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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국가시설 무색한 ‘항만 참극’…노동자 사망, 전 산업평균의 1.5배

등록 2021-05-11 04:59수정 2021-05-11 08:17

이선호씨 죽음으로 본 항만 재해
“그때그때 일용직 채우는 불안정 고용구조”
“안전비용 아껴 수익…해수부 안전관리도 공백”
지난달 22일 대학생 이선호(23)씨는 덮쳐 숨지게 한 평택항 개방형 컨테이너의 모습. 이선호씨 아버지 이재훈씨 제공.
지난달 22일 대학생 이선호(23)씨는 덮쳐 숨지게 한 평택항 개방형 컨테이너의 모습. 이선호씨 아버지 이재훈씨 제공.

#1.

2019년 3월 경기 평택시 평택항에서 정비 중이던 하역 장비가 균형을 잃고 아래로 떨어져 근처에 있던 정비기사 ㄱ(당시 21살)씨가 이 장비에 깔려 사망했다. 현장에선 장비 정비에 따른 안전사항을 준수하지 않았고, 무거운 장비를 다루면서 작업 반경 주위를 통제하지도 않았다.

#2.

같은해 12월 부산시 아이앤케이신항만에서 직원의 기계 작동 미숙으로 컨테이너가 다른 컨테이너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때 두 컨테이너 사이에서 크레인을 검수하던 20대 ㄴ씨의 몸이 끼여 결국 숨졌다. 당시 직원이 다루던 스트래들 캐리어(컨테이너 터미널 내에서 하역과 운반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자동 주행기)는 자격시험이 필요한 직무였으나, 해당 직원은 이 자격이 없는 상태에서 컨테이너 운반에 투입됐다.

지난달 22일 23살 대학생 이선호씨가 평택항에서 근무하던 도중 300㎏ 무게의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지면서 항만 노동자들의 위험한 노동 환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최근 5년간(2015~2019년) 항만 노동자의 연평균 사망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사망자 수)이 전체 산업의 1.5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항만물류협회와 고용노동부의 산업 재해 통계를 종합하면, 2015~2019년 전체 산업의 사망만인율은 연평균 1.04였는데, 항만 하역 부문은 1.49로 올라간다. 전체 산업에선 1만명당 1.04명이 산재로 사망할 때, 항만 노동자는 1만명당 1.49명이 숨졌다는 얘기다. 항만 노동자의 사망만인율은 2015년 2.25, 2016년 0.55, 2017년 0.55, 2018년 2.56, 2019년 1.53이었다. 2010년부터 10년간 사망만인율을 살펴보면, 항만 하역 부문 사망만인율은 2012년과 2016~2017년 세 해를 빼곤 모두 전체 산업의 평균치보다 높았다.

항만 쪽 재해자 수는 다른 국가시설과 견줘서도 높은 수준이다. 항만 쪽 재해를 상세히 분류한 2015~2018년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항만 하역업 등을 포함하는 ‘항만 하역·수상운수·화물취급업’의 연평균 사망만인율은 1.8로, ‘철도·궤도·삭도운수업’(1.4)보다 1.3배 정도 높다. 지난해 항만물류협회가 조사한 항만 하역 재해 건수를 보면, 재해자 99명 가운데 25명(25.3%)이 ‘추락’, 18명(18.2%)은 ‘협착’(끼임), 16명(16.2%)은 ‘충돌’로 다쳤다. 사망한 3명은 두 명이 협착, 한 명이 충돌이 사유였다.

항만 노동자들이 위험에 수시로 노출되는 것은 하청 인력업체나 직업소개소를 통해 그때그때 일용직 노동자를 채우는 항만의 불안정한 고용구조 탓이 크다. 원청 직원의 지시를 받는데도 이들의 안전관리 감독을 하청업체나 인력소개소에 맡겨 사실상 안전관리의 사각지대가 생긴다. 서성찬 ‘이선호 산재사망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선박 입출항에 따라 필요한 인력이 늘거나 줄다 보니 물류업체들이 수익 압박으로 인력소개소나 하청업체에서 인력을 데려오고 시간제나 일당제로도 일자리를 쪼갠다”며 “자사 직원이 아니라고 봐서 이들에 대한 안전 조처는 사실상 뒷전이 된다”고 지적했다. 김용주 한국항만연수원 인천연수원 교수도 “항만운송사업법을 보면, 항만 관련 종사자는 6개월 이내 16시간 교육을 받게 돼 있지만, 인력소개소를 통해 일하는 이들이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은 작다”며 “처음 온 노동자들이 굉장히 생소한 현장에서 위험 요인을 따로 교육받지 못한 채 일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훈련된 정규 인력을 덜 쓰려 하는 현장이다 보니 지게차 운행 등 위험 현장에 신호수나 안전관리책임자 배치를 기대하긴 더욱 어렵다. 이선호씨가 사고를 당한 현장에도 안전관리책임자가 지시만 하고 자리를 떠서 이씨의 사고를 막지 못했다. 서 위원장은 “신호수는 사치고 안전책임자조차도 현장에 있는 경우가 드물다”며 “이들이 있더라도 여러 책임을 맡기기 때문에 한 곳에 있지를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터미널 운영권을 따낸 회사에 일정 부분 안전비용을 부담하게 하거나 정부가 영세 사업장에 한해 안전 관련 비용을 지원하는 등의 방식이 안전 공백을 메우는 방안으로 거론된다. 박동욱 방송통신대 교수(보건환경학)는 “각 업체들이 이제까지 하청업체와 사회에 떠넘겼던 안전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통해 안전비용 삭감으로 수익을 올리던 구조도 바꾸어야 한다”며 “하청업체나 컨테이너 소유주, 항만 운영사 등의 안전관리 공백을 소상히 파악하고 정부와 업계 등이 이를 어떻게 메울지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항만 안전관리를 소홀히 했던 정부의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항만이 국가기간시설인데도 해양수산부가 관리·감독을 사실상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항공안전정책과’와 ‘철도안전정책과’를 만들어 항공과 철도 분야 종사자 안전관리를 따로 챙기고 있지만, 해양수산부는 항만 관리를 총괄하는 ‘항만운영과’에 종사자의 안전교육 의무만 추가했을 뿐이다. 해양수산부 항만운영과 관계자는 “항만하역 현장을 담당하는 과만 있고 안전교육 현황도 항운노조원에 한해 파악한다”며 “하청업체 직원 등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현재 국회엔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항공운송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해양수산부에 항만 사고 예방책임을 부여하고 항만 내 안전을 관리하는 ‘항만안전감독관’을 따로 두자는 게 법안의 뼈대다. 이종필 한국해양수산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항만 노동자의 안전을 노동부와 각 노동청 근로감독관에만 맡겨둔 셈인데, 근로감독은 담당 권역이 방대하고 사후에 이뤄지기 때문에 문제를 예방하기는 어렵다”며 “해양수산부가 주무부처로서 산업재해 현황을 주기적으로 보고 받고 대책을 세우는 등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다은 박준용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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