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벗은 몸은 아름다운가 음란한가?

등록 2005-07-27 15:36수정 2005-07-27 20:08

음란판결을 받은 작품 가운데 하나인 김씨 부부의 사진.
음란판결을 받은 작품 가운데 하나인 김씨 부부의 사진.
대법 유죄판결 받은 ‘알몸사진 교사’ “답답한 대한민국”
“대한민국이 답답합니다.”

미술교사 김인규(43·서천 애니메이션고)씨의 목소리에는, 그의 말처럼 답답함이 묻어났다. 김씨가 지난 2001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자신과 부인의 알몸 및 성기 사진 등에 대해 대법원이 27일 원심을 깨고 일부 유죄(전기통신기본법 위반) 취지로 파기환송한 데 대한 답이다. 대전고법은 지난 2002년 12월 “김씨 부부의 알몸 사진에 성기가 드러나기는 했으나, 홈페이지 전체의 맥락에서 봤을 때 음란한 의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의 결정은 김씨의 예상을 깬 것이었다. 김씨는 “1, 2심 모두 무죄였는데, 이렇게 유죄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히 무죄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는 물음을 받는 것에도 지친 듯했다. 그는 지난 2001년 학부모들의 고발로 기소된 뒤 긴급체포, 정직처분 등 4년여 법적 소송의 고통을 치러왔다.

“대법원의 판결을 납득하십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은 오히려 공허해보였다. 김씨와의 인터뷰는 오래하기 힘들었다. “납득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나요. 법원이 음란물이라고 하는데…. 대한민국이 그렇다고 하는데…. 갑갑해서…. 세상이 너무 답답해요. 그 말밖에 할 게 없어요.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네요.” 김씨에게 대법원의 판단에 대해 묻는 것은 김씨를 더욱 답답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림속 성기 비중이 크면 음란, 작으면 비음란?

재판부는 김 교사 홈페이지 게재물 6점 가운데 3점, ⑤김씨 부부가 맨몸으로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정면을 바라보는 사진 ④여성성기를 정밀묘사한 그림 ⑥발기된 채 정액을 분출하는 남성성기 그림은 음란물이라고 판단했다.


④는 묘사가 매우 정밀하고 색채가 사실적이며 여성 성기 이미지가 그림 전체를 압도하기 때문에, ⑤는 있는 그대로의 신체의 아름다움을 느끼자는 제작의도가 있었다 해도 얼굴과 성기를 가리지 않은 채 적나라하게 나신을 드러낼 필연성이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⑥은 보통사람이 성적 상상과 수치심 외에 다른 사고를 할 여백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이유다.

환자용 변기에 놓인 남성성기 그림. 무제(1996년작).
환자용 변기에 놓인 남성성기 그림. 무제(1996년작).

특히 마흔이 다 되어, 세번째 아이를 임신한 만삭의 아내와 자신이 방 한쪽 구석에서 찍은 사진(⑤)마저 ‘음란’판정을 받은 것에 대해 김씨는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이 사진은 셋째를 임신한 만삭의 아내와 나의 벌거벗은 일상의 기록”(김인규씨가 쓴 <나의 사진은 실제상황이다> 중에서)이라는 김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연출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고, 임신한 아내와 자신의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는 김씨의 ‘상상력’도 인정받지 못했다. “궁벽한 시골에 처박혀 사는 화가에게 인터넷이야말로 예술적 발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최고의 화랑이었기 때문”(2002년 8월 조선일보 인터뷰)이라는 그의 생각은 ‘유죄취지’로 결론났다.

성기가 발기된 채 양주먹을 쥔 청소년 그림. 남자라면(1996년작).
성기가 발기된 채 양주먹을 쥔 청소년 그림. 남자라면(1996년작).

그나마, 재판부는 ①환자용 변기에 놓인 남성성기 그림 ②성기가 발기된 채 양주먹을 쥔 청소년 그림 ③하드코어 포르노물 일부를 고속편집한 동영상은 음란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①은 그림 전체에서 성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아서, ②는 근육질과 성기가 과장돼 현실감이 떨어지는 만화라서, ③은 사진과 흰 여백이 매우 빠르게 움직여 자세히 봐도 내용을 파악할 수 없고 포르노 시청자가 통상 기대하는 장면이 안 나온다는 점에서 성적 흥분이나 수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았다.

“조작되고 꾸며진 아름다움만 강조하는 세상”

6점 가운데 3점에 대해 음란물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을 위로로 삼아야 할까?

“부부의 알몸 사진을 음란물로 본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말없이 긴 한숨을 내쉬기만 했다. “‘음란’이란 보통사람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쳐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라며 “음란물 여부는 표현물 제작자의 주관적 의도가 아닌,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그 시대의 건전한 통념에 따라 객관적·규범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재판부의 취지를 김씨에게 읽어주는 것은 무의미했다.

법원의 판결에 대한 김씨의 생각은 과거기록을 뒤져보는 수밖에 없었다.

“몸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지금 미스코리아대회나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미인들은 화장과 조명기술에 의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형수술, 심지어는 컴퓨터 그래픽을 동원해 조작되고 꾸며진 아름다움만을 강조하고 있죠. 그 앞에선 누구의 몸도 초라해지고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정한 몸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어머니의 손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 속에 담긴 희생의 세월이 눈물겹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우리 모두의 본 모습에 담겨 있습니다.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올려놓고 설명하는 홈페이지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내 홈페이지는 자체가 작품이고 소주제들은 나뭇가지와 줄기가 됩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방문자들과 대화할 것입니다.(2001년 6월 한겨레 인터뷰)

농촌생활 애환 그리는 손으로 알몸을 그리다

그가 왜 이리 답답해하는지는 그의 경력에서도 짐작된다.

그는 전교조 활동으로 1989년 해직됐지만, 94년 복직돼 학교로 돌아왔다. 2001년 6월 음란 논란이 벌어졌지만, 같은해 7월 제4회 신세계미술제 주제 공모전 대상 수상자로 뽑혔다. 그는 이때 “나체 사진의 음란성을 판가름할 판결을 앞두고 제가 미술학도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은 것 같다”며 기뻐했다. 김씨는 전국 작가 151명이 응모한 이 미술제에서 ‘A4용지 만들기’라는 제목의 서양화를 출품했고, 현대사회의 대표적 문서양식인 A4용지를 소재로 미술제의 주제인 ‘자생-문화적 탈식민을 꿈꾸며’를 함축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국민일보 2001년 7월13일) 또 같은해 12월에는 서울 광화문 갤러리에서 열린 서울민족미술협의회 주최 ‘바람바람바람’전에 컴퓨터작업 ‘우리 몸의 거처’를 출품하는 한편 전시장에서 농촌 생활의 애환을 담은 ‘쌀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답답하기는 누리꾼이나,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였다.

문화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어 “한국 재판부의 윤리의식이 여전히 구태의연한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참담한 결정이며, 동시대의 가치와 방향을 전혀 가늠하지 못하는 대법원의 반문화적 법리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고 비판했다. 이어 “재판부는 판결의 근거를 ‘사회적 평균인’이라는 애매모호한 집단정서에 기대고 있다”며 “다양한 창작물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여 다양한 소통이 가능한 사회만이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다”고 주장했다. 또 “창작물이 음란물인가 예술작품인가에 대한 판단을 결코 도덕적 잣대로만 이뤄질 수 없으며, 도덕적 잣대를 근거로 처벌하는 것은 더더욱 곤란하다”며 “‘음란성 여부’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보다 중요한 것인가?”고 물었다.

김인규 교사.
김인규 교사.
다비드상도 음란물, 비너스상도 음란물?

“성기를 과장해석하여 풋사과들의 기를 죽이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도 음란물. 교태끼가 느껴지는 포즈를 취한 밀레의 비너스도 가슴를 활짝 열어놓았으니까 음란물…이른 아침 원주민의 가슴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도전 지구탐험대’도 음란물”(누리꾼 이등별), “예술은 보통사람들의 잣대에 맞춘 것만 표현해 내는 창작이 아니구요,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 이르지 못하는 것도 표현해 내는 기술이랍니다. 맨날 세상에 널려있는 판례나, 책속에 적혀있는 글귀나 주어 담으며 틀에 박힌 자화상을 가진 사람들이 어찌 시시각각 그 모습을 달리하는 세상을 들여다 보고 미래를 밝히는 판결을 기대할 수 있으리오”(‘별나라’).

대법원의 판결은 27일 내려졌지만, 4년 전 당시 김씨가 가르치던 중학생 아이들은 이런 판결을 내렸다.

“시시했어요. 너무 안 야했어요.” “처음에는 좀 놀라고 쑥스럽고 그랬는데, 우리 선생님은 원래 솔직하고 순수한 분이니까 그럴 수 있는 것 같아요.” “부부끼린데 그런 사진 찍을 수도 있는 거 아녜요?”

“선생님 나체사진보다 더 이상한 사진도 인터넷에 많이 있잖아요. 솔직히 예술인지 아닌지 전 잘 모르겠지만 그냥 선생님의 다른 모습을 알게 됐을 뿐이지 나쁘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외모를 중요시하는 사회에 대한 어떤 상징 같아보이는데, 그 사진만 따로 떼어내서 보고 음란하다고 하는 어른들이 더 음란한 것 같아요.”

“패션모델들은 앞가슴이 훤히 보이는 옷을 입고 활보하잖아요. 유명한 예술가가 그런 사진 올렸으면 누가 뭐라고 했을 것 같지 않아서 더 속상하고 선생님이 불쌍해요.”(2001년 6월 <한겨레21> 365호)

김씨는 2002년 12월 고법 무죄판결 뒤 이렇게 말했다. “안도감이 앞서요. 이젠 정말 떳떳한 미술인으로 제자와 동료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한겨레> 인터뷰에서) 대법원 판결을 받아든 그는 답답한 마음으로라도 제자들 앞에 계속 설 수 있을까?

■ 김인규씨 홈페이지
  • www.ingyu.net
  • user.chollian.net/~ingyu200

  •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