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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출생신고 거부된 미혼부, 아빠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등록 2020-02-22 09:20수정 2020-02-22 22:57

[토요판] 커버스토리 | 미혼부의 아빠 되기
세 아빠가 들려주는 출생신고의 ‘낡은 벽’

홀로 아이 키우는 미혼부들
아이 출생신고 못해 큰 고통
‘사랑이법’ 사각지대의 아이들
건강보험·아동수당 등 못 누려

주민번호 없는 16개월 노을이
‘법적 아빠’ 상대로 소송 중
천신만고 끝 신고한 호진 아빠
“아이 낳아 키우라면서요…”

미혼부 돕는 미혼부 김지환씨
“출생신고는 아이의 기본권”
일러스트레이션 순심
일러스트레이션 순심

여기 미혼부 세 명이 있다. 엄마는 사라졌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아빠들이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없는 존재가 됐다. 출생신고를 못 했기 때문이다. 눈앞에 있으나 법적으로는 없는 아이와 아빠는 수많은 고통을 겪었고, 겪고 있다. 아빠는 포기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아빠의 품’ 안에서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길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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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환, 7살 딸 사랑이 아빠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지하철 홍대입구역 8번 출구 앞.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에 눈발이 마구 날렸다. 김지환(43·서울)씨는 커다란 손팻말 두 개를 붙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팻말에 적힌 내용이 다소 길다. “소송을 해야만 주민등록번호를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사회가 법과 제도로 아이들을 차별하고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몇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주민등록번호·건강보험 등의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당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혼부 김지환씨가 2월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8번 출구 앞에서 출생신고라는 아동의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미혼부 김지환씨가 2월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8번 출구 앞에서 출생신고라는 아동의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환씨가 1인 시위에 나선 것은 처음이 아니다. 6년 전 유모차를 옆에 두고 1인 시위를 했던 날들의 혹한은 이날에 견줄 바 아니었다. 2013년 7월 딸이 태어난 뒤 우울함에 시달리던 아이 엄마가 훌쩍 떠났다. 아이가 아팠지만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었다. 차를 팔고, 노트북을 팔고, 고금리 대출을 받고, 신용불량자가 되고, 일자리를 구했다 잃었다 되풀이하다가 분유 한 스푼과 기저귀 대여섯 장이 남았을 때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마트에서 버린 택배 상자를 뜯어 “제 딸은 엄마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아빠 혼자서 출생신고를 못 하게 합니다… 일자리마저 잃었습니다”라고 썼다. 누군가 이 장면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고, ‘유모차남’이란 별명을 얻은 지환씨의 사연이 방송을 탔다. 출생신고를 하기 위한 소송에 속도가 붙었고, 사랑이(가명)는 생후 16개월 만인 그해 11월에야 출생신고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2015년 5월18일 ‘사랑이법’이 만들어졌다. 지환씨처럼 아이 엄마의 인적 사항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미혼부에게 혼자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가족관계등록법은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가 하여야 한다’(제46조 2항)고 규정하고 있다. 아빠가 혼외자에 대해 친생자 출생의 신고를 하려면 엄마의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 미혼임을 입증하는 증명서를 내야 한다. 그래서 사랑이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지환씨 같은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환씨는 재판 네 번을 거쳐야 했다. 먼저 아이의 법정후견인을 선임하는 재판을 했다. 그다음 성과 본을 창설하는 재판을 통해 아이는 ‘동작 김씨’의 시조로 ‘사랑’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김사랑’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했다. 그리고 지환씨가 유전자 검사와 함께 ‘김사랑은 내 친자식’이라는 인지 청구 소송을 해 법적 가족관계가 성립됐다. 이런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탓에 법원으로부터 ‘엄마가 누군지 모르지만, 친아빠가 맞다’는 확인을 받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간소화(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2항 신설)한 것이 사랑이법이다.

지환씨는 “사랑이법이 만들어져서 나 같은 미혼부는 다 괜찮아진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여전히 출생신고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혼부들이었다. 이후 그들을 돕는 일을 해온 지환씨는 지난해 11월, 두 번째 1인 시위에 나섰다. 미혼부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키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더는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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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주, 25개월 아들 호진이 아빠

2018년 초, 임용주(가명·39·경기도)씨는 아이 엄마가 건네주는 아이를 무심결에 안았다. 멍했다. 아이 엄마는 ○월○○일에 낳았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며칠은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정신을 조금 차리고 나니 ‘출생신고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주민센터를 찾아갔다. 직원은 아이 엄마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더니, 출생신고를 못 한다고 했다. 구청에선 되지 않을까 싶어 며칠 뒤 구청에 찾아갔다. 직원은 법원에 문의해보라고 했다. 한겨울에 갓난아기를 데리고 다니기 힘들어 법원 상담전화를 걸었다. 알아보고 전화를 주겠다던 상담원은 결국 엄마가 해야 한다며 안 된다고 했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지역마다 미혼모센터는 있던데, 미혼부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 흔한 인터넷 카페도 없더군요.” 그래서 미혼모센터에 전화했지만 뾰족한 답을 얻지 못했다. 변호사 무료 상담전화를 수없이 두드렸다. 그러던 중 한 변호사가 ‘사랑이법이라는 게 있다’고 알려줬다.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용주씨는 국선변호사의 도움으로 법원에 ‘친생자 출생신고를 위한 확인 신청’을 했다. 아이 엄마의 인적 사항을 모르는 이유를 소명해야 했다. 어떻게 만났는지, 결혼은 왜 안 했는지, 왜 헤어졌는지, 왜 붙잡지 못했는지, 왜 지금 연락이 안 되는지 등을 최대한 자세히 적어내야 한다. 보정명령을 받으면 자꾸 시간만 늦춰진다. 아이의 특별대리인 선임을 신청하고 허가를 받았고, 유전자 검사를 해 결과를 제출했다. 출생신고의 법정 기한은 생후 1개월인데, 이런 절차를 거치는 데만도 최소 두세 달이 걸린다. 용주씨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호진이(가명)가 생후 8개월 때 법원 허가를 받았다. 친생자 출생신고 확인은 서류만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판사가 직접 방으로 불러 이것저것 물어봤다. “제 자식이고 상황이 이런데, 나라에서 아이 낳아 키우라고 하면서 출생신고를 못 한다는 게 진짜 이상하지 않냐고 말씀드렸죠. 솔직히 엄마 이름을 알고 있었는데 안다고 못 했어요. 판사님도 그걸 알면서 넘어가주신 것 같았어요.”

2015년 11월19일 시행된 사랑이법은 ‘모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신고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법원의 해석이 엇갈린다. 엄마의 인적 사항 세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알고 있으면 사랑이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2016년 서울동부지법)하기도 하고, 일부를 알고 있더라도 엄마를 특정할 수 없으면 적용 대상이라고 판결(2019년 대전가정법원)하기도 한다.

미혼부 김지환씨는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아빠의 품’(아품)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미혼부 등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함께 키즈카페에 가거나 여행을 떠나 기쁨도 나누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도 나눈다. 아품 제공
미혼부 김지환씨는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아빠의 품’(아품)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미혼부 등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함께 키즈카페에 가거나 여행을 떠나 기쁨도 나누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도 나눈다. 아품 제공

일반적으로 용주씨처럼 아이 엄마의 이름은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법원이 엄마의 이름, 주소, 주민번호 세 가지 전부를 몰라야 한다고 해석하면 미혼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다. 재단법인 ‘동천’ 엔피오(NPO)법센터는 2018년 한 미혼부의 출생신고를 돕기 위해 나섰다. 이미 아이 아빠 혼자서 두 번이나 사랑이법으로 신청을 했지만 기각된 터였다. 병원에서 받은 출생증명서를 제출한 게 발목을 잡고 있었다. 출생증명서에는 엄마의 이름, 생년월일 등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 법센터는 법원의 직권 허가를 요청하는 한편, 아이 엄마를 찾아 나섰다. 출생증명서에 나온 주소의 관할 주민센터에 공문을 보내 신분 조회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름과 주소지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했다. 경찰에 엄마를 아동복지법 위반(방임) 혐의로 수사 의뢰까지 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러 아이는 30개월이 됐고, 법원의 기각 판결이 내려졌다. 다행히 엄마를 찾았고 엄마가 출생신고를 해주었지만, 법률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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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16개월 아들 노을이 아빠

아이 엄마를 모른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건 출생신고가 민법의 ‘친생 추정’ 조항(제844조)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하고, ‘혼인 관계가 종료된 날부터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녀는 혼인 중에 임신한 것으로 추정’한다. 아이 엄마가 법적으로 혼인 상태라면, 아이는 친아빠가 따로 있어도 엄마의 현재 남편의 친자식이라는 추정을 받는다. 친아빠인 미혼부가 아이를 실제로 양육하고 있는데도 엄마의 남편인 ‘법률상 아빠’에게 등록된다. 그리고 지환씨보다 더 복잡한 소송을 해야 한다.

현재 16개월이 된 노을이(가명)의 출생신고를 위한 소송은 지난해 1월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시작했다. 아이 울음소리가 밤새 그치지 않았다며 이웃이 신고해 경찰과 주민센터, 아동보호기관이 찾아가 보니 아빠 혼자 아기를 키우고 있었다. 아이는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았고, 김영환(44·서울)씨는 아이를 돌보느라 일을 하지 못해 경제적으로도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영환씨는 주민센터에 가보았지만 ‘엄마를 찾아오라’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계속 밀리는 월세와 공과금 고지서를 보며 차라리 노을이를 입양 보낼까 생각도 했지만, 방긋방긋 웃는 아기를 떠나보낼 수 없었다고 했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여러 단체로부터 반찬과 기저귀, 분유 등을 후원받아 생활하면서 사랑이법으로 출생신고를 시도했으나 기각됐다. 출생증명서가 있었고, 더군다나 엄마에게는 법적 남편이 있었다. 결국 노을이는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법적 아빠’로부터 친생 추정을 끊어내는 소송을 하고 있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가 나서 친생자 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데, 재판의 속도는 아이가 자라는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공익법센터 김도희 변호사는 “소장을 낸 지 다섯 달이 지났는데 아직 서류 송달조차 되지 않았다”며 “유전자 검사로 친아빠인 게 밝혀졌지만, 법적으로 친생 추정을 받는 아빠의 협조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 소송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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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기본권 침해와 미혼부의 고통

노을이는 계속 법적 이름도, 주민등록번호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출생신고라는 기본 권리를 받지 못한 아이는 의료와 복지, 교육권 등을 제대로 누리기 어렵다. 건강보험의 경우 병원에서 ‘신생아로서 건강보험증에 등재 확인을 받지 못한 경우’로 처리할 수 있으나, 생후 12개월까지만 적용된다.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되거나 알 수 없는 노숙자나 유기 아동 등에게 부여되는 사회복지전산관리번호를 받으면, 보육료와 양육수당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절차를 알고 실제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 영환씨는 “미혼부가 주민센터에 사회복지전산관리번호를 신청하러 갔는데 공무원이 잘 모르겠다며 되돌려 보내거나, 있지도 않은 출생증명서를 가지고 오라는 경우도 있었다. 신청한 뒤 번호를 받기까지 짧게는 4주, 길게는 6개월이 걸린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취학 대상 어린이가 예비소집일에 나오지 않으면 교육 당국과 경찰이 학대 여부를 확인하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는 취학통지서를 아예 받지 못한다. ‘출생신고 의무자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자녀의 복리가 위태롭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는 가족관계등록법 조항(제46조 4항)이 있지만, 아동학대 등 예외적인 경우에 적용될 뿐이다. 사랑이법 시행 이후 지난해까지 미혼부가 법원에 신청한 ‘친생자 출생을 위한 확인’은 690건 가운데 457건이 허가됐고, 129건은 기각됐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들이 얼마나 존재하고 있는지는 이 수치로도 알 수 없다. 부모가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는 물론, 아빠가 실제로 키우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혼부 김지환씨는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아빠의 품’(아품)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미혼부 등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함께 키즈카페에 가거나 여행을 떠나 기쁨도 나누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도 나눈다. 아품 제공
미혼부 김지환씨는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아빠의 품’(아품)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미혼부 등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함께 키즈카페에 가거나 여행을 떠나 기쁨도 나누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도 나눈다. 아품 제공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홀로 키우는 아빠는 얼마나 될까. 통계청 2017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를 보면, 8424명이다. 결혼하지 않은 엄마 2만2065명의 3분의 1 수준이다. 미혼 아빠가 키우는 자녀는 1만명, 미혼 엄마가 키우는 자녀는 2만6천여명으로 나타났다. 미혼부의 나이는 40대가 44.8%로 가장 많고, 30대 25.6%, 50대 이상 21.4%, 20대 8.1% 순이었다. 10살 미만의 어린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42.8%다. 미혼부들은 경제적·심리적 어려움과 함께 사회적 편견과 정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지환씨 역시 ‘남자가 어떻게 아이를 혼자 키우냐’ ‘아이가 제대로 크겠냐’ ‘고아원에 보내고 돈을 번 뒤 다시 데려와라’는 얘기를 들었다. 정작 자신은 “당연히 길러야 하는 거고, 기를지 말지가 아니라 어떻게 잘 기를까를 고민”했는데 말이다.

용주씨는 오전 8시에 호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한다. 다행히 가족과 교회의 도움을 받고 있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손 내밀 이들이 없다면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장담하기 어렵다. 저녁 6시에 호진이를 데려와 저녁을 해 먹이고 놀아주다 씻기고 재우는데, “아이를 유튜브가 키우는 것 같아” 걱정이다.

“출생신고를 간신히 마친 뒤 여성가족부, 주민센터, 미혼모센터 등등 여기저기에 육아에 필요한 정보나 지원을 알아봤어요. 미혼부에 대한 지원은 따로 있지도 않고, 찾기가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여성들이 받는 지원을 나는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봤어요. 미혼모나 미혼부나 아이를 혼자 키운다는 점은 똑같잖아요. 그런데 한 공무원이 ‘당신은 남자니까 미혼모보다 경제력이 괜찮지 않냐’고 하기에 그 이후론 전화하지 않았어요. 사회적 편견이 없다고 할 수 없죠. 저 혼자 키운다고 하면 다들 ‘엄마 도망갔냐’는 질문부터 해요.”

한부모 가족 시설(2019년 말 기준)은 전국에 124곳 있는데, 미혼모자 시설이 64곳, 모자 시설이 47곳, 쉼터(가정폭력)가 10곳이고, 부자 시설은 3곳뿐이다. 지환씨는 “6살 아이를 키우는 한 40대 미혼부가 주민센터에 긴급위기지원 서비스를 신청하러 갔다가 도저히 못 들어가겠다고 전화를 했다. 아이를 생각해서 자존심을 버리라고 했다”며 “미혼부인 걸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이들도 많고, 아이와 정서적 교감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우울증을 겪는 이도 있다. 이들이 아이를 안전하게 잘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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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행복과 다짐

이들 미혼부 셋은 아이를 보면 저절로 ‘아빠 미소’가 떠오르고(영환씨), 두 돌이 넘었는데 왜 말이 늘지 않는지 괜한 조바심이 들기도 하고(용주씨), 조금만 더 돌리면 번번이 툭 끊어지는 머리끈이 야속한(지환씨) 평범한 아빠들이다. ‘아빠의 자격’은 법이 아니라 아이를 자신의 품속에서 키워내는 시간이 주는 게 아닐까.

몸도 마음도 아팠던 영환씨는 최근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건설 현장 임시직이지만, 일하게 되어 다행이다. “아이를 보고 있으면 힘들고 초라해진 게 다 잊혀요. 하루하루 크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세상에 이렇게 예쁜 게 있나 싶어요. 조금이라도 풍족하게 키우고 싶죠.” 영환씨는 건설 현장에서 돈을 잘 벌던 시절에 어려운 이웃의 사연을 전하는 방송프로그램을 보면서 기부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그런 삶을 살고 싶고, 열심히 살고 싶다”고 했다.

알음알음 미혼부 돕는 활동을 해오던 지환씨는 지난해 6월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아빠의 품’(약칭 ‘아품’·한국미혼부가정지원협회 koreasinglefather.modoo.at)이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2018년 5월 경북지역 한 원룸에서 20대 아빠와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16개월 정도의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뉴스를 듣고 결심했다. 미혼부, 미혼모 가릴 것 없이 한부모 가정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서로 심리 상태를 보살피고, 두 달에 한 번 정도 짧은 여행을 함께 가기도 한다. 사랑이 키우는 걸 결사반대했던 부모님도 이런 아들의 모습에 마음을 다시 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죽이지 않고 먹여 살리는 아빠’가 목표였어요. 그다음은 ‘가난하지만 열심히 사는 아빠’였고요. 그런데 다른 미혼부들을 돕다 보니 저한테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사랑이한테 경제적인 무언가를 물려줄 가능성은 거의 없잖아요?(웃음) 그래서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듣는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돈을 잘 벌었을 때 1~2만원짜리 정기후원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남을 돕는 건 자기 형편이 넉넉할 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지환씨에게 남은 어려운 숙제는 ‘엄마 얘기’다. 지난해 6월 어린이집 교사가 전화했다. 사랑이가 전날 친구와 ‘넌 엄마가 머리 안 묶어주냐’ ‘난 엄마 없어’ ‘엄마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말을 주고받다가 펑펑 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는 집에 와서 아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 스스로 엄마가 왜 없지, 누구지 하는 질문을 계속 반복하고 있을 텐데, 그 마음을 놓쳤다는 게 충격이었어요. 한계를 느낀 부분이에요. 아이는 그런 고민을 앞으로도 계속할 테고, 내가 아이의 아픔을 없앨 수는 없지만 덜 아프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

용주씨도 “아이가 커서 엄마에 관해 물어보면 뭐라고 답을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고 했다. 지금은 일하면서 육아하는 것만도 너무 정신이 없지만, 언젠가는 닥칠 질문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사는 건지도 모른다.

“아이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수 있었어요. 그동안 나만 생각하고 살았다면 내 아이를 위한 삶을 설계하면서 같이 꿈을 꾼다는 느낌, 난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요. 아이가 나를 자꾸 아빠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내가 살면서 실패했던 부분을 깨달아가며 아이한테는 그 부분을 채워주고 싶어요. 날 아빠로 만들어준 녀석인 만큼 최선을 다해 지키고 싶고, 좋은 아빠가 되도록 언제나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부모 사연 따지지 말고, 아이의 관점에서

아동인권단체들은 출생신고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신고’라고 한다. 존재를 공적으로 인정받고, 국가와 사회가 보장하는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7조는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우리나라는 출생신고를 부모 등의 신고에 의존한다. 태어난 지 1개월 안에 해야 하는데, 이를 넘겨도 과태료(최대 5만원)만 내면 된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일부러 하지 않으면 아이는 ‘유령’이 된다. 한편으로는 법적·제도적 한계 탓에 출생신고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이들이 있다. 미혼부와 이주민·난민·외국인 등이다.

특히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는 민법 제844조(친생 추정 조항)는 미혼부의 출생신고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해왔다. 남성 ㄱ씨와 법적으로 부부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 ㄴ씨가 다른 남성 ㄷ씨와 혼외 자녀를 가졌을 경우, 엄마인 ㄴ씨나 법률상 아빠인 ㄱ씨가 제기한 친생 부인(혼인 중 출생자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소송)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는 친아빠인 ㄷ씨가 실제 아이를 기르고 있더라도 법적으로 부자 관계를 맺을 수 없다.

1960년 제정된 이 조항은 ‘자녀가 태어남과 동시에 법적 지위를 신속하게 안정시켜 자녀의 복리를 보호하자’는 입법 취지를 갖고 있으며, 부자 관계를 정확히 증명할 수 없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부자 관계 증명이 쉬워진데다 미혼부가 친자녀를 키우는 상황이므로, 이 조항은 새로운 가족관계를 반영하지 못해 불합리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혼부의 자녀가 설령 친생 추정을 받는 자녀라고 해도, 이미 친아빠의 양육과 보호를 받고 있고 법적 아빠와는 아무런 사회적 관계도 형성돼 있지 않다. 실질적으로 보호해야 할 법익은 미혼부와 자녀 쪽에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기존에는 출생신고가 아이를 ‘호적에 올린다’는 개념이었을 뿐 아동 인권과 직접 결부된 것이라는 개념이 희박했다”며 “부모의 사정보다는 아동 인권 관점에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빠가 누구인지를 따지느라 아이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상황이 지속돼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당장은 ‘사랑이법’(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2항)을 개정해 ‘엄마의 인적 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라는 요건을 완화하고, 법원이 완화한 해석을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 11월19일 시행된 이 법은 ‘모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신고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현재 국회에는 혼외자의 출생신고 의무자에 아빠를 포함하거나, 엄마의 인적 사항을 일부 알더라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여럿 계류돼 있다.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유전자 검사 간소화도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친생 추정 등 민법 조항과 충돌하는 문제를 해소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친생 관련 소송이 제기돼 법적 관계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단 부모를 쓰지 않은 채 출생신고를 신청해 등록하고, 이후 법원에 의해 친생 확인이 이뤄지면 보완하거나 직권으로 정정하는 식으로 절차를 개선하자는 얘기다.

근본적으로는 아동이 ‘출생 즉시 등록’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아동인권단체들은 ‘출생통보제’ ‘출생자동등록제’ 등을 대안으로 제시해왔다. 미국과 캐나다는 부모의 신고 이전에 의료기관 등이 관계 기관에 출생 통보를 하도록 한다. 독일은 부모와 의료기관 양쪽에 신고 의무를 부여한다. 영국은 출생신고 절차와 별도로 병원 등록 시스템을 통해 의료보장번호를 발급한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유니세프)는 2011년 한국 정부에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출생등록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5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면서 ‘누락 없는 출생신고’를 위해 ‘출생통보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시간이다. 출생신고가 늦으면 늦을수록 아이의 권리는 더 많이 침해당한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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