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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연결의 에너지’가 생과 사를 가른다

등록 2023-03-10 10:00

[주철현의 커넥션]
(2) 삶과 죽음
기본 사회 집단인 가족도 연결 에너지가 클수록 끈끈한 유대를 보여준다. 픽사베이
기본 사회 집단인 가족도 연결 에너지가 클수록 끈끈한 유대를 보여준다. 픽사베이
이전 시간에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현인의 통찰을 이야기했다. 친구, 회사, 동창, 종교, 동호회 등등 우리는 작게는 가족, 크게는 국가까지 다양한 사회 집단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집단에 소속이 된다는 것은 타인과 연결된다는 걸 의미한다. 개인이 가진 수많은 연결은 자아를 형성하는 근원이 된다. 그리고 집단은 연결을 위한 노력의 총합으로 유지된다. 만약 연결을 위한 구성원들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그 집단은 해체된다.

여기서 말하는 노력이란 무엇일까? 아기를 돌보는 시간도 노력이고, 동호회에 납부하는 회비도 노력이다. 즉 내가 아닌 남과의 연결을 위해 투자하는 유무형의 모든 에너지를 노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자주 보지 않으면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친한 친구일수록 연결에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연인과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될 것이다. 즉 강한 연결은 더 많은 에너지를 의미한다. 기본 사회 집단인 가족도 연결 에너지가 클수록 끈끈한 유대를 보여준다. 가정의 화목은 공짜가 아니다.

여기서 잠깐 가족이 가진 흥미로운 특징을 살펴보고 넘어가자. 다른 사회 집단과 달리 구성원들이 투입하는 에너지가 동등하지 않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에너지를 일방적으로 투입한다. 하지만 자식이 거기에 상응하는 에너지를 되돌려 주는 경우는 드물다. 흔히 ‘내리 사랑’이라 불리는 이런 현상은 일반적인 사회 집단에서는 잘 관찰되지 않는다. 이런 비대칭성을 통해 자식은 새로운 연결을 위한 여분의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다. 이 에너지로 친구도 사귀고 공부도 한다. 연애를 하거나 새 가족을 구성하기도 한다. 그러다 자기만의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면 다시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에너지를 투입한다. 불공평해 보이는 이런 연결 에너지의 선순환이 포유류의 성공적인 진화 전략이자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특징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일단 과학 탐구 영역으로 넘어가자.

나무가 타고 남은 재가 뿔뿔이 흩어지듯 에너지가 소진된 집단은 소멸한다. 픽사베이
나무가 타고 남은 재가 뿔뿔이 흩어지듯 에너지가 소진된 집단은 소멸한다. 픽사베이
연결을 위해선 에너지가 필요하다

연결 에너지가 소진된 집단은 소멸한다. 집단이 소멸하면 경계는 없어지고 구성원은 사방팔방 흩어진다. 무질서해 지는 것이다. 이 상황을 과학의 언어로 표현해 보자. 연결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은 엔탈피(enthalpy) 감소, 무질서가 증가하는 것은 엔트로피(entropy) 증가라고 한다. 사회에서도 집단 내의 연결 에너지가 줄어들면 무질서가 따르는 것처럼, 자연계에서도 엔탈피 감소와 엔트로피 증가는 항상 쌍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무질서 증가에 기준을 두고, ‘자연계의 에너지는 무질서해지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열역학 제2법칙을 정의하였다. 이는 엔트로피 법칙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복잡해보이지만 엔트로피 법칙이 말하는 것은 간단하다. 구성 성분의 연결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을 구성하는 분자나 원자 더 쪼개져서 소립자 단위로 내려가도 연결 에너지가 투여되지 않으면 소멸된다. 흔한 이야기로 삼라만상의 법칙이라 할 수 있다. 혹시 무한 동력에 대한 특허가 무조건 거절되는 이유를 알고 있다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무한 동력이 가능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는 엔트로피의 법칙이 깨어진다는 의미다. 엔트로피가 거꾸로 흐르는 세상에서는 산산조각 난 유리잔이 저절로 붙는다. 아래에서 위로 흘러가는 강물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흔한 일이 된다.

엔트로피 법칙을 이용하면 죽음에 대한 과학적 정의를 내릴 수 있다. 물론 뭐가 죽는 것인지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먼저다. 죽음의 대상은 계(system)라고 정의한다. 상상 가능한 가장 큰 계인 우주의 죽음도 정의가 가능하다.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무질서도가 최대에 달하면 죽는다. 여기서 구성 물질은 원자를 구성하는 소립자(혹은 기본 입자)를 말한다. 우주가 죽었다는 것은 소립자들을 연결시키는 에너지가 모두 사라진, 즉 도달할 수 있는 무질서함의 최고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엔탈피와 앤트로피의 증감은 쌍으로 반비례하므로 우주의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다는 것은 모든 물질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물질과 에너지의 관계는 핵폭탄을 만들어낸 아인슈타인의 공식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더 이상 이야기가 산으로 올라가기 전에 여기서 멈추고, 우리 직관의 영역인 인간의 죽음으로 돌아가자.

생명이란 에너지를 이용해 엔트로피 법칙에 저항하는 현상이다. 픽사베이
생명이란 에너지를 이용해 엔트로피 법칙에 저항하는 현상이다. 픽사베이
죽음은 엔트로피 법칙에 몸을 맡기는 것

고대부터 철학의 단골 메뉴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다.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그런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리스텔레스의 필멸성(mortality)일 것이다.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그가 확립한 삼단논법의 대전제가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것이다. 인간 나아가 생물의 본질은 죽음이다.

우주와 마찬가지로 생물의 죽음에 대해 말하려면 먼저 뭐가 죽는지 확실히 정해야 한다. 생물의 계는 개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생물은 열린 계(open system)이지만 그냥 계라고 두자. 죽음은 개체(계)를 구성하는 성분들의 무질서 총합이 증가하는 현상이다. 나라는 사람은 신체라는 고유의 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외부 환경과 경계(피부)로 구분되는 물리적 실체이다. 그리고 나의 죽음은 내 몸을 구성하던 분자의 연결이 깨어지며 무질서도가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이다.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와 흩어진 원자는 다른 생물의 구성 성분으로 재활용이 된다. 말 그대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뻔해 보이는 죽음에 대해 복잡하게 이야기한 이유는 삶, 즉 생명을 정의하기 위해서다. 생명을 먼저 정의하는 것은 더 막연하고 어렵다. 따라서 죽음을 정의하고 그 반대를 생명으로 정의하면 간단하다. 생명이란 에너지를 이용해 엔트로피 법칙에 저항하는 현상을 말한다. 좀 더 풀어쓰면 영양분을 통해 얻은 에너지로 자신의 세포와 신체를 구성하고 구성 성분의 연결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람은 존재만으로도 이미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죽음을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를 엔트로피 법칙에 몸을 맡긴다는 것으로 생각하면 아주 정확한 비유라 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화력, 수력, 풍력, 원자력 등등 여러 형태의 에너지가 있다. 그리고 핵분열을 이용하는 원자력을 제외하면 수력, 조력, 풍력 및 화력 발전 등 모든 에너지는 태양의 핵융합 반응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들은 전기 에너지로 변환되어 현대 문명을 지탱한다. 그런데 생명을 유지하는 에너지는 무엇일까? 따듯한 봄날에 햇살을 받으며 누워 있으면 에너지가 충만해짐을 느낀다. 하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 미량의 비타민D 합성에 도움을 주는 것을 제외하면 태양 에너지는 직접 이용할 수 없다. 또한 사람이 전기나 기름을 먹고 살 수도 없다. 생명 에너지는 음식에 들어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생명은 연결을 통해 질서를 유지하는 현상이며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음식에 포함된 에너지는 무엇이고 어디에서 온 것인지 풀어 나가기로 하자.

주철현/울산의대 미생물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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