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움직여요…믿을건 결국 ‘나’죠
■형경과 미라에게■ 헤어지자던 애인…배신감에 울화 치밀어요 <질문>: 남자 친구와 사귄 지 4년이 넘어갑니다. 그 동안 둘은 표면적으로 그리고 내면적으로 많은 성장했어요. 비교적 둘이서 서로 고민도 많이 나누고 있고요. ‘척하면 삼천리’식으로, 서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지금은 서로에게 넘친다고 자신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딱 1년 전과 또 6개월 전에 헤어질 뻔한 적이 있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일과 건강 때문에 힘든 시기를 거치고 있었고, 제 자신이 힘든 만큼 상대방을 소홀하게 대했고, 제가 특히 많은 횡포를 부린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도 결코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힘들어 했고요. 힘들어 하는 그 사람이 ‘헤어지자’고 말했습니다. 두 번 다 제가 그 사람을 잡았어요. 그 사람을 엄청 사랑했거든요. 그리고 필요했고요. 이대로 헤어지면 안 된다고, 지금의 힘든 시기를 넘기면 된다, 나로서는 헤어지는 게 더 힘들다, 당신 없이 나는 살 수 없다, 지금 헤어지고 싶은 것은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서로가 힘들어서 그런 것뿐…. 동시에, 설사 그와 헤어지더라도 제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깨끗이 사과를 하고 이별해야겠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별하지 않고, 지금껏 사귀고 있습니다. 얼마 후에 당시 제가 품고 있었던 마음(왜 그랬는지, 어떤 생각으로 그를 잡았는지)을 그와 공유했고, 나를 붙잡아주어서 고맙다, 당신은 참 용감한 사람이다, 라며 그는 내게 고마워했습니다. 하지만 문득문득, 그를 너무 너무 학대하고 싶어집니다. 섹스를 할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열심히 섹스하고 있는 이 남자가 “이제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하며 이별을 통보해 온 그 사람 맞나…. 섹스도 즐길 수가 없고 집중하지 못하게 됐고요. 남자 하나 때문에 매달리고 울고 했던 내 자신이 너무 못난이 같아서, 나의 자존심을 망가뜨렸다는 생각에 너무 울화가 치밀어서, 그 사람에게 문득 문득 횡포를 부리고 싶고, 막 못살게 굴고, 못되게 굴고 싶어져요. 지금은 연애에는 표면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지만, 결국은 이 문제로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할지, 아니면 내가 마음을 달리 먹어야 하는 건지, 회복될 가능성이 있을지. 아니면, 학대하고 싶은 만큼 그를 학대해도 될지(ㅡ.ㅡ) 고민하고 있습니다. (연애의왕도)
의존하는 정도 클수록 관계 깨지면 상처 크죠
힘든 일일수록 의지하려 말고 자기 내면과의 대화로 푸세요 <답변>: 일과 건강 때문에 힘들어 하는 님을 두고 떠나려 했던 그 남자친구가 종종 원망스러워진다고요? 그렇게 냉정하게 떠나는 남자친구에게 매달렸던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진다고요?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는 수많은 연인들이 아마도 그 심정에 공감할 것입니다. 그렇게 치면 당신이 느꼈던 감정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네요. 하지만 정상적이라고 해서 그런 감정을 계속 반복해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님이 받은 충격이 그리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나치게 관계에 의존했던 만큼 그 관계가 파기됐을 때는 심각한 자존감의 훼손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간간의 가장 깊은 의사소통이라고 믿어왔던 섹스도 당분간은 무의미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쯤 님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울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며, 이별 준비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는 상대의 일방적인 이별 통고에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마음을 다잡겠지요. 그래요. 관계를 청산하고자 하는 사람과 지속시키려는 사람의 의견이 팽팽히 맞설 때, 대부분의 관계는 청산하는 쪽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한쪽의 애정이 아무리 깊다 해도 싫다는 상대를 억지로 붙잡아둘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아무리 소흘하게 대하고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투정을 부려도 떠나지 않고 늘 거기 있어주는 존재는 부모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듯합니다. 그런 부모 곁을 떠나 사회로 나온 우리는 재빨리 부모의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나섭니다. 대부분 애인에게서 영원한 사랑을 확인하려하지만 현실의 그들은 너무 냉정하며, 그들의 사랑은 쉽게 변하고 또 너무 자주 떠나갑니다. 그러니 점점 더 우울해지고 냉소적으로 변할 수밖에요. 그러나 그들만 탓할 수는 없습니다. 영원한 사랑을 지키기에는 우리 서로 너무 불완전하고 이기적이며, 쉽게 상처받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니까요.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고 해서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랑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되고, 또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되지요.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과 괴로움을 대신 져주는 얘기는 드라마에서나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챈다면, 이제 우리는 자신의 어려움을 기꺼이 감내하고 주체적으로 풀어나갈 시스템을 자기 내면에 갖춰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격려와 지지는 아무리 받아들여도 부족하고 허기지는 세끼의 밥이 아니고, 인생을 풍요하게 할 보너스가 되는 것이지요. 갈등의 시기를 지나온 두 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또다시 각자에게 인생의 위기가 닥쳐온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다르게 대처하실 건가요? 상대에게 어떤 것을 기대할 것이며, 어디까지 위로받고자 하나요? 만약 둘간에 갈등이 생긴다면 예전과는 다르게 해결할 방법이 생겼습니까? 위기는 언제나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고, 호시탐탐 둘의 사이로 스며들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 미리 생각해 보고 얘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님 혼자 지내는 시간을 만들고 또 즐겨보세요. 이제까지 너무 의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왔다는 생각이 든다면, 힘들고 어려운 일일수록 내면에서 여러 번 되뇌고 삭이면서 자기 정화를 해보세요. 혼자 하는 대화도 남자친구와 대화만큼 달콤하고 행복할 수 있답니다. 박미라/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위원 『소설가 김형경씨와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의 박미라 편집위원이 지면으로 상담을 해드립니다. <인터넷한겨레> 행복한마을(http://happyvil.hani.co.kr)의 ‘형경과 미라에게’ 게시판이나 전자우편 sangdam@hani.co.kr으로 보내주십시오. 지면 상담을 꺼리시는 분들은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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