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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조주빈과 ‘아동살해 모의’ 공익요원, 고교 담임교사 7년간 스토킹

등록 2020-03-29 18:17수정 2020-03-30 10:59

[강아무개씨, 2018년 상습협박 등 판결문 입수]

고등학교 담임이었던 여성 교사 7년 동안 스토킹
2013년 소년보호처분 받고도 계속 범행 저지른 뒤
2018년 수원지법서 1년2개월 가벼운 형에 그쳐
“스토킹 처벌법, 이번 국회서도 본회의 통과 못해”

자신의 담임교사였던 여성의 아이를 살해해달라며 텔레그램 성착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4)씨에게 400만원을 건넨 정황이 드러난 사회복무요원 출신 강아무개(24)씨가 피해자를 상대로 7년 동안 끔찍한 스토킹 범죄를 저질러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법원은 솜방망이 처벌을 했고, 출소한 강씨는 다시 사회복무요원 신분을 이용해 피해자와 가족들의 개인 정보를 캐낸 뒤 스토킹 범죄 등을 이어갔다.

29일 <한겨레>가 입수한 2018년 강씨의 상습협박 및 개인정보보호법위반 사건 판결문을 보면, 강씨는 2017년 12월23일 붉은색 사인펜으로 “죽이겠다. 나의 자살 또는 너의 학살”이라는 영어 문장을 피해자 ㄱ씨의 집 출입문에 써놓고 ㄱ씨의 ‘채용 건강 신체검사서’ 사진에 스테이플러 심을 여러 개 박은 뒤 집앞에 놓아뒀다. 또 “전화번호를 동시에 2개를 사용하더라도, 주민번호를 바꾸더라도, 차를 바꾸더라도, 배우자나 성별, 국적 그리고 외모까지 바꾸더라도 어디든지 쫓아갈 수 있다. 니들 자식○○는 토막 낼 거다” 등의 내용이 담긴 편지를 출입문에 붙여뒀다. 경찰에 신고하면 극단적 선택을 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강씨가 ㄱ씨의 ‘채용 건강 신체검사서’를 입수할 수 있었던 건 경기도의 한 병원 원무과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강씨는 범행 하루 전인 2017년 12월22일 이 병원 시스템에 ㄱ씨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 ㄱ씨가 이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사실을 알아내고 병원 지하 1층 보존서고에 보관 중이던 ㄱ씨의 ‘채용 건강 신체검사서’와 ‘종합건강검진문진표’를 복사해 유출했다.

강씨의 스토킹과 협박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16살이었던 2012년부터 ㄱ씨를 협박해 2013년 소년보호처분을 받았다. 강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2015년 11월30일 ㄱ씨에게 ‘타오르는 분노는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용기의 한계를 넘어섰고 마침내 내 목숨을 무기로 쓸 수 있게 되었지. 이 모욕감은 무덤까지 갖고 가다가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2017년 12월24일까지 모두 16차례에 걸쳐 협박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한겨레>가 입수한 문자메시지에는 ‘좀 있으면 도청이랑 카메라 해킹도 할 거니 기대하세요’, ‘살인청부를 고용하건 직접 그라인더를 들고 가건 다 갈아버릴 거니까’ 등의 끔찍한 내용이 담겼다. ㄱ씨 부모의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를 알아냈고, 역시 살해하겠다는 취지의 협박 문자메시지도 있었다.

하지만 수원지법은 2018년 3월30일 상습협박 등 혐의로 기소된 강씨에게 징역 1년2개월의 가벼운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협박의 내용이 매우 잔혹하여 피해자에게 극심한 공포심을 유하였을 것으로 보인다”며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했음에도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아스퍼거증후군으로 인한 정신병적 상태가 범행에 다소 영향을 미쳤다고 보인다”는 양형 이유를 댔다.

강씨는 반성하지 않고 출소 뒤에도 범행을 이어갔다. 지난해 3월3일 출소한 강씨는 한 구청 가정복지과에서 남은 사회복무요원 의무 복무기간을 보내면서 ㄱ씨의 개인정보를 다시 빼돌렸다. 강씨는 지난해 11월과 12월 ㄱ씨와 ㄱ씨의 남편, 자녀와 시어머니 등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휴대전화 번호를 조회했다. 이렇게 확보한 전화번호를 이용해 지난해 12월 ‘우리나라 법 좋네, 너 죽이면 5년이니까 니네 사돈에 팔촌까지 다 죽이고 심신미약으로 3년 살면 되겠지’ 등의 협박 문자메시지를 ㄱ씨에게 보냈다. 강씨는 지난 1월 살인예비 혐의 등으로 경찰에 구속됐고, 이후 검찰은 강씨에게 살인예비 대신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보복 협박 등)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ㄱ씨는 지난 2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박사방 회원 중 여아 살해 모의한 공익근무요원 신상공개를 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올렸다. ㄱ씨는 청원글에서 “피의자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제가 담임을 했던 저희 반 제자”라며 상세한 스토킹 범죄 사실을 적은 뒤 “개명도 하고 전화번호를 바꿔도 제 지인보다도 먼저 제 번호를 알아내어 도망갈 수가 없었다. 조주빈 뿐만 아니라 박사방 회원들과 강씨의 신상공개를 강력히 원한다”고 호소했다.

강씨의 사례는 스토킹 범죄에 관대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우선 법원은 이미 같은 피해자를 협박해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던 강씨에게 징역 1년2개월의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 개인정보를 빼돌려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강씨가 출소 이후 다시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에 접근하기 쉬운 구청 가정복지과에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해당 구청에 관련 내용이 통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 공백 속에서 ㄱ씨는 2012년부터 7년 동안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왔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인 서혜진 변호사는 “스토킹은 처벌할 마땅한 법률이 없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스토킹 자체가 누군가의 인생을 파괴하는 범죄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법원과 수사기관도 마찬가지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결국 처벌하려면 상습협박 등으로 우회해서 처벌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형량이 낮은 것이 현실이다. 스토킹 처벌법이 만들어야 하지만 이번 국회에서도 발의만 되고 결국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여성의 집에 침입하려던 씨씨티브이(CCTV) 영상이 공개돼 강간미수로 기소했지만 결국 무죄가 나온 ‘신림동 사건’의 경우 스토킹 방지법이 있었다면 처벌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법이 없어 수사기관이 기존에 있는 법을 가지고 여러 혐의를 조합해 기소하다 보니 제대로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스토킹은 여성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심각한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안일한 인식으로 아직 입법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고 비판했다.

정환봉 장예지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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