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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검찰 수사권만 강화한다고 마약 청정국 됩니까?

등록 2023-05-19 15:18수정 2023-05-19 19:07

[한겨레S] 다음주의 질문
지난 7일 경기도 수원지방검찰청에서 관계자들이 압수한 마약 등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경기도 수원지방검찰청에서 관계자들이 압수한 마약 등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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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닐 중독자가 ‘좀비’처럼 거리를 헤매는 필라델피아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 땅에서 마약을 깨끗하게 쓸어내달라.”

지난 8일 전국 지방검찰청 마약전담 부장검사 회의에서 이원석 검찰총장의 발언엔 날이 잔뜩 서 있었다. 한국 사회가 당면한 마약 문제가 심각함을 경고하기 위한 강변이었겠으나 아쉬움이 남았다. ‘치료의 대상’이기도 한 마약 중독자를 ‘살아 있는 시체’(좀비)에 비유한 것이 지나쳤기 때문이다. 이 총장의 발언으로 국민들이 마약 중독자를 ‘회복의 여지가 없어 영원히 격리시켜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면 사회적 낙인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투약 사실을 자백하고, 스스로 치료에 나서는 중독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총장은 마약 사범의 증가를 전 정부의 수사권 조정으로 인한 검찰 수사권 축소 탓으로 돌렸다. “과거 정부의 검찰개혁 과정에서 마약 조직과 유통에 관한 법 집행력이 현격히 위축된 결과가 어땠는지 국민 여러분이 목격했다”(지난 9일 국무회의)는 윤석열 대통령의 인식과 동일하다. 이들의 결론도 검찰 수사권 강화로 모아진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1일 당정협의회의에서 “(우리는) 많이 잡을 거고, 악 소리 나게 강하게 처벌할 거다. 수사기관이 경쟁하듯 열심히 잡아내면 금방 잡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지난 18일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를 부활시키고 박재억 창원지검장을 새 마약·조직범죄부장으로 보임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마약 전담 부장검사 회의에 참석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마약 전담 부장검사 회의에 참석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이 삼위일체가 돼 검찰 수사권 강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마약 청정국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검찰의 ‘수사’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약 사건에선 수사만큼 중요한 것이 ‘치료’다. 현행 마약류관리법 2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이 마약류 등을 남용하는 것을 예방하고,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치료 보호와 사회 복귀 촉진을 위하여 연구·조사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치료에 관한 검찰의 문제의식은 깊지 않아 보인다. 검찰이 지난해 펴낸 ‘2021 마약류 범죄백서’를 보면, 2021년 한해 동안 치료보호(입원 또는 외래)가 된 마약 중독자는 280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검찰이 의뢰한 경우는 단 1건이었다. 279명은 자발적으로 치료보호를 요청했다.

마약 사범 증가 저변에 깔린 사회·경제적 원인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 것도 문제다. 마약 사범 연령이 낮아지고 있는데, 높은 청년 실업률, 코로나19 이후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고립된 청소년의 상황, 높아지는 청년 자살률은 마약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마약 중독 환자를 전담으로 돌보는 인천참사랑병원 천영훈 원장은 한국을 ‘중독에 취약한 국가’로 정의한다. 천 원장은 지난달 8일 ‘청년 정신건강’을 주제로 한 토크콘서트에서 “청년, 특히 저소득층이 건강한 문화와 여가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는다면, 결국 방구석에서 할 수 있는 가성비 높은 쾌락은 마약이 될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마약 중독자를 악마화하지 않고 치료를 필요로 하는 아픈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함께 관계를 갖고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윤 대통령, 한 장관, 이 총장에게 묻고 싶다. “마약 청정국으로 복귀, 검찰 수사 강화만으로 할 수 있습니까?”

이재호 법조팀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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