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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뇌물에 “우국충정” 전두환…빈소 채운 재벌 2·3세의 조화

등록 2021-11-26 14:50수정 2021-11-27 02:30

보수야당 정치인도 잘 찾지 않는 빈소에
이재용·최태원·정의선·김승연 등 조화 보내
2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전두환씨 빈소 옆에 놓인 재계 인사들의 근조화환. 왼쪽부터 최태원 대한 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2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전두환씨 빈소 옆에 놓인 재계 인사들의 근조화환. 왼쪽부터 최태원 대한 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기업인들이 돈을 낸 것은 기업인들의 우국충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96년 2월26일 대통령 재임 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서울지법(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 앉은 전두환씨가 김성호 당시 서울지검(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검사의 신문에 이렇게 답했다. 전씨는 1982년부터 대통령에서 물러난 1987년까지 삼성과 현대, 에스케이(당시 선경)와 한화(당시 한국화약) 등 43개 기업으로부터 2259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이 확정됐다.

25년 뒤인 2021년 11월26일, 사망한 전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에는 당시 뇌물을 준 재벌 총수 2·3세들의 근조화환이 차례로 놓였다. 현직 정치인들 대부분 조문을 꺼리고, 조화를 보내지 않는 빈소에 기업인들이 보낸 조화는 도드라진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대통령이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재벌을 키우고, 재벌은 대가로 돈을 건넸던 과거 정경유착의 그림자가 조화에 드리운다.

‘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노태우 권력형 부정 축재사건에 대한 1심 판결문’을 보면, 전씨는 이병철 당시 삼성그룹 회장으로부터 1983년 12월부터 1987년 10월까지 8차례에 걸쳐 220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 금융·세제 운용 등 기업 경영과 관련한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삼성그룹을 선처해달라는 취지였다. 전씨는 마찬가지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으로부터 1982년 12월부터 1987년 12월까지 7차례에 걸쳐 220억원의 뇌물을 수수했다. 이외에도 최종현 선경 회장으로부터 150억원, 김승연 한국화약 회장으로부터 70억원을 챙겼다. 다만 기업 총수들은 5년의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소되지 않았다.

1996년 2월27일치 <한겨레> 2면
1996년 2월27일치 <한겨레> 2면

전씨는 1996년 열린 비자금 사건 첫 공판에서 뇌물을 받은 것에 대해 정당성을 주장하며 궤변을 늘어놓았다.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전씨는 검찰 신문에 “(대통령) 취임 당시에는 기업인들을 잘 몰라 돈을 주겠다고 하면 돌려보냈는데 기업인들이 오히려 밤잠을 못 잘 정도로 불안해했다”며 “이렇게 되니 투자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경제 부작용이 많았다”고 말했다. 또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가 있는 곳에 정치자금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신문 도중 재벌 총수에 대한 평가를 덧붙이기도 했다. 1996년 2월27일치 <한겨레> 4면(‘전씨 공판정 채벌총수 인물평’)을 보면 정주영 전 회장에 대해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을 찾아와 나랏일에 쓰라고 돈을 줄지언정 개별적인 청탁을 하면서 돈을 주겠는가. 정 회장은 그렇게 무능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병철 전 회장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해서 대통령도 만나기 힘들었다. 대단히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고 주로 일본에 가 있어서 재임 중 몇 번 만나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상속문제로 다투던 김승연 회장에 대해서는 “교육 차원으로 부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명의로 조화를 보냈다. 에스케이의 뿌리인 선경은 전두환 정권에서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부풀렸던 기업이다. 최태원 회장의 큰아버지인 최종건 전 회장이 창립한 선경직물회사는 1980년 11월 공기업인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했다. 매출액 10배에 달하는 유공을 인수한 선경은 재계 순위 10권 밖에서 5위권으로 뛰어올랐다. 최동규 전 동력자원부 장관은 자신의 에세이집에서 “그때 유공을 선경에 넘기게 한 사람은 보안사령관이었던 노태우”라는 전씨의 회고를 전하기도 했다. 전씨는 앞선 뇌물 사건 공판에서 최종현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그분이 (노태우씨와) 사돈 관계이기 때문에 선거자금하라고 정치자금조로 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철원 엠앤엠 (M&M) 사장은 25일 빈소를 방문해 조문한 뒤 전씨에 대해 “훌륭한 일도 많이하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유족에게 상 잘 치르시라고, 기운내시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26일에도 전날 귀국한 전씨의 삼남 재만씨를 만나기 위해 빈소를 찾았다. 최 사장은 “초등학생 때부터 같이 알던 사이인 전재만씨를 못 만나서 오늘 얼굴 보고 손 한번이라도 잡아주려고 왔다”고 말했다.

전씨 빈소에 조화를 보낸 한 그룹의 관계자는 “(기업에서)전직 대통령이나 유명 인사들에게 의례적으로 조화를 보내는데, 이번에도 그 차원일 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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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2월27일치 <한겨레> 4면

이우연 장현은 이승준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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