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사참배 등 한국만 목청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정치인답게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7일(현지시각) 오후 한-미 외교장관 회담이 끝난 뒤 워싱턴 국무부 청사 7층 트리티룸에서 열린 약식 기자회견에서 본 케리 장관은 많이 달랐다. 그는 손에 들고 온 자료만 약 10분간 읽었다.
케리 장관은 발표문에서 최근 동북아 정세는 물론 한-미 관계에서도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평소 기자들의 질문에도 매우 공세적으로 답변하는 그였지만 이날은 기자들의 질문을 아예 사양했다. 시간이 없다는 게 이유였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케리 장관의 이날 처신은 기본적으로 한-일 관계의 민감성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판한 국무부 대변인 성명 수준의 내용마저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일본을 배려한 측면이 큰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이 분명한 문제라는 인식은 갖고 있지만, 일본과 안보협력을 더 중시하는 미국의 태도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또 아베 정권이 미국의 오랜 숙원인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을 승인해준 데 이어, 오바마 행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성공적 출범에도 매우 중요한 파트너라는 점도 고려했을 수 있다.
반면 윤병세 외교장관은 일본에 대한 비판 수위를 한껏 높였다. 윤 장관은 케리 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케리 장관과 최근 동북아에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며 “특히 역사 문제가 동북아에서의 화해와 협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음을 지적했고, 진정성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두 사람은 동북아에서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와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윤 장관의 발언에서도 케리 장관이 아베 총리의 행태를 비판했다는 대목은 나오지 않는다. 케리 장관은 윤 장관이 일본을 비판하는 대목에서 윤 장관의 원고를 보며 유난히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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