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 죽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바닷물 범람사고로 9명이 숨지고 13명이 실종된 가운데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보령아산병원에서 한 유가족이 가족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보령/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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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충남 보령 죽도에서 일어난 큰 파도는 평온한 휴일을 즐기던 낚시꾼과 관광객 49명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특히 어린이날을 낀 사흘 연휴를 맞아 바닷가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던 시민들은 날벼락 같은 큰 파도에 손쓸 여지도 없이 가족들을 잃는 비극을 겪었다.
■ 집채만한 파도가 순식간에 덮쳐 “‘쏴아’ 하는 큰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집채만한 붉은색 파도가 덮쳤습니다.” 이계종(46·보령시 남포면 월전리)씨는 죽도선착장 일대에서 발생한 2m 높이의 너울이 방파제에 밀어닥치던 순간을 떠올리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강명훈(58·주민)씨는 “바다를 바라보던 관광객들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육지 쪽으로 뛰어올라와 바라보니 물가 갯바위에 내려가 있던 어른과 아이, 방파제에 있던 관광객들이 바닷물에 휩쓸렸다”며 “이어 선착장 왼쪽과 오른쪽으로 큰 물 소용돌이가 생겼고 사방에 사람이 빠져서 살려 달라고 아우성쳤다”고 전했다.
파도가 덮치자 강씨와 이씨 등 주민들은 즉시 배 세 척을 띄워 선착장 왼쪽 방파제 쪽으로 휩쓸린 사람 17명을 구조했다. 이씨는 “날이 궂으려면 높은 파도가 일 때가 있다는 말을 듣긴 했으나 이런 파도는 태어나서 처음 본다”며 “선착장 오른쪽 바다로 쓸려나간 사람들은 물 소용돌이가 심해 구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구조한 관광객 가운데 10여명이 목숨을 건졌다. 강씨는 “물속에서 아버지 박종호(36)씨가 받치고 있던 박성우(4)군을 겨우 구조해 인공호흡을 한 뒤 병원으로 옮겼는데, 아버지도 아들도 모두 숨졌다는 말을 들었다”며 안타까워했다.
■ 아이들 데리고 나온 시민들 ‘날벼락’ 갑작스런 파도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앞두고 바닷가를 찾아온 단란한 가족들을 고통과 슬픔으로 몰아넣었다. 박종호(36·충남 연기군 금남면)씨는 아들 성우(4)군과 함께 숨졌으며, 동생 일가족, 어머니와 함께 가족여행을 온 추창렬(45·경기도 안산시)씨는 조카 승빈(7·서울 도봉구 미아동)군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오후 6시20분께 박주혁(15·경기도 수원시)군이 주검으로 인양되자 박군 어머니는 “우리 주혁이가 왜 바다에서 나오냐”며 믿을 수 없다고 몸부림쳤다. 박군은 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서해안을 찾았다가 고모부 박선규씨와 함께 파도에 휩쓸렸다.
■ 기상청도 원인 파악 못해 기상청은 “큰 파도는 전혀 파악되지 않았으며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기상청의 김진철 통보관은 “관측장비를 통해 볼 때 바람은 3∼ 정도로 아주 강한 것이 아니었고, 물결도 0.3~0.4m로 낮은 편이었다”며 “지진도 없어서 해일을 예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전지방기상청 백은희 예보사는 “이번 사고는 폭풍이나 지진해일에 의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만조 때 물속을 따라 발생한 강한 조류가 인공 구조물인 방파제에 부딪치면서 너울성 파도로 변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충남도 소방안전본부와 보령시, 태안해경은 사고 현장에 임시 사고합동대책본부를 설치하고 피해자들의 정확한 신원 확인과 인명구조, 사고 원인 조사, 유가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강난수(42) 한국해양구조단 보령지역대장은 “갯벌 쪽은 인간띠를 만들어 수색하고 해변 쪽은 수중등을 켜고 실종자를 찾고 있으나 수중 가시거리가 1~2m 수준이고 기상 상황이 안 좋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사망]=박종호(36) 박성우(4) 추창렬(45) 추승빈(7) 김경환(44) 박주혁(15) 박선규(48) 최성길(63) 이육재(45) △[실종]=박주혁군 외삼촌 등 13명
보령/송인걸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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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낮 12시40분께 충남 보령시 남포면 죽도 방파제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큰 파도가 덮쳐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한 뒤 해양경찰과 119구조대 등이 바다 속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을 펼치고 있다. 보령/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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