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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체불→휴직→해고→알바 전전…“살아있다는 느낌도 없어요”

등록 2021-01-25 04:59수정 2021-01-25 09:15

[코로나19와 싸운 1년] ③양극화 심화된 노동시장
코로나 실직, 속절없이 추락한 삶

희망은 부서지고…남은 건 무력감
택배알바·대리운전하다 몸 탈나
실직 30대 엄마 “갈수록 의기소침”

“조금만 버티자” 아내 문자에 울컥
30대 경륜선수, 낮 영업·밤 대리운전
아시아나 하청 직원은 분식집 서빙

현 정부 들어 첫 임금 불평등 심화
실직 경험 비정규직, 정규직의 8.8배
일용직·프리랜서·특고 특히 심해
고졸 이하·여성들에 실업 피해 집중
코로나19로 인해 세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게 되면서 미술관 일자리를 잃고 단기 아르바이트를 해온 김민영(37)씨가 지난 13일 수원역 인근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 왼쪽) 역시 감염 우려로 경륜 경기가 열리지 않게 되면서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 기사와 건설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경륜 선수 김용묵(40)씨가 지난 7일 경기도 광명시 광명스피돔에서 텅 빈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H6s박준용 기자,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코로나19로 인해 세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게 되면서 미술관 일자리를 잃고 단기 아르바이트를 해온 김민영(37)씨가 지난 13일 수원역 인근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 왼쪽) 역시 감염 우려로 경륜 경기가 열리지 않게 되면서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 기사와 건설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경륜 선수 김용묵(40)씨가 지난 7일 경기도 광명시 광명스피돔에서 텅 빈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H6s박준용 기자,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37살 여성 조지영(가명)에게 지난 1년은 잠시 찾아온 희망이 허망하게 부서진 한 해였다. 조지영은 단기·계약직 노동을 해서 홀로 초등학교 6학년생 아들을 키워왔다. 그러다 2019년 말 고정적으로 “월 220만원”이 나오는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다. 카페를 관리하고, 에스엔에스(SNS) 홍보와 인쇄물 디자인 등을 하는 회사였다. 그런데 이 회사가 코로나19 1차 유행 때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표는 카페 손님과 홍보 일감이 줄었다며 임금을 체불했다. 지난해 5월에는 급기야 ‘반년 무급휴직’을 일방 통보했다. 이를 거부하자 대표는 바로 조지영을 해고했다. 법적 대응을 하려고 했지만, 분명히 직원 10명 이상이 모여 회식까지 했던 회사는 5인 미만 사업장이어서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사업장 쪼개기’를 한 것이다.

조지영은 다시 불안정 노동에 내몰렸다. 택배 일을 하려고 했더니 탑차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자기 차로 배달할 수 있는 ‘쿠팡플렉스’ 일을 시작했다. 가입비 5만원을 내고 콜을 할당받아 밤늦은 시간 대리운전도 했다. 곧 몸에서 탈이 났다. 무거운 생수통을 들고 빌라 계단을 오갔더니 무릎에 염증이 생겼다. 허리와 어깨도 아파왔다. 조지영은 택배를 그만두고 음식 배달대행으로 업종을 바꿨다.

고정된 시간없이 일하면서 가장 괴로운 건 집에서 홀로 멍하게 있는 아들을 보는 일이다. 조지영의 직장 때문에 전학까지 하면서 아들은 영상으로 학교 수업만 듣고 친구 하나 사귀지 못했다. “고립 상태에서 유튜브 영상만 반복해서 보더니 점점 우울증이 오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몸이 안 좋아지고 아이는 아이대로 심적으로 힘들고, 악순환의 반복 같아요.”

노동시장 양극화부른 코로나19
조지영의 지난 1년은 코로나19가 불안정 노동자에게 어떤 고난을 안기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통계청의 ‘2020년 연간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해 임금노동자 가운데 고용이 안정된 상용직은 한해 전보다 30만5천명(2.1%) 늘어난 반면 임시직은 31만3천명(-6.5%), 일용직은 10만1천명(-7.1%) 줄었다. 직장갑질119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천명을 상대로 지난달 벌인 조사에서도, 코로나19 이후 실직을 경험한 비정규직(36.8%)은 정규직(4.2%)의 8.8배나 됐다. 일용직(45.8%)과 프리랜서·특수고용직(38.5%)의 실직 경험률은 더 높았다. 코로나19가 급격한 노동시장 양극화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가 코로나19 이후 1년 동안 실직이나 노동환경 변화를 경험한 9명의 노동자와 심층 인터뷰를 한 결과에도 이런 실태가 빼곡히 확인됐다. 조지영과 같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와 더불어 프리랜서와 특수고용직, 하청노동자 등이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10년 이상 경륜선수로 일한 30대 후반 이장혁(가명)은 요즘 하루에 세 가지 일을 한다. 경륜 경기는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 2월 이후 열리지 않았다. 등급에 따라 경기 출전상금 등의 수당 110만원을 차등 지급받는 경륜선수들은 경기가 없으면 수입도 없다.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돼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험도 가입할 수 없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수당을 주기 위해 몇 차례 모의 경기를 열고, 무이자로 몇백만원씩 대출도 해줬지만 그걸로는 “빚 갚기도 바쁘”다.

결국 이장혁은 오전 9시부터 낮 12시30분까지는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하고, 오후 2시30분까지 한 렌털회사로 출근해 저녁 8시까지 영업 일을 하며, 퇴근 뒤에는 자정까지 대리운전을 한다. 때때로 지인이 소개해준 공기청정기 필터 교체 일도 나간다. “렌털 영업은 월 120만~150만원 정도, 대리운전 일은 월 80만~120만원 정도 벌었어요. 죽으라는 법은 없어서 어떻게든 아등바등해요. 아내가 얼마 전 ‘조금만 버티자. 잘하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보고 울컥했지요.”

15년차 경륜선수인 40살 김용묵도 한때 몸의 일부와도 같았던 자전거 쪽으로는 이제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인해 경기가 열리지 않으면서 김용묵은 낮에는 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대리운전 기사 일을 병행하다 지난해 7월부터는 아예 운동을 접고 일만 하고 있다. 요즘은 터널 공사 일을 하거나 소파 배송하는 일을 한다. “대리운전 기사나 일용직 일을 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직업을 물으면 프로 경륜선수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아르바이트하며 산다고 얘기해요.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으니 경륜선수 직업은 이제 내려놓을까 생각 중입니다.”

아시아나항공 하청업체 ‘케이에이’(KA)는 지난해 2월부터 지속해서 “원하는 직원들”은 무급휴직이나 권고사직 신청을 하라고 했다. 회사는 “강제가 아니”라고 했지만, 신청하지 않는 이들을 엉뚱한 부서에 배치했다. 37살 남성 김지원도 지난해 7월 결국 무급휴직을 택했다. 어이없는 건 회사가 코로나19 타격 업종에 대해 노동자의 유급휴직 급여를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도 신청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0~25%가량의 회사 자체 부담이 싫어서다. 처음에는 저항도 했던 노동조합 동료들은 요즘 몇만원씩 빠져나가는 조합비마저 버거워한다. “130여명이던 노조원이 20명으로 줄었어요. 노조 카톡방에 무슨 글을 올려도 이젠 아무 반응도 없어요.” 김지원은 요즘 어머니가 운영하는 테이블 4개짜리 분식집에서 서빙과 배달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번다.


위기의 독소는 아래로 아래로
성장의 단물은 위로 뽑혀 올라가지만, 위기의 독소는 아래로 찍혀 내려온다. 통계청 ‘2020년 연간 고용동향’의 교육 정도별 실업 현황을 보면, 지난해 고졸과 중졸 이하 학력의 실업률은 각각 한해 전보다 0.4%포인트 올랐다. 반면 대졸 실업률은 변동이 없었다. 성별로 보면, 남성 실업률은 3.9%로 한해 전과 같았고 여성은 4.0%로 0.4%포인트 상승했다. 고졸 이하 학력 계층과 여성에게 실직 피해가 몰린 것이다.

31살 남성 권다빈(가명)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택배 배달 등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러다 22살 때 활동지원사 자격을 취득했고 뇌병변과 정신장애를 지닌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일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들이닥치면서 ‘감염 위험’을 이유로 일자리를 잃게 됐다. 이후 아르바이트와 공공근로 일자리 등을 구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직업훈련도 받았지만 여전히 실직 상태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솔직히 감이 안 잡혀요. 이런 생활을 계속할 수는 없으니까요.”

지난해 2월 37살 여성 김민영은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출산 전후로 틈틈이 공연 미술 프리랜서 기획자로 일해왔는데 오랜 기다림 끝에 지원했던 지역 미술관에 채용됐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코로나19가 확산돼 어린이집에 휴원 명령이 내려지고 긴급돌봄체제로 바뀌었다. 무역 일을 하는 남편이 장기 출퇴근을 하는 탓에 세살 아이를 ‘독박 육아’하던 김민영은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게 됐다. 눈물을 머금고 미술관 일을 그만뒀다.

몇달 뒤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이 생겼고, 김민영은 다시 구직을 시작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방문청소나 요양보호사, 급식 노동 혹은 단발성 공연기획 같은 프리랜서 일자리였다. 얼마 전부터는 주 1~2회씩 고기 납품 공장에서 고기 자르기 아르바이트를 한다. “칼날이 엄청 날카롭거든요. 가족들이 ‘손가락 잘려나가면 어떡할 거냐’고 해요. 그래도 아이 어린이집 보내고 4시간 일하면 3만5천원 벌 수 있으니까요.”

지난해 1~2차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을 받지 않은 특수고용직(특고) 종사자와 프리랜서를 대상으로 하는 3차 지원금 신청이 시작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관계자가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차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을 받지 않은 특수고용직(특고) 종사자와 프리랜서를 대상으로 하는 3차 지원금 신청이 시작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관계자가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20년 동안 일한 경력 한순간에 물거품”
코로나19 직격타를 맞으면서 수십년 일하던 정규직 일자리를 잃고 불안정 노동으로 내몰린 이들도 있다.

20년 동안 여행사에서 일한 44살 남성 고상훈(가명)은 코로나19로 여행업계가 줄줄이 쓰러지면서 지난해 5월 회사 동료 3분의 1을 권고사직으로 잃었다.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서 고상훈마저 지난해 10월부터 무급휴직에 들어갔다가 이달 들어 퇴사했다. 문제는 40대 중반에 들어선 나이다. “택배나 음식 배달,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코로나19가 끝나면 회사에 복직하리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복직도 포기했습니다. 20년 동안 업계에서 쌓아온 경력이 하루아침에 소용이 없어져서 공허함이 커요. 이전 직장보다 절반 이하로 벌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들도 학원에 가지 못하니 지출도 줄어서 근근이 버티고 있습니다.”

지난 1년이 이들에게 남긴 건 무력감이다. “회사에 다니며 느끼는 성취감이 삶의 원동력이었는데 지난 1년은 그런 게 없이 살아왔죠.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도 없어요. 무력하고 무기력해지고 있죠.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만 하거나 힘없이 누워 있는 거죠.” 6년 동안 일한 여행업계에서 지난해 11월 퇴사해 실직 상태인 35살 남성 윤희택의 말이다. 조지영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이러다 나중에 음식 배달대행도 못 하면 어떡하나 의기소침해져요.”

지난해 코로나19 영향으로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임금 불평등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국내 임금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임금 지니계수가 0.306으로 한해 전(0.294)보다 악화됐다. 조민수 한국고용정보원 책임연구원은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자리가 업종과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고, 관광·레저·숙박 등 대면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 임금 불평등이 악화됐다”고 말했다.

박준용 선담은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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