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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트라우마 많은데 치유 노력은 없는 곳이 한국이죠”

등록 2016-08-17 17:59수정 2016-08-17 19:56

[짬] 트라우마 치유 전문가 권혜경 박사
권혜경 박사.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권혜경 박사.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권혜경(45)씨가 음악치료란 ‘신세계’를 좇아 뉴욕을 찾은 게 1995년이었다. 그 뒤 뉴욕대에서 음악치료학 박사를 받았고, 뉴욕주 정신분석가 자격도 취득했다. 지금은 맨해튼과 뉴저지 두 곳에 심리치료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개업 8년째인 클리닉에는 하루 평균 5~8명의 환자들이 찾는다. 이 ‘뉴요커들의 마음치료사’가 2년 전부터 여름마다 한국을 찾아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세미나를 열고 있다. 최근엔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나를 지켜 내는 방법’이란 부제를 단 <감정 조절>(을유문화사)이란 책도 펴냈다. 지난 10일 한겨레신문사에서 권 박사를 만났다.

그는 2008년 박사 학위를 받을 무렵, 뉴욕에 위치한 정신분석 연구기관인 ‘엔아이피’(NIP)에서 5년 과정의 정신분석가 교육도 마쳤다. “클리닉에서 다양한 트라우마 환자들을 만나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어 엔아이피 등에서 트라우마 심리치료법을 배웠죠.” 그가 음악치료사가 아닌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유다.

그는 2년 전 여름 서울성모병원에서 통합적 트라우마 세미나를 열었다. 계기는 세월호 참사였다. “세월호 유족들이 트라우마 치료를 거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가 전수하는 통합적 트라우마 치유법의 특징은 몸의 변화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몸을 바꾼 뒤 사고와 정서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일반적 심리치료는 대화에 중점을 두죠. 그런데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말을 관장하는 뇌 부위가 꺼져버립니다. 세월호 유족들이 말에 의존하는 치료에 더 상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트라우마는 몸에 저장되기에 몸을 통해 접근하지 않으면 제대로 치료할 수 없고, 치유에서 중요한 것은 환자가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그는 밝혔다. 이번에 낸 책에서도 호흡과 눈 맞추기, 근육긴장 이완 등 몸의 상태를 바꾸어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2014년 첫 세미나엔 50여명이 참가했다. 정신과 의사, 심리치료사, 교수나 간호사가 수강생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올해는 일반 70명, 심화 과정 40여명이 등록했다. “3년 동안 200명 이상이 강의를 들었어요. 이들과 온라인 커뮤니티도 만들었죠. 여건이 되면 한국에서 트라우마 연구회를 만들고 싶어요.”

트라우마 전문가인 그가 보기엔 한국은 트라우마가 많은 곳인데 치유하려는 노력이 별로 없는 곳이다. “뉴욕의 심리치료사는 거의 다 유대인입니다. 그들에게 ‘당신들은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운이 좋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독일이 지금도 전범을 추적하고 있고,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드러내는 책이나 영화도 전세계적으로 많이 나오고 있죠. 이런 게 트라우마 치유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트라우마는 아무런 관심도 못 받고 있어요.”

뉴욕서 심리치료클리닉 운영
세월호 참사 계기로 3년째
국내서 ‘트라우마 치유’ 세미나

‘대화보다는 몸의 변화에 초점’
“환자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게 중요
분노 조절엔 심호흡 큰 도움”

그는 책에서 ‘역사적 트라우마’란 표현을 썼다. 식민지 경험과 전쟁, 군부 독재,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도 어느 나라 못지않은 역사적 트라우마가 존재하는 땅이다. 이 트라우마가 되물림되지 않기 위해선 국가나 사회가 ‘수용기’ 역할을 해 짐을 나눠야 하는데 이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내가 아프다’고 말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게 한국 사회죠. 아픈 게 너무 많은데 치유하려는 노력이 너무 없어요. 개인이 할 수는 없죠. 국가가 부담해야 합니다.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처럼 세월호 관련 기념관도 접근성이 뛰어난 곳에 지어야 합니다. 이런 노력이 트라우마 치유는 물론 장기적으로 사회 자체에 도움이 됩니다.”

그는 인간이 감정을 조절해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선 안전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 사회는 안전한 곳일까? 그의 답은 부정적이다. “한국은 약자에게 관대하지 않아요. 책임을 전적으로 개인에게 전가합니다. 그 결과, 구석에 몰린 약자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가진 사람은 안전을 위해 더 벽을 쌓게 되죠.” 그는 한국에서 만난 서비스 종사자의 지나친 친절에서도 잠재적 트라우마를 본다. “제가 불편할 정도로 친절하더군요. 그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어디로 갈까요. 아마, 그들의 자녀처럼 자신들보다 약한 이들이겠죠.”

그는 책에서 심호흡이 감정 조절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사회엔 분노가 너무 많아요. 습관적으로 교감신경이 작동되지요. 심호흡은 몸에 활성화된 교감신경을 부교감신경으로 바꿔줍니다. 심호흡을 할수록 습관적 분노반응이 줄어들죠.”

그는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한 뒤 작곡가가 되기 위해 음대 대학원에 진학하려 했다. “아버지도 음악을 좋아했고, 언니도 첼리스트였어요. 제 삶 속엔 늘 음악이 있었어요.” 대학 때 집회에서 “노래로 모두가 하나가 되는” 걸 보고 노래의 힘을 느꼈던 그에게 한 친구가 “음악치료라는 게 있는데, 네가 하면 잘할 것 같다”고 권했다. 그의 운명을 바꾼 권유였다. 그는 대학원 진학 대신 뉴욕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는 한국의 ‘정신 치료’가 “눈에 보이는 행동의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미국만 해도 심리치료사나 예술치료사의 영역을 인정하고 북돋아주는데 한국은 무시하는 것 같아요. 다양한 치유 방법을 알아가려는 태도가 부족한 것 같아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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