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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겹겹의 문 안에 최초의 괴물이 있었다

등록 2020-03-28 11:43수정 2020-03-28 11:45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킹덤’

조선의 왕(윤세웅)이 두창(천연두)으로 쓰러진 지 열흘째, 왕의 처소 강녕전의 문은 굳게 닫혀 열릴 줄 모른다. 겹겹의 문으로 둘러싸인 그 침소에서는 왕의 기척 대신 짐승의 소리와 악취가 새어 나온다. 급기야 온 나라에는 왕이 죽었다는 괴소문이 나돈다. “전하의 침소는 절대 엿봐서는 안 된다.” 강녕전의 비밀을 아는 전임 어의 이승희(권범택) 의원이 주의를 시켰음에도, 금기를 어긴 어린 조수 단이(김현빈)는 왕의 제물이 되고 만다.

넷플릭스 최초의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은 구중궁궐에서도 가장 깊숙한 왕의 처소에서 일어난 잔혹한 살인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밤마다 강녕전에서 비명이 끊이지 않는데 왕실을 장악한 해원 조씨의 수장 영의정 조학주(류승룡)는 이 사실을 철저히 은폐한다. 그사이 왕의 괴질은 조선 땅끝의 병들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옮겨붙어 더 큰 비극으로 번진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단이의 인육을 먹고 난 뒤, 병증이 끔찍한 역병으로 뒤바뀐 것이다. ‘생사역’이라 불리는 역병 환자들은 산 자의 피와 살을 탐하는 괴물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킨다.

이른바 ‘코로나 시국’에서 <킹덤>의 시사점이 있다면 이 감염 재난물로서의 성격일 것이다. 감염 재난물의 핵심은 격리와 봉쇄의 모티브다. 감염의 특성상 타인과의 거리 유지가 권장되고, 집단 감염이 일어난 지역은 국가 권력에 의해 봉쇄당하는 장면이 공통으로 등장한다. 문제는 그 통제가 혐오와 배제로 변질할 때 일어난다. <킹덤>의 탁월한 점은 이 같은 ‘변이’가 사회 취약계층을 향해 더 잘 일어난다는 사실을, 신분제 사회 조선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데 있다. 조학주가 “이 나라의 근간인 왕실과 종묘사직”을 지키기 위해 “미천한 백성들”이 사는 경상 땅의 관문을 가차 없이 봉쇄하는 장면이 그 단적인 사례다.

눈여겨볼 것은 ‘문’이라는 상징적 장치다. 문은 곧 계급의 상징이다. 영화 <설국열차>의 칸 같은 것이다. 구중궁궐 속의 왕과 대신들처럼 ‘높은 분’들일수록 자신들을 지켜줄 문이 많다. 시즌2 첫 회에는 한양의 양반들이 노비를 시켜 대문 밖에 소피를 발라 부적으로 사용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들은 바깥의 저 혐오스러운 “귀신”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꽁꽁 닫고 “이 안에만 있으면 안전하다”고 말한다. 문 앞에는 그들을 대신해 희생당할 노비들을 세워둔다. “난 그들과 다르다”고 외쳤던 세자 이창(주지훈)이 정말로 남달랐던 것은 끝까지 백성들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준 존재였다는 점이다.

감염 재난 시국에 배제의 논리는 쉽게 힘을 얻는다. 타국에 격리된 교민들을 데려오는 데에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코로나19 사각지대의 미등록 외국인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아예 비난의 대상이 된다. <킹덤>은 이 배제의 시대를 향해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가장 깊숙한 문 안쪽에 이미 괴물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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