘과유불급’
일 도발땐 단호한 대응 맞지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건 막아야
-일본군 군대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 징용 피해 보상 문제를 보면 해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
“군대위안부 문제는 철저히 따져야 한다. 여성 인권 문제이며, 전시 성노예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에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고 해서 따질 것도 안 따지는 것은 안 된다. 피해 당사자와 관련 단체의 의견을 다시 한번 확인한 뒤 중재위원회에 회부해서 철저히 논의했으면 한다. 한-일 정부 간 외교 사안으로 협상하기보다는 국제무대로 옮겨 세계 차원의 압력이 일본에 가해지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지 모른다. 독도 문제는 ‘유소작위, 과유불급’의 자세로 대응해야 한다. 일본이 도발하면 따끔하게 대응해 교훈을 줘야 하지만, 지나친 것은 아니하는 것만 못하다. 특히 국내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징용자 피해 문제는 법원의 판단과 관계없이 정부가 안고서 해결하는 것이 맞다. 정부가 이미 강제징용자 보상 문제는 청구권협상으로 종결되었다고 밝힌 이상 더 보상할 것이 있다면 정부가 검토해야지 일본에 요구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일본의 우경화, 군사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우려가 많다. 우리의 대응 방안은 무엇인가?
“집단자위권 인정과 같은 일본의 안보정책 변화에 우려를 표명하거나 평화헌법과 전수방위를 견지하도록 촉구하는 것 이상으로 딱히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런 흐름을 막는다 하는 것보다 우리가 일본을 어디까지 안보 파트너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먼저 정해야 답이 나온다. 우리의 안보는 한-미 동맹을 기본으로 하면서 미-일 동맹을 이를 뒷받침하는 세트로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군사적 합리성으로 보면 한-일 간에 일정 수준의 안보협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역사수정주의의 아베 신조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런 주장이 설 자리가 더욱 좁아졌다. 일본이 역사인식과 보통국가의 두 바퀴를 굴리지 않고 보통국가라는 바퀴만 굴리려 해서는 잘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 외교가 일본 경시, 중국 중시로 균형을 잃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중국 외교의 강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일본도 경시해서는 안 되는 상대다. 결국, 균형잡힌 외교를 구사하는 게 핵심이다. 유동적인 지역 정세 속에서 우리 외교에서는 유연성과 부드러움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외교부 동료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직업 외교관으로서 주장이 있어야 하고, 또 주장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러려면 공부를 해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 자신감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시대가 실무화를 요구하고 외교관료의 전문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있는데 그럴수록 자기주장을 더 해야 한다고 본다. 몸이 아프면 명의를 찾고 중요한 전투에서 명장을 찾듯이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서 명외교관을 찾게 되도록 힘을 길러주길 바란다.”
-관료사회라는 온실을 벗어나 보호막이 없는 사회로 나오면서 느낀 점도 많을 텐데.
“외교관 경력만 30년이고 책(<봉인을 떼려 하는가> 아침, 2004)도 한 권 썼는데 석·박사 학위가 없다 보니 길을 뚫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의 알맹이보다 학위나 스펙을 먼저 보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절감했다.”
그는 서울이 아닌 부산의 동서대를 택한 이유에 대해 “그곳이 오래전부터 일본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인재를 초빙해 일본연구소까지 설립한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서울과 지방 간의 현실이 너무 다른 것을 알았다”며 “내 역할이 강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죽고 어깨가 처져 있는 지방의 젊은 학생들에게 용기와 의욕, 꿈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의 새로운 도전이 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의 바이러스를 퍼뜨려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