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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야구장은 1만명에 치맥, 집회는 99명 제한?

등록 2021-11-12 20:11수정 2021-11-12 20:16

[한겨레S] 다음주의 질문

한때 경찰 출입 기자에게 토요일은 ‘집회취재 하는 날’이었다. 크고 작은 집회·시위가 대체로 토요일마다 서울 도심에서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시민들의 갖가지 목소리와 충돌 등의 특이사항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기사를 쓰는 게 토요 당직 기자의 주된 일과였다. 2016년 말 사회부 시절은 그래서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해 10월29일부터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최하기 시작한 탄핵 촛불집회엔 매주 참가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12월3일엔 서울 참가 인원만 170만명(주최 쪽 추산)이었다. 추산 규모가 다소 정교하지 않더라도 “(평소 10분이면 걸어가는)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SFC)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 2시간 걸린다”는 ‘도심 집회 괴담’은 진실에 가까웠다. 당직 기자 한명으로는 현장 커버가 안 돼 두셋씩 비상근무 체제로 돌아갔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가 발견되기 몇년 전 얘기다.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확산 초기부터 집회가 먼저 틀어막혔다. 당직 기자는 나갈 현장이 없어 대기하는 날이 늘었다. 출근길 지하철 칸은 여전히 빽빽하고, 백화점 같은 상업시설에 출입기록조차 찍기 이전이었는데도 집회는 불허였다. 코로나 시기에 생계가 막막해진 사람들과 피해를 본 사람들은 거리에서 호소를 하려야 할 수도 없이 숨을 죽였다. 헌법의 기본권은 감염병예방법 앞에 무력했다. 경찰 관계자도 “집회 금지 통고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아닌 감염병예방법 49조 2항(지방자치단체가 집회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이 적용될 날이 올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사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널뛰었지만 백신 접종률이 70%를 넘기자 드디어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시기가 도래했다. 이달 1일부터 적용된 집회 가능 인원은 최대 499명. 이조차 백신 2차 접종까지 모두 마쳤을 경우에 해당하고 접종·미접종자가 섞여 있을 때엔 99명으로 제한됐다. 동시에 야구장에선 1만명이 넘게 모여도 상관없이 치맥을 해도 됐다. 정부가 누구와 ‘위드’ 하는 코로나를 추구하는지 명확해지는 지침이었다. 개인의 경제활동을 제한했을 때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담은 막대했다. 집회나 시위를 제한한다고 추경을 하고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일은 없었다. 여기에 ‘집회 혐오 여론’은 든든한 뒷배가 됐다.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는 “코로나 이전부터 한국에선 집회·시위가 기본권이 아닌 교통체증 유발 요인으로 여겨지지 않았느냐”며 “그런 시민들의 집회 혐오를 바탕으로 정부가 듣기 싫은 목소리를 차단하는 기조를 유지한다”고 말했다.

13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기리고,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전국노동자대회 집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민주노총의 집회 신고는 499명씩 70m 거리를 두고 20개 무리로 나눠 집회를 열겠다는 계획이라 서울시와 경찰은 사실상 1만명 규모의 ‘쪼개기 집회’로 판단하고 사전 금지 통고를 내렸다. 이에 김부겸 총리와 경찰청장, 서울경찰청장은 한달 전과 똑같이 “불법집회에 엄정대응하겠다”고 돌림노래를 했다. 야구장은 되지 않느냐는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면 “방역당국의 방역수칙을 집행할 뿐”이라고 했다. 그러던 김 총리는 지난 6일 대학 동창들을 총리 공관에 초대해 자신을 포함한 11명이 식사를 했다고 한다. 다음 방역지침 개편 때 집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박수지 이슈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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