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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검찰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불가능한가

등록 2020-02-21 20:24수정 2020-02-24 18:07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일 경기 과천 법무부청사에서 검찰 수사와 기소의 완전 분리 방침을 밝히는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일 경기 과천 법무부청사에서 검찰 수사와 기소의 완전 분리 방침을 밝히는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코로나19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구한 것 같다.” 21일 열릴 예정이었던 전국 검사장회의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연기되자 검찰 안팎에서 나온 반응이다.

추 장관이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검찰 수사의 중립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 수사와 기소의 판단 주체를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화두를 던진 뒤, 추 장관은 검찰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는 반대 글이 잇달아 올라왔고, 글마다 수백개의 동조 댓글이 달렸다. 법무부의 일방적인 검찰 직제 개편과 현 정권을 수사했던 검사들의 좌천 인사에도 분위기가 차분했던 것과 달리 이번 추 장관의 수사·기소 분리 추진에는 상당수 검사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애초 법무부는 검사장회의에서 △총괄기소심사관 직제 신설 △법률 개정을 통한 수사·기소 완전 분리 △현행 인권수사자문단 활성화 △미국의 기소 대배심제 도입 등 4가지 방안 등을 제안할 예정이었다. 법 개정을 통한 수사·기소 완전 분리를 제외하면, 총괄기소심사관·인권수사자문단·기소 대배심 등은 모두 수사 검사가 반드시 기소 혹은 불기소 의견을 따를 필요가 없어 법무부가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이조차도 설득이 쉽지 않아 보여, 회의를 취소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법무부 안팎에서 제기됐다. 때마침 소강상태로 접어든 코로나19가 급격하게 확산되기 시작했고, 추 장관은 검사장회의를 전격 취소했다. 법무부는 “관할 지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관련 대응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봐 전국 검사장회의를 잠정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지만, 검사들의 집단 반발에 법무부가 물러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다.

추 장관이 내놓은 개혁 방안은 ‘타이밍’이 문제였다. 공소장 비공개 결정이 ‘청와대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 사건부터 적용된 게 대표적이다.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 역시 마찬가지다. 검찰 개혁법안 추진 당시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던 법무부가 검찰의 정권 수사가 한창인 때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를 들고 나오니, 많은 이들이 ‘수사 방해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 방안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검찰 수사를 돌아보면, 수사와 기소를 동일인이 담당해 권한남용과 인권침해가 벌어진 사건이 적지 않다. 미네르바 사건과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 사건, 광우병 <피디(PD)수첩> 사건 등이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가 이뤄진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세번째 수사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법정 구속한 다스 실소유 의혹 수사는 검찰이 사건을 덮었던 대표적인 경우다.

“수사는 소추(기소)에 복무하는 개념이다.”(윤석열 검찰총장) “수사 없는 기소, 기소를 염두에 두지 않는 수사가 가능한지 모르겠다.”(이수영 대구지검 상주지청 검사) 수사·기소 분리를 반대하는 검사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누군가의 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기소가 마치 수사의 ‘전제조건’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애초에 기소를 염두에 두고 수사를 한다면 반대 증거가 나왔을 때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초임 검사 때부터 상사들이 ‘하다가 안 되면 이건 아닙니다 하고 깔끔하게 접을 수 있는 검사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 수사를 하다보면 사건에 몰입돼 그게 잘 안 된다.” 특수 사건 경험이 많은 검사의 말이다. 내부망에 글을 쓰지는 않지만, 수사·기소를 함께하는 현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검사들도 적지 않다.

수사권·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영국의 중대범죄수사청(SFO)도 크게는 수사부와 공소부로 구별된다. 사건에 대한 공소를 제기하기 전에 2~6개월 동안 사건팀과 외부 법정변호사가 모의재판도 하는 등 검증을 진행한다. 한국의 검찰 역시 수사권·기소권 독점의 폐해를 우려해 검찰심의위원회나 레드팀 등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애초 검찰 제도가 탄생한 취지를 살리자면 검사가 수사를 할 경우 그 기소 여부는 다른 검사에게 맡기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법무부는 19일 “코로나19 상황이 소강상태에 들어간 이후 전국 검사장회의를 반드시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타이밍은 나빴지만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다. 검사장회의든 평검사와의 대화든 서로 생각을 확인하는 자리는 마련되길 바란다. 반드시 그리고 조만간.

황춘화 법조팀 데스크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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