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국립국악원 야외 공연장 별맞이터에서 문화부 김명곤 장관은 '전통예술활성화방안, 비전2010'을 발표했다. 주요 골자는 문화예술위원회 9개 장르 중 하나로 작게 자리잡은 전통예술분야인 국악, 무용, 전통연희를 집중적으로 지원할 '전통예술진흥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지난 100일 간담회에서 밝힌 전통예술진흥에 대한 계획발표 같지만 그안에는 대단히 혁신적인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그것은 국악계에 존재하는 국고(국립국악고등학교)권력에 대한 해소 의지이다. 국고는 55년 주로 궁중음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국악사양성소'로 시작했다. 그리고 59년 서울대에 국악과가 설치되면서 자연스럽게 서울대 권역으로 진입했고, 다른 분야가 그렇듯이 국악계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반면 국악계 중등교육의 양대줄기인 국악예고는 60년 '부설 관관요원양성소'로 출범하였다. 여기서부터 궁중음악과 민간음악에 대한 차별은 시작되었다. 국고 출신이 서울대에 안착하고 이후 현재 24개로 늘어난 대부분 대학의 국악과 교수직을 독점하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국악예고 출신들은 대부분 중앙대학교로 진학하게 되었고, 교수직 진출은 중앙대나 전북대 등 일부에 그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교수들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예술계는 교수들의 독점이 더욱 두드러진 곳이고, 국악계라고 다를 바 없다. 또한 정부의 국악전담기관인 국립국악원은 자연스럽게 국고출신들로 채워졌다. 물론 그에 대한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찌기 민간음악의 대가인 지영희, 성금련 부부가 국악원의 아성에 도전했다가 결국 낭패를 보고 말았던 사실이 있다. 그후로 지금까지 민간음악계는 상대적 박탈감을 곱씹으며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왔다.
그렇게 국고와 국악예고의 차별이 생기게 된 근본 원인은 국립과 사립의 차이에 있다. 국고는 우선 입학만 하면 학비가 전액 면제된다. 양성소 시절에는 학비는 물론 일부 생활비 보조까지 주어졌다. 이왕직아악부의 해체 이후 국악원이 설치되기 전까지 이왕직아악부 출신들이 먹고 살기 위해 악기를 놓아야 했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니 학비는 물론 생활을 보장하지 않고는 도저히 국악하라고 권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였던 것이다. 당시 정부는 소위 민중적 역사의식이 없었던 까닭에 궁중음악의 보존에는 솔깃했으나, 민간음악의 보전과 발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결과 민간음악인들은 정부 도움없이 자기 재산을 털어내 가까스로 교육시설을 마련한다. 국악예고 창설자인 향사 박귀희의 눈물겨운 노력의 결실이었다. 국악예고가 국고에 비해 상대적 차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박범훈, 최태현, 김덕수 등 국악계 거목들을 배출하면서 위상변화를 가져왔다. 국고 출신들이 서울대에 안착해서 엘리트 코스를 밟는 동안 국악예고 출신들이 둥지로 삼았던 서라벌예술대가 중앙대학으로 편입되면서 정규대학으로써 발돋음하게 되고, 얼마전에는 국악인으로서는 최초로 종합대학 총장을 맞아 사회적으로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민간음악은 정부의 정책적 배려에서 배제되고 있었다. 지난 3월 전격적으로 김명곤 장관이 취임하면서 국고와 국악예고의 차별구도에 일대 혁신이 예고되었다. 국립극장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김장관은 일찌기 문화운동을 통해 판소리를 익혔으며 그동안 과정을 통해 국고보다는 국악예고와 가까운 정서를 유지해왔다. 그 결과 이번 전통예술진흥원을 통해 국고와 국악예고의 세력균형을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방안을 개발한 TF에 국고 출신이 배제된 상태에서 연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런 추측이 가능해진다. 또한 국악예고에 우선 100명 정도 장학금을 문화부에서 지원하고, 더 나아가 학교에서 원할 경우 국립화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이건 대단한 국악혁명이다. 같은 조건이라면 국고와 국악예고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과거와 같이 궁중음악과 민간음악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교육과정을 갖고 있지 않은 현 상황에서 국립중고등학교가 두 개 존재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일 수도 있으나 그 착안 자체가 가히 혁명적이다. 국악계 바깥에서 보기에는 별 것 아닐 수 있겠으나 내부에서는 아노미까지 불러올 수 있는 사건이다. 비록 조용히 진행되었지만 국립국악원 별맞이터에는 무거운 긴장감이 느껴졌다. 이 발표 이전인 지난 8월에도 새 국악원장 공개모집에 이미 국고 위기설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고권력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번 조치에 반발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국악계 파이가 커지는 것이고 적어도 선량한 음악가들인 그들이 좋은 일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사람은 없다. 이번 김명곤 장관의 발표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혁명을 꾀하고 있다. 전통예술을 한국전체 예술의 절반으로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민간음악을 궁중음악과 동등하게 키우겠다는 야심이다. 즉, 전통예술을 발전시켜 나가되 지금까지와는 달리 민간음악과 민간음악인 중심의 기관을 통해 그 지원폭을 늘려나가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악사에 큰 획을 긋게 될 야심찬 포부이다. 계획대로 무난히 추진된다면 전통예술진흥과 국고권력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포획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현장에는 기자들이 없었다. 여전히 사회의 이슈로 파악히지 못하는 언론의 전통예술에 대한 무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현상이었다. 텔레비젼 방송국 두 곳에서 잠깐 왔다 가기는 했지만 현장에서 취재수첩을 꺼내 든 것은 오마이뉴스 한 곳뿐이었고, 연합뉴스는 사진기자만 잠시 보냈을 뿐이다. 국악혁명의 깃발이 나부끼는데, 그것을 세상에 전할 기자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 정도면 문화부 출입기자실은 폐쇄해야 마땅하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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