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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ESC] 마라에 와인을 접을까?🥵 포기하지마라샹궈! 🍷

등록 2022-05-13 15:11수정 2022-05-13 16:59

임승수의 레드
피학적 자극의 마라와 푸근한 로제 카바의 만남
스페인 스파클링 와인 ‘호메 세라 브뤼 로제 피노 누아르 카바’와 마라샹궈.
스페인 스파클링 와인 ‘호메 세라 브뤼 로제 피노 누아르 카바’와 마라샹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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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샹궈의 매력을 깨닫게 된 것은 아내 덕분이다. 마라탕을 좋아하는 아내가 마라샹궈도 먹어보고 싶다길래 배달 앱으로 주문했는데, 그날 내 혀에 숨겨졌던 피학적 성향을 자각하게 되었다. 눈물 찔끔할 만큼 얼얼한 혀가 ‘맛있다’를 연발하며 마밍아웃을 선언하는 게 아닌가. 맛있는 음식을 만나면 그에 어울리는 와인을 모색하는 내 기질이 즉각 발동되었다. 와인 커뮤니티 게시물을 검색하니 마라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달라는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댓글은 대체로 이러했다. ‘마라가 너무 맵고 향이 강해 와인이 제구실을 못 한다. 마라에는 역시 고량주다.’ 흠, 만만치 않구나. 그냥 접을까? 그때 혀느님이 이렇게 얘기하셨다. 포기하지마라샹궈!

난제를 풀기 위해 살라미 썰듯 세분화해 접근해 봤다. 일단 매콤한 음식이니 살짝 잔당감이 있는 와인이 좋겠지. 마라가 향이 강하니 섬세한 고급 와인보다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저렴한 와인으로 가자. 이열치열이라고, 마라로 얼얼한 혓바닥을 스파클링 와인의 탄산으로 재차 두들겨볼까? 마라샹궈에 고기도 넣고 싶은데, 그렇다면 화이트보다는 로제 스파클링이 낫겠지. 결론들을 레고 블록처럼 합치니 그럴싸한 답이 도출되었다. 살짝 잔당감이 느껴지는 저렴한 로제 스파클링 와인!

대형마트 와인 매장에서 앞서 언급한 사양과 가장 근접한 와인을 추천받아 1만4800원에 구입했다. 스페인 스파클링 와인 ‘호메 세라 브뤼 로제 피노 누아르 카바’다. 예리한 감각의 소유자인 아내가 잔에 따라놓은 와인을 쓱 보더니 지난번에 맛있게 마셨던 (다섯배 이상 비싼) 뵈브 클리코 로제 샴페인의 영롱한 빛깔과는 차이가 난단다. 딸기나 토마토주스 같은 노골적인 색깔에 약간 딸기 시럽 같은 냄새도 감지된다며 느닷없이 팩트 폭격이다. 그래, 얘는 저렴하고 거친 녀석 맞다. 하지만 와인의 진정한 매력은 무엇인가? 어울리는 음식과 만났을 때 폭발하는 그 시너지 아니겠나.

일단 마라샹궈를 한움큼 집어 우물우물 씹어 삼킨 후, 천덕꾸러기 같은 와인을 고량주처럼 대충 털어 넣었다. 으음! 두 코스의 마사지를 차례로 받는 것 같구나. 피학적 자극의 마라가 아프면서도 시원한 마사지라면, 로제 카바의 탄산감은 받다가 잠이 솔솔 올 듯한 푸근하고 시원한 마사지랄까. 은근히 서로 조화롭다. 아내도 차례로 맛보더니 흐뭇한 얼굴로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라는 시구를 읊어댄다. 거친(못난) 것들의 어울림이 제법 맘에 들었나 보다. 럼주를 마셔대는 바다 사나이끼리의 브로맨스 같은 느낌이랄까. 연미복 입고 젠체하는 와인이 낄 자리는 아니지.

한참을 쉬다가 마라의 자극이 잦아든 상태에서 와인만 마셔보았다. 맛이야 있지만, 아무래도 가격대의 한계인지 기포도 다소 거칠고 풍미도 단조롭다. 단독으로 마셨다면 지금만큼의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을 테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조합은 너무나 성공적이다. 1만4800원짜리 와인을 가장 맛있게 먹은 날이라고나 할까? 알딸딸해진 혀느님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로제 카바 들고 마라샹궈 먹으러 마라도로 고고싱?’

글·사진 임승수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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