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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윤 “불법 파업” 지목하자…교섭 테이블 앉았던 ‘슈퍼갑’ 본색

등록 2023-05-30 05:00수정 2023-05-30 07:54

화물연대·플랫폼노조 ‘초기업 교섭’ 퇴행
단식 4일차를 맞은 지난 19일 홍창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조 위원장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단식 4일차를 맞은 지난 19일 홍창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조 위원장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건설노조에 대한 정부의 공세와 이에 저항하며 분신한 양회동의 죽음을 짚으며, 고정기 화물연대 부산지역본부 양산지부장은 지난 19일 <한겨레>에 “한 순간 사라진 화물노동자의 노사 교섭 테이블”을 망연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화주나 운송사가 대화를 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습니다. 안전운임제가 사라진 상태이니 우리가 교섭을 하자고 해도 ‘슈퍼갑’들은 콧방귀만 뀌고 마는 거예요. 건설노조와 참 비슷합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이 “북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언급한 화물연대 총파업 이후, 정부는 ‘안전 운임제’를 사실상 폐지했다. 이후 안전운임제를 고리로 이뤄지던 원청과 하청, 화물 노동자의 대화도 멈춰버렸다. 안전운임제는 특수고용 노동자(특고)인 화물 노동자들이 찾아 낸 대표적인 초기업 교섭 사례로 꼽힌다.

건설노조의 단협, 화물노동자의 안전운임제, 플랫폼 노동자의 단협 등 특수 고용·하청 노동자들의 다양한 교섭 형태와 그로부터 얻은 결실은 노동조합이 노동 계급 내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평가돼왔다. 취약 노동자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 그 과정에서 기업 단위를 넘어 산업 전반에서 표준적인 노동 조건을 정하기 때문이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과)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불평등을 노사 관계에서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지렛대가 초기업 교섭이고, 최근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특고, 플랫폼, 하청 등 불안정 노동자들이 이를 주도적으로 시도해왔다”고 말했다.

‘안전운임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노동자의 오랜 요구, 정부의 의지와 제도가 화물업계에서 일종의 초기업적인 교섭과 단체협약을 가능하게 했다. 2020년 시행된 안전운임제는 화물운전자의 과로를 막기 위해 노동자, 화주(원청), 운송사(하청)가 중앙 단위인 안전운임위원회에 모여 시멘트와 컨테이너 화물의 적정한 운임(임금)을 결정하도록 했다. 중앙 단위에서 운임의 틀이 결정되면 고 지부장 같은 이들이 지역에서 안전운임제의 이행과 지역별 특성에 맞는 적용을 논의했다. 지역에 따라 시멘트와 컨테이너를 넘어 다양한 화물 운임을 정하는 것으로 교섭의 범위를 넓혔다. 제도의 종착지는 원-하청 사이 ‘최저 입찰제’로 대표되는 비용 절감을 넘어 지속가능한 관계를 만들고, 노동자는 과로와 사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산업구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2020년 체결된 서비스일반노조-우아한형제들 단체협약문 일부. 홍창의 위원장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고정기 지부장은 “안전운임제를 폐기한 뒤 이 모든 가능성이 사라지고 과거로 돌아갔다”고 했다. “운송사 입장에서는 이제 노동자에 얼마를 줘도 상관 없으니 화주에게 운송료를 싸게 해준다면서 물량을 확보 하겠죠. 최저입찰제로 돌아간 겁니다. 전처럼 책임 없는 운송사가 난립할 거고 그러다 부도를 내겠죠.” 산업 전반에서 ‘바닥을 향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조짐은 이미 나타났다. 고 지부장은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운임은 현재 최소 20%, 많게는 30%까지 줄었다”며 “노동자는 초조하게 조금이라도 더 일해야 하고 사고 위험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홍창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조 위원장은 ‘사회적 분위기’의 후퇴가 부를 플랫폼 노동의 미래를 두려워 한다. 16일부터 시작한 ‘우아한형제들’ 본사 앞 단식이 4일차를 맞은 19일, 단식장에서 <한겨레>와 만난 홍 위원장은 “회사가 우리를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시혜의 대상에게 떡고물 주는 정도로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2020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는 우아한 형제들의 배달대행 자회사인 ‘우아한청년들’과 단체협약을 맺었다. 그 단협을 갱신하기 위한 교섭은 지난해 10월 시작됐지만 현재 결렬된 상태다.

플랫폼 노동자가 3년 전 첫 단체협약을 맺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플랫폼 노동권에 대한 관심 속에 이미지를 고려한 기업들이 노동자와 한 자리에 모이는 ‘플랫폼 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 포럼’에 참여했다. 사회적 대화는 자연스럽게 단협 체결을 위한 교섭으로 이어졌다. 플랫폼 노동자는 약간의 휴가비와 명절 선물비를 받고, 안전 교육도 받을 수 있게 됐다. 다만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문구를 단협에 담을 것인가를 두고 회사와 노조 사이 의견이 갈렸다. 기본적인 노동 조건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던 상황에서 노조는 일단 노동자성에 대한 복잡한 논의는 제쳐두고 노동 조건을 중심으로 단협을 맺었다.

몇 차례 파업과 단식으로도 좀체 풀리지 않는 교섭 앞에서 3년 사이 뒤집힌 사회적 분위기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다. 홍 위원장과 함께 단식에 나선 김정훈 배민분과장은 “정부가 노동탄압 기조를 가지고 기업의 자율 규제만 강조하다보니, 처음에 선의로 테이블에 앉던 기업들도 ‘지금이 기회'라며 잇속을 차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주체로서,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자율적으로, 노동조건을 결정한다는 ‘노사 대등 결정의 원칙’은 취약 노동자에게는 정부 한 마디와 태도로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었다.

단식장에 앉은 홍 위원장의 생각도 끝내 건설노조에 대한 최근 정부의 공격적 태도와 양회동의 죽음으로 향했다. “우리도 노조를 할 수 있는 전임자를 달라고, 노조 공간을 달라고 당연히 요구했어요. 이런 요구가 노조 전임비 갈취라는 건설노조 탄압을 보면서 ‘우리도 협박하고 공갈한건가?’ 싶었지요. 아직 우리 노조가 작고 힘이 없지만, 건설노조만큼 커지면 같은 공격 대상이 될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큽니다.” 플랫폼 노동자의 단식은 29일 현재, 14일째 이어졌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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