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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건강한 아이로 키우려면 부모 스스로부터 돌봐야

등록 2020-09-19 12:41수정 2020-10-07 20:08

[토요판] 김선희의 학교 공감일기
⑯ 양육자의 마음돌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선생님, 어제 그 학부형과의 상담은 도대체 몇시에 마쳤어요?”

몇해 전이었다. 학부모 상담 주간으로 함께 초과근무를 하다가 먼저 퇴근했던 동료 교사가 물었다. “밤 9시가 조금 넘어 마쳤어요.” “6시에 시작한 상담을 9시가 넘어 마쳤다고요? 무슨 상담을 그렇게나 힘들게 하세요?” “제가 더 깊이 대화하고 싶은 분이라 일부러 남은 일정 없는 날로 약속했거든요.” “특별히 하실 말씀이 많았나요?” “아니요, 들을 말씀이 많았어요.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힘든 일을 많이 겪으신 분이에요. 하시는 말씀 끝까지 다 들어보려고 마음먹고, 긴급한 일 아니면 업무도 뒤로 조정하면서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여유롭게 미리 잘 준비한 상담이에요.”

중학교 3학년 장원(가명)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해 수시로 수업에 방해를 끼치고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의 몸을 건드리거나 물건을 빼앗아 약 올리는 행동으로 귀찮고 화나게 하기 일쑤였다. 지난해에 이어 가르치게 된 몇명의 교과 담당교사는 심각하게 ‘정서적 치료가 필요한 아이’라는 의견을 주기도 했다. 나는 아이가 습관처럼 비슷한 문제를 일으킬 때도 마치 처음 겪는 일처럼 아이 마음을 물었다. 처음에는 대화에 차분히 응하지 않던 아이가 어느 시점부터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정확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옳고 그름의 이치에 밝아 대충 듣고 다뤄지는 일에 어김없이 화를 품곤 했다. 학교라는 복잡미묘한 대집단 속에서 그런 마음을 다 지지받기 어려우니 늘 화가 많고 불안했던 것이다. 학교에서의 불화가 많으니 주된 양육자인 어머니의 마음도 힘들었을 것이다. 종종 전적인 이해를 바라며 학교 쪽과 마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조급한 마음에 강압적으로 아이의 행동을 제약해 갈등도 많았던 것이다. 잦은 상담으로 안팎으로 끊임없이 거부당해 활화산처럼 들끓는 장원이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상담 시간에 맞춰 긴장한 듯 굳은 표정으로 교무실에 들어오신 어머니를 반갑게 환대하며 먼저 아이와 내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아이의 강점과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전했다. 점차 어머니의 표정이 부드러워지더니 사실은 아이가 못된 구석이 많아 양육이 힘들었다고 했다. 초등 시절에는 담임교사의 권유로 소아정신과 진단을 통해 몇년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를 먹이기도 했단다. 사춘기가 되면서 눈에 띄게 지체되는 신체 발육 상태를 보기 힘들어 약물치료를 중단하고 난 뒤로 학교뿐 아니라 가정 내 관계도 많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아이로 시작된 이야기는 다른 가족에 대한 불만으로도 번졌다. 들어도 들어도 끝없는 문제 속에서 어머니가 얼마나 힘든 결혼생활과 양육을 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어머니와 나는 두 손을 포개어 맞잡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어머니, 그 누구보다 애 많이 쓰셨네요. 정말 대단하셔요”라고 존경 어린 마음을 표현했다. 한편의 자서전 같은 이야기를 다 풀어내신 어머니의 표정이 어느 순간 소녀처럼 가뿐하게 맑아졌다. 그러더니, “선생님, 혹시 우리 장원이가 선생님을 힘들게 하는 점은 없나요?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좋을까요?” 하고 물으셨다. “장원이는 마음을 표현하는 능력이 좋으니 화를 내거나 거부감을 표현할 때 먼저 마음을 물어봐주시면 좋겠어요. 그런 여유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어머니의 몸과 마음이 여유로워야 해요. 이제껏 고생 많이 하셨으니 앞으로는 덜 좋은 거 먹이고 입히더라도 어머니 좋아하시는 일에 시간을 더 내기 바라요”라고 진심을 다해 말하며, 공감의 중요성을 쉽게 다룬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를 한권 드렸다. 어머니는 “아유, 그러고 보니 제가 책 한권 읽을 여유도 없이 살아왔네요. 이 책은 꼭 읽어볼게요”라고 답했다.

그 뒤로 장원이는 몇달 사이 눈에 띄게 안정된 모습으로 성장했다. 학기 말에는 교사들 사이에서 ‘말 잘 통하는 영리한 아이’로 통하기도 했다. 아이에게 있어 양육자의 편안한 마음은 젖과 꿀이 흐르는 푸른 초장이다.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기르고 싶다면 양육하는 자신부터 먼저 너그러운 마음으로 다정하게 돌봐야 한다.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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