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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백신을 통해 서로를 보호한다는 것은?

등록 2021-07-13 09:59수정 2021-07-13 10:06

김준혁의 의학과 서사(50)
코로나19의 ‘면역에 관하여’
코로나19 백신을 응원하는 거리 예술. 출처: 프레스뉴스에이전시
코로나19 백신을 응원하는 거리 예술. 출처: 프레스뉴스에이전시

지루한 코로나19 대응, 지금을 후반전이라고 말해도 될까. 다른 대응책이 없어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로 버텨야 했던 전반전을 지나, 백신을 개발하여 전 국민에게 백신 접종을 할 때까지 버티는 상황을 후반전이라고 부른다면 말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백신 접종에 가장 큰 장벽은 저소득 국가에서처럼 국가와 제약회사 간 공급 계약이나 백신 운송 및 보관이 아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백신 접종 거부자다. 코로나19 백신이 처음 시작되던 지난 3월에도 논의가 되었던 주제이지만, 당장 백신 접종을 이행하는 일이 급해서 깊이 따져보진 못했다. 사실, 외국처럼 백신 접종 거부가 조직적인 운동의 형태를 띠고, 프랑스처럼 50%에 가까운 시민이 접종 거부 의사를 밝히는 등의 일이 여기에선 벌어지지 않으므로 다행이긴 하다.[1]

오히려, 한국은 사람들이 백신을 맞고 싶어 하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잔여 백신을 스마트폰 앱으로 예약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놓고 경쟁하게 되었으며 이를 행동 경제학의 게임화(gamification) 이론으로 해석해볼 여지도 있다.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마치 게임을 이겼을 때의 보상처럼 여겨, 접종을 좋은 일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완강히 버티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시민 천 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관련 인식조사’를 매달 시행했다.[2] 백신 접종을 받지 않겠다고 대답한 사람은 3월 12.9%서 4월 19.6%로 대폭 상승했다가, 5월 16.1%로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 표본과 상황에 따라 변화는 있지만 적어도 100명 중 13명은 백신을 맞지 않겠다는 생각을 전혀 바꾸지 않고 있는 셈이다.

물론, 나머지 전부가 백신을 맞으면 되는 일이니 큰 문제가 되는 숫자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백신을 맞고 싶어도 못 맞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백신 접종을 미루고 있는 20%가 있고, 이들이 백신 접종 거부자의 의견에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임을 고려해야 한다.

오히려, 접종 거부자도 백신 접종을 받도록 설득할 때 접종을 미루는 이들도 접종을 받도록 끌어들일 수 있다는 생각은 타당해 보인다. 즉, 우리는 코로나19 대응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접종 거부자들을 끌어들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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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을 맞지 않겠다는 이유 이해하기

백신 접종을 받지 않으려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이상반응, 즉 접종 후 몸에 문제가 생길까 봐 두렵다는 것과 백신의 효과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례 없이 빨랐던 백신 개발 기간으로 인하여 초기엔 효과에 대한 의구심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이스라엘, 영국, 미국 등 백신 접종을 서둘렀던 국가에서 효과는 충분히 증명되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희귀 혈전증과 같은 증상이 발생할 확률은 코로나19에 걸려 비슷한 혈전 반응이 생기거나 다른 중대한 신체적 증상이 발생할 확률보다 상당히 낮다.[3] 자료에 의하면, 백신 접종 후 희귀 혈전증으로 사망하는 것보다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사망할 위험이 4~10배 높다.

하지만 사람들은 코로나19에 걸려서 위험한 증상을 겪고 사망하는 것보다 백신 접종으로 인한 위험을 훨씬 크게 느낀다. 이런 과장된 인식을 심리학은 편향, 즉 뇌의 경향성으로 설명한다.[4]

가용성 편향이란 눈에 잘 띄는 사건에 무의식적으로 훨씬 큰 가능성을 부여하는 경향을 말한다. 코로나19로 매일 사람이 사망하지만, 이제 사망자는 언론에서 보도하지도 않는다. 반면, 국내외에서 발생한 백신 이상반응은 대서특필된다. 그러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은 이상반응의 가능성을 훨씬 크게 본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수치에 집중하지 않고, 숫자가 나오면 일단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도 많기 때문에 눈에 잘 띄는 이상반응이 더 잘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한계가 있다. 처음에 사람들이 백신을 더 위험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정부와 언론을 비롯하여 각계각층이 백신보다 코로나19가 위험하다는 내용을 이렇게 열심히 설명해도 처음 생겼던 인식 또는 편향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2016년에 출간된 ‘면역에 관하여’에서 율라 비스는 백신 거부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보려 한다. 사람들이 백신을 거부하는, 또는 혐오하는 이유는 백신에 연결된 은유 때문이다. 서구에서 백신은 흡혈귀의 은유에 감싸여 있다. 즉, 은연중에 사람들은 백신을 흡혈귀와 연결하고, 피를 빠는 괴물이 가져오는 공포와 혐오를 백신에 덮어씌운다는 것이다. 백신과 흡혈귀의 연결은 그렇다 치고, 갑자기 은유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는 면역 거부와 집단 면역을 둘러싼 여러 표현을 생각해 본 책이다. 비록 책이 독감 백신을 다루고 있으나, 코로나19 상황을 생각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 출처: 알라딘
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는 면역 거부와 집단 면역을 둘러싼 여러 표현을 생각해 본 책이다. 비록 책이 독감 백신을 다루고 있으나, 코로나19 상황을 생각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 출처: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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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은유 이해하기

건강과 질병에 관한 문제에서 은유의 문제를 처음 지적한 것은 ‘타인의 고통’ 등의 저술로 유명한 미국의 평론가, 사회 운동가 수전 손택이다. 그는 유방암으로 치료를 받으며 불확실한 앞날로 힘들어하는 와중에, 자신의 몸과 질병을 부르는 표현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도 그럴 것이, 암을 치료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언어들이 전쟁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암과 항생제는 환자의 몸에서 ‘싸운다’. 항생제는 암을 향한 ‘폭격’이고, 암은 자신의 ‘거점을 지키기 위해 방어 전략을 구사한다’. 의사는 암과의 ‘전쟁’에서 환자를 구하기 위해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이다.

손택은 이런 어휘들이 암을 향한 공포를 가중하는 한편, 환자를 치료 과정에서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환자의 몸은 ‘전쟁터’일 뿐이기에, 그 안에서 암과 의사가 벌이는 전쟁에 끼어들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암에 연결된 전쟁의 은유는 무용하므로, 이런 은유를 철폐해야 한다고 손택은 역설한 바 있다.[5]

하지만, 우리는 은유 없이 살 수 없다. 은유란 의미의 이동과 전환을 의미한다. 은유의 대표적인 표현, ‘내 마음은 호수요’만 보아도, 마음과 호수가 서로 작용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듦을 알 수 있다. 우리 언어는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에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기에(쉽게 말하면,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기에) 삶은 은유를 필요로 한다.

특히, 아픈 경험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매우 어려웠던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은유 없이 아픔과 고통, 죽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렇기에, 질병과 은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문제는 은유 자체가 아닌 질병을 둘러싼 ‘나쁜 은유’다. 그리고 이것은 백신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 손택이 유방암으로 투병하며 쓴 에세이 ‘은유로서의 질병’과 이후 에이즈 낙인에 저항하며 쓴 ‘에이즈와 그 은유’를 합쳐 책으로 만든 것이다. 손택은 첫 에세이에서 질병의 은유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다가, 질병과 은유를 떼놓을 수 없음을 깨닫고 나쁜 은유에 반대하는 쪽으로 선회한다. 출처: 알라딘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 손택이 유방암으로 투병하며 쓴 에세이 ‘은유로서의 질병’과 이후 에이즈 낙인에 저항하며 쓴 ‘에이즈와 그 은유’를 합쳐 책으로 만든 것이다. 손택은 첫 에세이에서 질병의 은유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다가, 질병과 은유를 떼놓을 수 없음을 깨닫고 나쁜 은유에 반대하는 쪽으로 선회한다. 출처: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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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현대적 삶의 불안을 상징하다

다시 백신으로 돌아가서, 왜 흡혈귀인가? 1881년의 한 전단은 “백신 뱀파이어”라는 표현을 쓰면서 백신이 “순수한 아기”에게 가하는 “광범위한 오염”을 경고하고 있다.[6] 흡혈귀가 자신의 괴물성을 흡혈을 통해 피해자에게 전염시키듯, 백신도 피를 타고 들어가 우리 아이의, 나의 몸을 타락시킨다는 염려가 150년 전부터 나타났던 것이다.

1894년의 백신 반대 운동 전단. 그림에서 백신은 강령술로 움직이는 뱀으로 묘사되어 있다. 비록 죽음과 뱀이 나뉘어 있으나, 흡혈귀와 백신이 연결되어 있음이 전단에서 잘 드러난다. 출처: 논문[7]
1894년의 백신 반대 운동 전단. 그림에서 백신은 강령술로 움직이는 뱀으로 묘사되어 있다. 비록 죽음과 뱀이 나뉘어 있으나, 흡혈귀와 백신이 연결되어 있음이 전단에서 잘 드러난다. 출처: 논문[7]

백신과 흡혈귀는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다. 에드워드 제너의 종두법이 유럽과 미국에 퍼져 나간 것이 1800년대 초이며,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가 출간된 것이 1897년이다. 백 년 정도 시차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드라큘라’는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이 아니다. 이미 항간에 유행하고 있던 이야기를 소설의 형태로 정리했던 것이 스토커의 작품이었다.

19세기 영국, 사람들은 산업 문명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한 불확실성으로 큰 불안감을 느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은밀한 곳(침실)까지 침투해와 자신을 위협한다고 느낀 것이다. 그 불안을 형상화한 것이 흡혈귀, 눈빛으로 매혹해 잠긴 창문을 넘어 들어와 피를 빨아내고 대신 오염을 주입하는 괴물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백신 또한 같은 위치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백신은 현대 과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우리에게 도래했다. 주사는 우리 몸의 경계를 넘어선다. 아파서 치료를 받는 게 아니므로 이전에 사용하던 약과는 다르다. 접종은 몸속으로 ‘무언가를’ 주입하며, 그 불확실성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런 ‘피를 타고 알 수 없는 성분이 흘러 들어가 우리를 오염시킬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라는 백신과 흡혈귀 사이 연결고리는 쉽게 생각해볼 수 있다. 두 개념은 서로 만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백신은 흡혈귀의 잔혹함과 두려움을 뒤집어쓴다. 이것이 백신 거부 운동의 출발점이라고 비스는 말한다. 특히, 백신에 불안감을 느끼고 접종을 반대하는 것이 현대 문명을 향한 불안 위에 놓여 있다는 비스의 진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백신 반대 운동이 백신 대신 ‘자연 치유’를 선호하는 것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대중문화에서 흡혈귀가 차지하는 무게가 상당히 낮은 한국에 비스의 ‘백신과 흡혈귀 은유’ 설명을 적용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것이 ‘면역에 관하여’가 코로나19 백신 국면에서 다시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석영이 상당히 빨리 종두법을 조선에 들여왔지만, 일제강점기라는 공백기로 인하여 백신이 이 땅에 자리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히려, 백신 반대 운동이 국내에 등장한 것이 최근이라면, 우리는 백신에 대한 은유를 인제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때 현대 과학에 대한 불안과 백신이 이어져 있다면, 흡혈귀와 같은 나쁜 은유가 만들어지고 퍼지도록 놓아둘 수밖에 없는 것일까? 우리는 그에 대항하여 다른 은유를 말해야 한다. 예컨대, 비스는 백신과 헌혈을 연결하려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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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다”

헌혈은 사고가 났을 때를 대비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헌혈하는 사람에게 이득을 준다. 또한 우리 각자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인간으로서, 더 큰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타적인 행위다.

흡혈귀도 헌혈도 피를 뽑아간다. 하지만 흡혈귀는 자신의 육체적 만족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면, 헌혈은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한다. 백신 접종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일단 나를 보호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맞는 것이기도 하다.

비스는 감염병이 우리 몸의 취약함을 일깨워준다는 것, 우리는 각자 구별된 개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서로 가깝다는 점을 열심히 살핀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면역이란 함께 정원을 가꾸는 일과 같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 몸을 무엇으로 여기기로 선택하든,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다.”

코로나19가 지나간 다음, 우리는 백신을 무엇과 연결하게 될까. 현대 사회의 불안을 강조하는 은유 대신, 서로를 위한 보호를 의미하는 은유로 백신을 사고할 수 있을까. 나는 백신을 통한 우리의 실천이 서로를 향한 보호의 증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백신 접종은 단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우리 약한 몸들이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식임을, 이번 코로나19를 통해 우리 모두가 배울 수 있기를 꿈꾼다.

김준혁/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참고 문헌

1. 한국일보. 없어서 난리인데 백신 안 맞겠다는 사람들…“접종 전쟁은 이제 시작”. 2021.6.5.

2. 중앙사고수습본부. 코로나19 관련 인식조사(3월). 2021.3.24.; 중앙사고수습본부. 코로나19 관련 인식조사(4월). 2021.5.5.; 중앙사고수습본부. 코로나19 관련 인식조사(5월). 2021.5.31.

3. 청년의사. 백신 접종 후 희귀혈전증의 ‘찐’ 위험도 분석. 2021.4.29.

4. Schroeder A. Vaccine hesitancy: How behavioural sciences can help us understand this phenomenon.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 Blog. 2021.3.22.

5. 수전 손택. 이재원 역. 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2002.

6. 율라 비스. 김명남 역. 면역에 관하여. 열린책들; 2016.

7. Law TCW. Prophylactic Fictions: Immunity and Biosecurity [dissertation]. University of Pennsylvania;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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