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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한국은 ‘기후 악당’…에너지 전환 늦추면 경제마저 망할 것”

등록 2020-09-23 04:59수정 2022-01-13 17:21

안영춘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지난여름 장마·홍수·태풍은 극단적 위기의 전조일 뿐
지금보다 평균기온 1도 더 오르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

장마 때 산사태 난 태양광 패널 두고 난리 친 보수언론
기후위기 눈앞에 두고 산수화라도 그리겠다는 것인가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이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기 전 사진을 찍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이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기 전 사진을 찍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가을 하늘은 여느 해보다 높고 푸르다. 저 청명함에 지난여름 가장 길고도 가장 많은 비를 퍼부었던 장마, 잇따라 역대급 비바람을 몰고 왔던 초강력 태풍들의 흔적은 가뭇없다. 하기야, 지구 종말을 연상시키던 초미세먼지 사태가 불과 1년 반 전 일이다. 코로나19로 인간의 이동과 산업 활동이 줄면서 되찾은 값진 풍경이 아닐는지. 그리고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기후변화니 기후위기니 하는 걱정도 언젠가 저 하늘처럼 말갛게 개지 않을지.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미래인간과학스쿨 특임교수(전 국립기상과학원 원장)는 백일몽을 일축한다. 올가을 푸른 하늘은 “날씨 덕일 뿐”이란다. 지난겨울부터 비가 잦았던데다 강수량도 많았고, 바람은 셌으며, 중국 영향을 주로 받는 서풍보다 동풍이 자주 불었다. 초미세먼지 발생일은 절반이나 줄었지만, 배출량 감소는 턱없이 못 미친다. 온실가스 배출량도 10% 줄었으나, 90%는 고스란히 지구에 축적됐다. 지구온난화는 그만큼 더 진행됐다.

하늘이 터질 듯이 팽팽하던 18일, 기후변화 전문가이자 ‘기후위기 전도사’로 알려진 조 교수를 만나 기후위기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관해 묻고 들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실들을 조목조목 들어가며, 눈에 보이는 감각에만 의존하는 안이한 인식을 하나하나 무너뜨렸다. “기후위기는 아직 본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는 그의 말에서, 액면의 비관보다는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못하는 ‘비관적 낙관주의자’의 면모와 의지가 엿보였다.

―그래도 이 가을 푸른 하늘에서 희망의 단서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푸른 하늘은 미세먼지와 관련돼 있다. 그런데 예전에도 미세먼지 농도는 1㎥에 10㎍(마이크로그램, 100만분의 1g)에서 130㎍ 사이를 오갔다. 배출량이 일정해도 농도가 13배까지 차이가 나는 원인은 날씨 영향 말고 없다. 다시 말해 올해 맑은 공기는 자연 스스로 만든 현상이다. 온실가스를 많이 줄여서 기후변화 대응에 도움이 됐다는 보도도 종종 나오는데, 말도 안 된다. 올해 상반기에 배출량을 약 10% 줄였다지만, 온실가스는 수백년 동안 그대로 지구에 축적된다. 2020년에도 온실가스 농도는 줄기차게 올라가고 있다.”

―지난여름 날씨가 극단적이었다. 기후위기 때문인가?

“장마, 폭우, 태풍 하나하나를 두고 기후위기라고 진단할 수는 없다. 그런 날씨 현상은 과거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한번이면 자연의 변동성 안에서 나타나는 우연이지만, 한번 더 일어나면 반복이고, 세번 일어나면 경향이며, 네번 다섯번 일어나면 변화다. 이것을 데이터로 명확히 보여주고 설명하는 게 (대기)과학이다. 기후변화, 기후위기라는 진단은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날씨 현상을 대기과학에서는 어떤 식으로 설명하나?

“지구의 모든 기후와 날씨 현상은 태양에너지와 관련돼 있다. 적도 부근은 태양에너지를 많이 받고, 극지방은 적게 받는다. 지구는 그런 불균형 상태를 가만두지 않고 스스로 균형을 되찾으려고 하는데, 그것이 대기와 바다의 흐름을 만든다. 우리나라 같은 중위도 지역 상공 7㎞ 이상에서 빠르게 흐르는 제트기류가 대표적이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지방이 더 따뜻해지면서 적도 부근과 에너지 차이가 줄어 제트기류의 흐름도 느려졌다. 이 때문에 제트기류와 연관돼 발생하는 고기압과 저기압의 교체도 더뎌졌다. 그래서 장마도 오래가고, 폭염도 오래간다. 2020년 장마와 홍수는 한반도가 저기압에 걸려들었기 때문이고, 2018년 폭염은 고기압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갈수록 태풍이 세지는 것도 온난화로 바다의 수증기 증발이 많아진 탓이다. 수증기는 태풍의 에너지다. 그래서 ‘하얀 석탄’이라고 부른다.”

―가뭄·폭염과 홍수는 지구온난화의 거울상인가?

“모두 지구온난화로 날씨에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아서 생긴 것이다. 날씨는 계속해서 변화해야 하고, 반대로 기후는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사람으로 치면 그때그때 감정 변화가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품성은 유지돼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의식주를 비롯해 인간의 모든 문명, 모든 생존 기반은 기후의 지속성에 맞춰져 있다. 기후의 지속성이 사라진 것이 바로 기후위기고, 그것이 곧 문명의 위기, 생존의 위기다. 변화해야 할 것은 지속되고, 지속돼야 할 것은 변화하고 있으니 ‘겹의 위기’인 셈이다.”

―왜 극지방의 온난화가 유독 자주 언급되나?

“바다의 빙하가 녹고 대지의 눈이 녹으면서 태양에너지를 반사하지 못하고 그대로 흡수한다. 거기에 동토층까지 녹으면 수만년 얼어붙어 있던 식물이 메탄가스를 배출하게 되는데,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30배나 강력한 온실가스다. 극지방에서는 온난화가 다른 지역보다 훨씬 심각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파괴력은 전 지구에 미치게 된다.”

―그렇다면 현재 기후위기는 어느 단계까지 와 있다고 보나?

“아직 기후위기를 실감할 정도의 단계가 아니다. 겨우 감지할 정도의 전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 뿐이다. 지구 평균기온이 100년 동안 1도 올라간 지금 상황에서는 홍수, 가뭄, 폭염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도 일상은 그럭저럭 돌아간다. 코로나19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도 하고 있지 않나. 인간 체온이 1도 올라가면 몸이 이상한 것 같다고 느끼는 정도지만 거기에서 0.5도 더 올라가면 완전히 달라지는 것처럼, 지구 기온이 지금보다 0.5도 더 올라가면 극단적인 홍수와 가뭄, 폭염의 강도가 더 세질 뿐 아니라 일상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0.5도가 더 올라가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대기과학자의 감각은 일반인과 다른 게 있나?

“감각이 다를 수는 없다. 다만 대기과학자는 데이터를 통해서 경향을 읽고 위기를 인식한다. 환경오염과 기후위기의 특성 차이가 위기의식의 차이로 이어지는 면도 있다. 환경오염은 사건이 발생하고, 사람들이 피해를 몸으로 경험한 다음, 조사를 거쳐 사건의 원인이 규명된다. 반면, 기후위기는 사건이 먼저 일어나는 게 아니라 과학자들이 예고하고, 언론 보도나 교육을 통해서 머리로 인식된다. 직접적인 경험은 결국 미래에 이뤄진다. 그래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실감 나게 공유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가령 올해 오스트레일리아의 가뭄과 산불, 미국 서부에서 지속되는 산불도 내 일처럼 와 닿지는 않는다.

“‘강 건너 불구경’ 할 일이 아니다.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는 기후변화를 가장 심각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우리의 생존 기반은 이미 한반도 밖에 존재한다. 식량자급률이 20% 조금 넘는다. 쇠고기는 1㎏을 생산하는 데 물 1만5천ℓ가 필요하고, 밀가루는 물 1500ℓ가 필요한데, 우리가 수입하는 쇠고기와 밀가루 등 농산물의 양으로 환산하면 우리나라 안에서 쓰는 농업용수보다 2배 이상 많다. 우리가 쇠고기와 밀을 수입하는 나라에서 가뭄이 들면, 우리는 당장 배가 고파지게 된다. 재난지원금을 아무리 퍼붓는다 해도 먹거리를 살 수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이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이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코로나19의 창궐은 어떤가?

“기후위기의 간접적인 결과다. 그런데 나는 다른 부분에 주목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처음 한 조각에서 시작됐는데, 인류 전체가 고통받고 있다. 온실가스도 마찬가지다. 100년 동안 화석연료를 태워 이산화탄소 농도를 고작 0.01%(100ppm) 증가시켰는데, 인류 문명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환경오염과 달리 기후변화는 통제가 불가능하다. 당장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넷제로’를 실현한다 해도 기존의 온실가스가 축적돼 있기에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제사회가 목표대로 2050년에 넷제로를 달성해도 너무 늦은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적어도 일정하게 통제할 수 있는 수준에서 기온 상승이 멈추게 될 것이다. 모터보트와 유조선의 차이로 비유해보자. 모터보트는 항구 바로 앞에 와서 제동해도 멈추지만, 유조선은 25㎞ 밖에서부터 제동을 걸어야 항구와 충돌하지 않는다. 지금은 대기보다 열의 용량이 1000배나 되는 해양의 변화가 임계점에 와 있다. 2050년은 항구이고, 2020년은 25㎞ 외곽이다. 지금 제동하지 않으면 항구와 충돌한다. 환경오염과 달리 기후위기는 임계점을 넘으면 지구 자체의 작용으로 위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통제가 불가능하고, 회복도 불가능하다. 올여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이야기 제목이 ‘마지막 한번의 기회’였다. 지금이 바로 그 기회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050년 넷제로 목표조차 없다.

“2007년에서 2017년 사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온실가스 평균 배출량이 10% 줄었는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25%나 늘었다. ‘기후 깡패’니 ‘기후 악당’이니 하는 말이 절대 과언이 아니다. 현재 독일은 에너지 전환율이 40%가 넘고, 프랑스와 일본뿐 아니라 파리협정(2015)에서 탈퇴한 미국조차 20%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난 장마와 태풍 때 태양광 패널이 있는 곳에서 산사태가 난 걸 두고 야당과 보수언론에서 ‘반생태적’이라며 난리를 쳤다. 기후위기 앞에서 산수화라도 그리겠다는 건가. 재생에너지 생산가격은 지난 10년 동안 45~85% 떨어졌고, 앞으로 10년 안에 50%가 추가로 떨어질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많이 쓸수록 돈을 버는 구조다. 외국 연구기관들은 석탄발전을 붙들고 있는 한국이 세계 제1의 ‘좌초자산 국가’가 될 거라고 한다. 성장론자들의 논리로도 핵발전과 석탄발전을 고집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우리나라가 유독 이러는 이유는 뭘까?

“과거의 성공 방식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과거의 성공 방식은 이제 경제성장에 오히려 위험요소가 되고 있다. 유럽연합뿐 아니라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 바이든조차 탄소세를 징수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가격경쟁력으로 수출을 해온 우리로서는 답이 안 나온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라도 에너지 전환을 늦춰서는 안 된다.”

―경제계가 문제인가?

“경제계도 문제지만 정치가 핵심이라고 본다. 지금은 과감하게 전환을 해야 할 때인데, 기후위기 대책과 관련된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봐도 ‘우리가 유럽은 아니지 않으냐’고 한다. 우리나라는 식량을 자급자족하고 세계 에너지와 자원을 장악하고 있는 유럽이 아니기에 생존을 위해 더 치열하게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어려움이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정치란 불가능을 가능한 것으로 실현하기 위한 도전이고, 지금은 더욱 그래야 할 때다. 프랑스혁명 전에는 누가 왕을 단두대에 세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나. 결국 기후위기 극복은 깨어 있는 시민들의 연대와 행동에 달렸다고 본다.”

―기후위기가 곧 민주주의의 위기인 듯하다.

“서구의 보수 우파 안보전략가들이 내는 보고서에는 이미 기후위기에 따른 무질서 상태에 대처하기 위해 질서를 유지하려는 권위주의 통치 전략이 자주 등장한다. 극도의 무질서는 대중에게 권위주의 독재를 호출하게 할 것이다. 기후위기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한편 기후위기는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소득 수준 상위 10%가 온실가스의 49% 배출하고, 하위 50%는 10%밖에 배출하지 않는데,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시민이 가장 먼저 피해를 보고 있다. 책임져야 하는 쪽이 책임을 져야 한다.”

―세대 간의 정의 문제이기도 하지 않을까?

“미래 세대 처지에서는 아무런 편익도 얻지 못하면서 윗세대가 저지른 잘못에 고통받고 책임까지 져야 하는 게 기후위기다. 얼마나 억울하겠나. 그레타 툰베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쏘아보는 섬뜩한 표정을 우리는 20년 뒤에 일상으로 마주해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 두렵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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