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위안부·원폭 피해자 방치는 위헌” 결정 의미
헌재 “헌법·한일협정 비춰봐도 의무 분명하다”
피해자 고령 감안해 배상청구권 실현 서둘러야
헌재 “헌법·한일협정 비춰봐도 의무 분명하다”
피해자 고령 감안해 배상청구권 실현 서둘러야
일본군 군대위안부, 원폭 피해자 문제 등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온 정부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으로 근본적인 방향 수정을 촉구했다.
30일 헌재 결정은 이들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다는 점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헌법 전문과 관련 조항은 물론, 한일협정 내용에 비춰봐도 한국 정부가 이들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을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음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배상 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한 데도 1965년 협정 체결 당시 대일 청구권의 내용을 명확히 하지 않은 한국 정부에 책임이 있는 만큼, 이런 의무를 부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헌재는 정부가 한일협정과 외교 현실 등을 이유로 배상청구권 문제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 것은 이런 의무를 저버린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동안 정부는 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소모적인 법적 논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므로 일본 정부를 상대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처는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밝혀왔다. 외교통상부가 2006년 4월 군대위안부 단체 등에 보낸 문서도 일본 쪽에 금전적인 배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밝혔다. ‘양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이라고 표현한 한일협정 제2조 제1항이 그 근거였다.
헌재는 협정을 봐도 정부의 이런 태도는 잘못이라고 판시했다. 헌재는 협정 제2조의 대일청구권에 군 위안부나 원폭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이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부터 한·일 양국의 해석 차이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본은 군대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개인배상 청구권이 한일협정으로 모두 소멸했다고 해석하는 반면, 우리 정부는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협정만으로 전부 해결됐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헌재는 이 정도라면 분쟁에 해당하는 만큼 협정 제3조의 분쟁해결 절차에 따라 중재위원회 등 외교적 경로를 통해 해결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런 절차를 아예 밟지 않는 바람에 헌법상 보장된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한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침해됐다는 것이다.
헌재는 특히 “피해자들이 모두 고령이어서 배상청구권의 실현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 자칫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다”며 “정부가 ‘소모적 법적 논쟁으로의 발전 가능성’이나 ‘외교관계의 불편’이라는 추상적 이유를 들어 시급한 피해자 구제를 외면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군대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외교적 해결이 추진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헌재 결정의 본질적 한계 탓에 정부에 특정 절차를 요구하거나 법적인 강제 의무를 부과하기는 어렵다. 일본 정부가 기존 태도를 바꾸려 들지 않을 것이라는 문제도 있다. 다만, 이들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정부에 있음이 확인된 만큼, 정부로서는 구체적인 조처를 더는 미룰 수 없게 됐다. 정부 관계자도 종합적 대응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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