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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인권조례가 사라지고 있다…49개 지자체 7년 동안 71건 ‘철회’

등록 2020-04-03 05:00수정 2020-04-03 07:42

[차별금지법은 함께살기법] ④지자체 243곳 인권조례 전수조사
장애인·여성 등 9개 조례 보니
성평등 조례 242곳 제정 최다
아동·청소년 관련은 3곳 최저
인권조례 철회, 2012년 1→2019년 30건
‘성소수자 보호’ 조항 삭제
차별 금지 둔 지자체 11→8곳
조례에 ‘성적 지향’ 빠지기도
“법률에 차별 못하게 돼 있는데
하위 조례에서 빼는 건 잘못”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악시도 반대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해 시교육청이 입법예고한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의 내용을 반대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악시도 반대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해 시교육청이 입법예고한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의 내용을 반대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인권기본조례’ 제정을 권고한 지 8년이 지났지만, 전국 243개 지자체 가운데 권고를 이행한 곳은 116곳(47.7%)으로 절반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자체의 인권조례는 한국 사회 인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풀뿌리 차별금지법’으로도 꼽힌다.

2일 <한겨레>가 전국 243개 광역·기초단체에 △인권기본조례 △다문화 가족 지원 조례 △외국인 주민 인권 증진 조례 △장애인 차별금지 및 인권보장 조례 △성평등 관련 조례(성인지 예산 조례, 성별영향평가 조례, 성평등 기본 조례) △청소년 노동인권 보호 및 증진 조례 △민주시민교육조례 △아동·청소년 인권조례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조례 등 인권 관련 조례 9개의 제정 현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해 분석한 결과, 조례 9개를 모두 제정한 지자체는 서울시 1곳뿐인 것으로 조사됐다. 9개 인권조례 가운데 성 평등 관련 조례를 제정한 곳이 242곳으로 가장 많았고, 아동·청소년 인권조례를 제정한 지자체는 3곳뿐이었다. 243개 지자체는 9개 조례 가운데 평균 3.7개의 조례를 제정했다. 인권위가 인권기본조례 제정을 권고한 지 8년이 지났지만 전국 지자체 가운데 인권기본조례를 제정한 곳은 116곳(47.7%)으로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인권위가 표준안을 만들어 2012년 4월 지자체와 행정안전부에 재개정을 권고한 인권기본조례는 지자체가 지역 주민들의 인권 보호 및 증진 정책을 펼치고 모든 주민이 인간으로 존엄하게 대우받을 수 있는 지역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하는 조례다. 인권기본조례에는 △지자체장의 인권 보장 의무 △차별 금지 △인권 증진을 위한 각종 기구 운영 등의 내용이 담긴다. 지자체의 인권조례 제정 정도를 보면 입법에 난항을 겪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이 어떤지 살펴볼 수 있다. 이에 <한겨레>는 지난해 12월부터 석달 동안 전국 243개 광역·기초단체에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이를 일일이 받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지난 8년 동안 권고를 이행하려는 지자체와 지방의회의 시도들은 자주 벽에 부딪힌 사실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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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예고 뒤 철회된 인권조례, 2012년 1개→2019년 30개

가장 큰 문제는 각종 인권조례들이 지방의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철회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겨레>가 현황을 분석해보니, 2012년 이후 인권조례를 입법예고했다가 철회·보류한 지자체는 49곳에 이른다. 전체 지자체 중 20.1%에 해당한다. 이들 49개 지자체에서 철회된 인권조례는 모두 71건인데, 이런 사례는 최근 몇년 새 급격히 늘었다. 전체 71건 가운데 2012년엔 1건이 철회됐고 2013년·2014년에도 각각 3건이 철회됐지만, 2016년(7건)부터 철회 사례가 점차 늘기 시작해 2017년 10건, 2018년 6건을 찍고 지난해엔 30건까지 급증했다. 올해도 지난 2월까지 벌써 9개의 인권조례가 입법예고 뒤 철회·보류된 상태다.

이 현황만으로 본다면, 한국 사회에서 인권 지수는 지난 8년 동안 계속 후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일부 보수 개신교 단체를 중심으로 한 조직적 반대가 점점 거세진 탓이다. 이들은 관련 조례가 지자체에서 입법예고되면 전국적으로 반대 세력을 조직해 민원을 넣어 시정을 방해하거나 지방의원들에게 ‘문자·전화 테러’를 하고 있다. 실제 지자체가 정보공개청구에 응해 밝힌 인권조례 입법예고 철회 사유를 보면, 경기 동두천시나 충북 옥천군, 강원 속초시는 ‘다수의 반대 의견 수렴’을 이유로 들었고, 강원 강릉시, 경북 포항시, 부산 금정구와 동구는 발의한 의원의 철회가 있었다고 밝혔다. ‘조례 제정의 근거가 되는 상위 법령인 인권기본법이 없는 상태에서 조례를 제정하게 돼 자치단체의 역할에 대한 방향성이 결여됐다’는 이유를 든 지자체(경기 안산시)도 있었다.

애써 제정된 인권조례가 폐지됐던 사례도 있다. 충북 증평군의회는 2018년 5월 “소수의 인권 보장을 위해 다수의 인권을 역차별한다는 주민 여론이 있다”며 제정한 지 6개월 된 인권기본조례를 폐지했다. 충청남도의회도 같은 달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등 보수정당 도의원들의 주도로 인권기본조례를 폐지했다가 5개월 뒤 다시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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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동성애’…그들이 인권조례를 해석하는 방법

인권조례 조항 중 반대 단체의 표적이 되는 조항은 무엇일까. <한겨레>가 인권조례 제·개정을 논의한 지자체의 회의록을 분석해보니, 핵심 열쇳말은 ‘동성애’였다. ‘성적 지향’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다는 내용이나 성소수자 보호 조항을 명시해놓은 조례는 언제나 격렬한 보수 개신교 단체 중심의 반대 세력으로부터 손쉬운 표적이 됐다. 현행 지자체 인권조례 가운데 차별금지 사유를 열거하면서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거나 ‘성소수자 보호 조항’을 포함한 조례는 △서울특별시 은평구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 △대전광역시 동구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 △광주광역시 학생인권 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 등 8개 지자체의 11개 조례뿐이다. 이 현황 역시 6년 전보다 후퇴한 결과다. 2014년까지는 11개 지자체의 18개 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명시했지만 이후 7개 조례에서 차별금지 사유 중 ‘성적 지향’이라는 단어를 빼거나 ‘성소수자 보호 조항’을 삭제했다.

2016년 6월22일 부산시 북구는 ‘부산광역시 북구 인권증진 조례’를 일부 개정해 차별금지 사유에서 ‘성적 지향’이라는 단어만 삭제했다. 같은 달 2일 이 개정안을 심사한 부산시 북구 의회 기획총무위원회 회의록에는 보수 개신교 단체 중심의 반대 운동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회의록을 보면, “입법예고를 2016년 4월26일부터 5월15일까지 20일간 실시한 결과, 애초 민원을 제기한 단체인 부산동성애대책위원회 및 교회, 교인 등에서 ‘성적 지향’ 규정 삭제에 대한 찬성 의견이 49건 접수됐다”고 나온다. 이 개정안은 당시 출석 위원 6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아예 차별금지 사유를 열거하지 않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조례를 개정한 지자체도 있다. 경기 광명시는 2016년 ‘광명시 시민인권조례’를 ‘광명시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로 전부개정하면서 차별금지 사유를 열거했던 제6조(시민의 권리 및 책무) 내용을 ‘시민은 스스로가 인권이 존중되는 지역사회를 실현하는 주체라는 점을 인식하고 광명시의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한다’는 문장으로 바꿨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부)는 “법률(국가인권위원회법)에 이미 ‘성적 지향’을 포함해 차별금지 사유 19개를 나열했다. 법률에는 성적 지향으로 차별하면 안 된다고 나와 있는데 조례에서 빼면 자칫 성적 지향을 근거로 차별해도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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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공문 때문에 성소수자 보호조항 삭제?

정부, 특히 여성가족부의 지침 때문에 인권 보장을 후퇴시킨 인권조례도 있었다. 2015년 여가부는 대전시에 공문 하나를 보냈다. “양성평등기본법은 사회적 논의와 합의 등을 통해 사회 모든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와 책임, 참여 기회를 보장해 남녀가 함께 만드는 양성평등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한 법으로 성소수자와 관련된 개념이나 정책을 포함하거나 이를 규정하지 않고 있으므로 조례에서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규정하는 것은 양성평등기본법의 입법 취지를 벗어나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대전시는 이 공문을 받은 뒤 성평등 기본조례에서 ‘성적 지향’이라는 단어를 빼고 제22조에서 규정하고 있던 ‘성소수자 보호 조항’도 삭제했다. 그에 앞서 2015년 6월 ‘대전광역시 여성발전 기본조례’가 ‘대전광역시 성평등 기본조례’로 개정되면서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성소수자를 보호’한다는 내용이 신설된 지 넉달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 ‘양성평등’은 성별을 여성과 남성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구분으로 다양한 젠더를 포괄할 수 없어 차별적이라는 지적을 받는 용어다. 보수 개신교 단체들이 되레 “성평등은 성소수자도 평등하게 보다는 뜻이 담겨 있다”며 ‘성평등’ 용어 퇴출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 ‘전국 인권조례 실태조사’ 연구를 진행한 성소수자 인권단체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시우 활동가는 “(성평등 기본조례의 모법인) 양성평등기본법이 2015년 개정되면서 양성평등이 맞냐, 성평등이 맞냐는 용어 논쟁이 있었다. 당시 여성가족부가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양성’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한 뒤 이를 지자체 조례들이 반영하면서 성평등 기본조례에서 성소수자 보호 조항들이 빠지게 된 경우가 있다”며 “정부가 이 조례 관련 정책의 대상에 성소수자가 제외된다고 명확하게 얘기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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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에서 국제기준, 젠더로 넓어지는 공격

국제사회의 권고마저 성적 지향 등에 관한 언급이 담기면 수용되지 못했다. 서울 도봉구는 2018년 8월 ‘서울특별시 도봉구 인권기본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개정안 초안에 ‘제10조(인권지표 개발) 구청장은 구민의 인권보장 및 증진을 위해 국제인권 규약 및 국제인권기구의 권고사항의 성실한 이행을 위해 인권지표를 연구·개발할 수 있다’는 내용을 신설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열린 도봉구의회 회의록을 보면, 당시 도봉구 관계자는 “국제인권규약 및 국제인권기구 권고 내용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라든지 또는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도 차별금지법에 포함시키는 등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 다수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 집행부에서 수용했다”고 밝혔다. 결국 인권기본조례 개정안에선 ‘국제인권규약’이라는 단어가 삭제됐다.

공격의 대상은 성소수자를 넘어 ‘젠더’ 영역 전반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지난해 5월 경기 부천시는 ‘성평등 기본조례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성평등 정책을 전담하는 젠더전문관을 둔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그러나 입법예고 뒤 부천시기독교연합회를 중심으로 “젠더는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용어”라며 반대 운동이 벌어졌고, 입법예고 기간 중에 3천명 이상의 시민이 반대 의견을 보냈다. 이런 여론에 떠밀려 결국 젠더전문관은 성평등전문관으로, 성평등전문관은 양성평등전문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결국에는 전문관 신설 내용을 삭제하는 개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반대 세력의 무차별 공격이 이어지면서 이를 대변하는 기초의원들이 생겨나고, 결국 지자체가 이에 굴복하면서 인권이 후퇴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차별금지법 입법만이 이러한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시작점이라고 지적한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지역에서 인권조례 제정을 반대하는 이유의 공통분모가 바로 차별금지법 반대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인권조례 반대 세력의 중요 목표가 상실돼 인권조례를 가지고 반발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며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인권조례를 둘러싼 이런 소요가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연서 박다해 정환봉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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