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7월 중순 동일방직 민주노조 해고 노동자들은 이른바 ‘블랙리스트’ 때문에 재취업한 공장에서조차 번번이 부당해고를 당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국노총을 방문했으나 건장한 조직행동대원들에게 욕설과 함께 끌려나왔다. 사진은 80년 당시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본부 건물의 모습. <동일방직 노동조합 운동사> 중에서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65
1978년은 2월 ‘동일방직 똥물사건’을 계기로 박정희의 장기집권과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시위와 집회가 날로 가열되고 있었다. 재야인사·학원·종교계·노동계를 망라해 선언문과 성명서가 발표되고, 학생들의 유인물 살포와 시위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남대·조선대·부산대 등 전국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많은 학생들과 종교계 인사들이 구속되고 그들을 위한 석방기도회가 열려 다시 그것을 빌미로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는 등 반독재 유신철폐 운동이 갈수록 불이 붙고 있었다.
동일방직 해고자들은 인천도시산업선교회(산선)에 임시노조지부를 두고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7월 중순쯤에는 동일방직 노조의 투쟁 과정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자 이를 연극으로 만들기로 했다. 연극은 두달 뒤인 9월22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열리는 금요기도회 때 공연하기로 했다.
연극 대본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모두들 직접 겪은 이야기들을 엮어놓으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기와 연극에 필요한 소품들은 비전문가들이 쉽게 준비하기 어려워 김봉준·박우섭·연성수 등 문화운동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해고자들은 생전 처음 해보는 연기에 걸핏하면 데굴데굴 구르며 웃기도 하고 혹은 화가 나는 대목에서는 펑펑 울기도 했다. 그때 거의 대부분 20대였던 해고자들은 그렇게 웃기도 많이 웃고, 울기도 많이 울며 험난한 청춘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연극 연습이 한창 진행중이던 어느 날 서울에 있는 대한모방에 취직해 잘 다니고 있던 신상미·박청근·정춘례·진성미 등 4명이 갑자기 산선으로 찾아와 해고를 당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바로 전날이 입사한 지 3개월이였는데 갑자기 사무실로 불러 해고를 통지했다고 한다. “동일방직 해고 근로자는 안 된다. 우리 회사뿐만이 아니라 다른 데도 마찬가지니 취직할 생각 말고 시골에 내려가 새마을운동이나 하다가 시집가라”고 했단다.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해고자들은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런 사례는 지난 2월 해고사태 이후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강동례처럼 무려 7번이나 해고를 당한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해고가 되면 다시 짐보따리를 싸들고 산선으로 찾아오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부당한 일을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것일까?
모두들 연극 연습을 중단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노총을 방문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짐을 하나씩 싸들고 노총을 찾아가 위원장과 면담을 요구했지만 늘 그렇듯이 ‘그분’께서는 자리에 없었다. 위원장 대신 배가 남산만큼 나오고 몸집이 집채만한 간부들이 나오더니,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저걸 싸들고 여길 오면 어쩌겠다는 거야. 우리한테 오늘 떼쓰러 온 거야, 뭐야? 이 개썅놈의 기집애들아~~ 이제 와서 우리보고 도와달라니, 뭘 어떻게 도와달라는 거야? 느이 어멈을 찾아가야지. 여긴 왜 와? 느이 어멈 조화순을 찾아가란 말이야. 이 좆같은 년들아.”
그들은 스스로 울화통이 터지는지 옆에 놓여 있던 보따리를 차면서 길길이 뛰고 난리법석을 피웠다. 칼과 도마, 수저, 그릇 등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쏟아져버렸다. 그 순간 신상미와 박청근이 울음을 터뜨리며 고함을 질렀다. “도와주지도 못하는 놈들이 왜 쪽박을 깨뜨려! 이 나쁜 놈들아!” “나가! 느이년들이 조합원이야? 조합원도 아닌 년들이 무슨 권리로 여기 와서 지랄들이야?”
그들은 이제 깡패로 돌변해 해고자들의 팔을 낚아채며 한명씩 질질 끌어내기 시작했다. 해고자들은 서러움에 복받쳐 악다구니를 쓰며 저항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큰 기대를 가지고 간 건 아니지만 노총이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폭력까지 행사하며 내쫓는 건 그들이 존재해야 할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짓이었다. 해고자들은 눈물을 씻어내며 절대로 불의에 지지 않고 반드시 싸워 이길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어용 섬유본조에서 작성한 ‘블랙리스트’는 이렇게 해고자들의 투쟁의식을 고취하고, 흩어진 노동자들을 다시 결집시키는 구실을 하고 있었다. ‘차라리 그때 박정희 정권이 다른 공장에 취직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이렇게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이 활화산처럼 타오를 수가 있었을까? 아마도 각자 새로운 삶을 찾아 조용히 흩어져 갔겠지’ 이총각은 두고두고 그런 생각이 든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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