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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최우선변제금도 찾기 힘든 전세사기 특별법…갈 길이 멀다

등록 2023-05-28 09:00수정 2023-05-28 11:50

[한겨레S] 이슈
전세사기 특별법 통과 이후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23일 특별법안에 피해자 인정범위 확대와 보증금 회수 방안을 포함해달라는 서명을 국회에 전달하려다 경찰에 막히자 항의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23일 특별법안에 피해자 인정범위 확대와 보증금 회수 방안을 포함해달라는 서명을 국회에 전달하려다 경찰에 막히자 항의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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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은 부동산 돈 잔치가 끝난 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0.25%의 기준금리를 0.5%로 올린 시점이 2022년 3월이었고, 9개월 뒤인 12월 기준금리는 4.5%를 찍었다. 전세계 중앙은행이 금리인상 행렬에 따라나섰다. 10년 넘게 지속된 저금리 시대가 끝나고, 부동산과 주식의 가격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해 하반기부터 신음 소리가 커졌다. 번 돈의 일부를 잃은 사람들의 소리였을까. 아니었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빚더미에 앉은 세입자들에게서 나는 소리였다. 잔치를 즐긴 이들이 아닌, 잔치에서 소외된 이들의 신음이었다. 특히 조직적으로 나선 임대인들의 연립·다세대 주택에 입주한 이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른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9월부터 전세사기 대책을 내놨으나, ‘안심전세 앱 구축’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정책들이었다. 그렇게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사이 올해 2월28일과 4월14일, 4월17일에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세상을 등졌고, 그제야 정부와 국회는 전세사기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국회가 지난 1일 뒤늦게 ‘전세사기 특별법’ 논의에 착수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던 지난 8일 또 한명의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국회 앞에선 ‘전세사기·깡통주택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이하 전세사기 대책위)가 연일 집회를 열고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 피해자들 대다수가 대출이 연체되고 긴박한 상황에 내몰리는데도 정치권의 움직임은 더뎌 보였다. 민간 정책연구소 랩2050이 지난 19일 원격으로 전세사기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개최한 이유였다.

핵심쟁점 사라진 특별법

특별법의 주요 쟁점은 보증금 반환채권 매입과 전세사기 피해자 요건이었다. 긴급토론회 전까지 나온 언론 보도들을 자세히 살펴봐도 보증금 반환채권 매입이 어떤 방안이고, 요건에 해당되는 피해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언론의 관심도 식어가는 상황에서 이날 토론회의 목적은 피해 당사자와 전문가의 목소리를 통해 핵심 쟁점을 분명히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런 시도가 국회 논의의 마중물이 되었으면 하는 취지였다.

긴급토론회 3일 뒤인 지난 22일 국회 국토교통위 법안심사소위는 전세사기 특별법을 통과시켰고 25일에는 국회 본회의에서도 의결됐다. 특별법이 제정됐으니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 여야 이견이 없던 우선매수권 부여, 공공임대 우선 공급, 전세대출 무이자 상환 지원 등은 확정됐다. 하지만 대책위는 바로 ‘특별법을 수용하기 어렵다’고 반발했고, 심지어 24일엔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가 또 목숨을 끊었다. 다섯번째 비극이었다. 특별법에선 쟁점이었던 ‘보증금 반환채권 매입’이 빠지고 최우선변제금(대항력을 갖춘 소액임차인이 다른 권리자보다 우선하여 돌려받을 수 있는 보증금 일부)만큼 무이자 대출을 해주겠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앞서 긴급토론회에서도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돌아가신 분들 중에 두분은 최우선변제금조차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목숨을 끊었다. 채권매입 방안 중에 정의당안(심상정 의원 발의)이 통과되면 후순위 채권자들도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지만, 민주당안(조오섭 의원 발의)이 통과되면 상당수가 최우선변제금조차 못 받는다. 이 문제를 국회가 꼭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증금 반환채권 매입 의제 안에 숨어 있던 최우선변제금 문제가 결국 뇌관이라는 의미였다. 정의당은 전세보증금의 절반을 최소한 보장하는 형태의 채권 매입 방안을 제시했고, 민주당은 공정평가 혹은 사후정산 방식의 채권 매입 방안을 제안했다. 민주당안이 채택되면 집이 경매로 넘어간 뒤에 선순위 채권자인 금융기관에 빚을 먼저 청산하면 임차인에겐 돌아갈 몫이 없을 수 있다. 최우선변제금은 ‘소액임차인’에게만 보장되며, 이 기준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으로 정하고 있다.

인천의 경우 올해 2월 시행령이 개정되기 전 기준으로 보증금이 1억3000만원 이하일 때 최우선변제금이 4300만원이다(시행령이 개정된 현재는 보증금 1억4500만원 이하일 때 최우선변제금 4800만원). 김주호 팀장은 “임대인의 요구에 따라 보증금을 올려줬다가 기준을 넘은 경우도 상당수”라며 “미추홀구에만 최우선변제금을 못 받는 사람이 적어도 500명이 넘는다. 대책이 없으면 이분들은 빚만 떠안고 한푼도 못 돌려받고 쫓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미추홀구 피해 주택의 76%가 후순위 임차인이다.

소액임차인 여부를 가르는 기준 시점이 임대차 계약이 아닌 근저당 설정 때라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임차인이 2021년에 입주했더라도 해당 주택 선순위 근저당이 2018년에 설정됐다면 2021년 기준인 ‘1억3000만원 이하’가 아닌, 2018년 기준인 ‘8000만원 이하’가 적용된다. 2021년에 보증금 9000만원을 주고 임차를 했어도 최우선변제금을 못 받게 되는 것이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임재만 세종대 교수(부동산학과)는 “최우선변제금 관련 제도가 지나치게 임차인에게 가혹하다. 임차인이 과거의 시행령까지 뒤져가며 전세계약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피해 구제 위해 넘어야 할 요건

전세사기 대책위는 특별법이 규정하는 피해자의 요건도 불합리하다고 지적한다. 피해자가 특별법으로 지원을 받으려면 △임차인 대항력 확보 △보증금 5억원 이하 △임대인의 파산·회생 절차 개시와 주택 경·공매 진행으로 다수 피해 발생 예상 △임대인의 사기 의도를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모두 충족돼야 한다. 전세사기 대책위는 또 △입주 전 사기 △소수 피해자 △보증금 5억원 초과 세입자는 구제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가 크다고 말한다.

특별법이 제정되긴 했지만 법 보완과 추가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토론회에서도 구조적인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임재만 교수는 “결국 보증금을 돌려받는 절차를 피해자 개개인에게 맡기기보단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가 (보증금 반환)채권을 인수해 보증금 회수 역할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캠코가 보증금 반환채권뿐 아니라, 금융기관의 선순위 채권도 적극적으로 인수하면 경매 진행 이후에 후순위 임차인에게 돌려줄 보증금을 상당수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감정평가사인 조정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주택위원장도 “피해를 구제하면서도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는 방안들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정부가 삭감한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늘리는 논의로 확장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형중 랩2050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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