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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죽음의 해시태그 놀이가 만든 디스토피아

등록 2020-03-14 09:59수정 2020-03-14 10:05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미움받는 사람들>

영국 런던 일간지 칼럼니스트 조 파워스(엘리자베스 베링턴)가 시신으로 발견된다. 널리 존경받는 장애인 인권운동가를 향한 악의적인 기사로 악명이 높아진 조 파워스는 사망 당일에도 댓글 테러에 시달리고 있었다. 다음 날에는 유명 래퍼 터스크(찰스 바발롤라)가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터스크 역시 공개 방송에서 자신의 어린이 팬을 모욕한 일로 엄청난 비난을 받던 상태였다. 담당 형사 카린 파크(켈리 맥도널드)와 블루 콜슨(페이 마세이)은 두 사망 사건이 모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행하는 ‘죽음의 해시태그’ 놀이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드라마 <블랙 미러>(원제 ‘Black Mirror’)는 첨단기술로 무장한 가까운 미래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그리는 에스에프(SF) 시리즈이지만, 사실 현대 사회의 그늘을 더 뚜렷하게 비춘다. 계급 양극화, 인종 차별, 젠더 차별, 난민 증가, 인간 소외 등 시리즈가 다루는 사회문제들은 지금 우리 옆에 있고, 기술은 그 병폐를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뿐이다. <블랙 미러> 시즌3의 여섯번째 에피소드 ‘미움받는 사람들’(원제 ‘Hated in the Nation’)은 시리즈의 이 같은 주제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야기다.

“인터넷에선 늘 씹어댈 사람을 찾잖아.” 카린 파크 형사의 말대로 온라인상의 언어폭력, 혐오 표현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로 인해 고통을 겪고 목숨까지 버리는 사람들이 존재함에도 대다수가 온라인 증오는 반쪽짜리라고 가볍게 여긴다는 데 있다. 극 중에서 조 파워스에게 욕설 케이크를 보냈다가 조사 대상이 된 한 교사의 말에도 이러한 인식이 잘 나타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에는 자신의 행위가 ‘기레기’ 조 파워스에 대한 정당한 ‘표현의 자유’ 행사이며 범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의문의 연쇄 사망 사건 중심에 놓인 ‘온라인 비호감 뽑기 대회’, 일명 죽음의 해시태그 놀이는 사람들의 마비된 윤리의식과 무책임한 태도가 이를 방관하고 부추기기까지 하는 플랫폼과 만나 얼마나 악화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사망 사건과 해시태그의 연관성이 알려진 뒤에도 참여자들의 반응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수만명이 공감하고 동의한 ‘그냥 놀이’일 뿐이고, 더 나가 ‘죽어도 싼’ 사람을 없애는 일종의 ‘정의로운 심판’과 다름없다.

기술의 발달은 인류에게 클릭 한번으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편의를 선사했지만, 동시에 그것이 윤리적인 활용인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단축해버렸다. 세계적인 재난 상황을 맞아 또 하나의 국경 없는 세계 온라인에서 확산하는 혐오가 더 큰 재난으로 다가오는 요즈음 ‘미움받는 사람들’의 비판의식은 새삼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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