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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생물학적 구분’이 연대의 토대? 페미니즘은 왜 ‘여성’의 범주를 묻는가

등록 2020-04-25 13:10수정 2020-06-07 19:35

[토요판] 기획
페미니즘 어디로 가는가? ①섹스, 젠더 그리고 생물학적 여성

페미니즘은 ‘여성’ 범주 재구성 역사
흑인 여성의 ‘저는 여자가 아닙니까?’
물음이 정치적 도전이 된 것처럼
새로운 ‘여성’들을 구성해온 작업

페미니즘 리부팅 후 ‘누가 여성인가’
생물학적 여성에 근거한 페미니즘 경향
트랜스젠더 여대 입학 논쟁으로 가시화
생물학적 환원주의 반대해온 이유
지난 2월6일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게시판에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환영하는 대자보(왼쪽)와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오른쪽)가 나란히 붙어 있다. 당시 트랜스젠더 여성의 합격 사실이 알려진 뒤 ‘누가 여성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연합뉴스
지난 2월6일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게시판에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환영하는 대자보(왼쪽)와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오른쪽)가 나란히 붙어 있다. 당시 트랜스젠더 여성의 합격 사실이 알려진 뒤 ‘누가 여성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연합뉴스

한국의 페미니즘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강남역 사건 이후 등장한 새로운 페미니즘 흐름 앞에 던져진 질문이다. 페미니즘들 사이의 입장 차이는 점점 분명해지고 있지만 비판적 논의는 사실상 침묵 속에 있었다. 페미니스트 연구자 김은실, 권김현영, 김영옥, 손희정, 이현재가 연속 기고로 답한다. 첫 글을 쓴 김은실은 페미니즘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글을 시작한다.

어느 날 여성학을 연계 전공하는 대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다. “나이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하시는지요? 강남역 사건 이후에 등장한 영영(young young)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이나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나는 “그들도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들이 소위 페미니즘 리부팅판을 깰까 봐 아주 조심하고 있단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페미니스트들이 ‘여성계’라는 판을 깰까 봐 논쟁이 필요한 이슈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지금 한국 페미니즘의 곤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들의 개입과 논쟁이 필요하다는 맥락에서 이 글을 시작한다.

첨예해진 ‘누가 여성인가’ 문제

한국 사회에서 ‘누가 여성인가’라는 질문은 너무 자명하므로, 대개는 물으나 마나 한 질문이거나 혹은 질문을 위한 질문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여성에게 자원이 분배되기 시작하거나 성원권과 권리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누가 여성인가’의 문제는 첨예해진다. 그리고 여성을 둘러싼 포함과 배제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누가 여성인가는 ‘여성’이 문제가 되는 시점에서 이슈가 된다.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여성 후보가 공천되는 선거 시즌에, 누가 ‘여성’의 대표로 등장하는가? 여성이 사회구조의 피해자로 호명될 때 누가 자신을 여성으로 동일시하고, 누가 피해자로서의 여성 범주에 속하기를 거부하는가?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자대학에 입학할 때 혹은 유명한 남성의 부인이 남성 집단의 힘으로 ‘여성 티켓’을 쥐게 되었을 때 누가 여성인가? 이처럼 누가 여성인가는 말해지는 맥락에 따라 다르다. 평소에 여성이 되길 거부하던 여성도 권력 집단에 진입하기 위해 소수자로서 여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여성’은 아주 정치적이고 다루기 어려운 주제가 되고 있다.

노예였다가 해방된 노예 폐지론자이며 미국의 흑인 여성 인권운동가였던 소저너 트루스는 1880년대에 “저는 여자가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백인 중산층 여성만이 “레이디”가 되는 인종차별주의 사회에서 노예이며 흑인인 여성은 ‘여성’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남성과 같이 노동하는 근육으로 스스로 생존하는 흑인 여성인 소저너 트루스가 자신이 여자인지를 질문하는 순간, 백인 남자와 흑인 남자 그리고 백인 여성은 여성 개념에 대해 판단 정지 상태에 빠진다. 이는 여성에 대한 그들의 기존 인식이 도전받은 정치적 순간이다.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에 대한 개념을 계속 변화시켜온 역사이고, ‘여성’에게 부가되어온 의미와 역할을 해체하고, 새로운 의미로 ‘여성’ 범주를 확대하고 재구성해온 역사이다. ‘여성’은 자명한 범주가 아니다. 특정한 국면에서 의미와 권력관계를 발생시키면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범주로 ‘여성’은 구축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역사를 쓰고, 여성을 가시화시켜온 업적은 결국 가부장적 규범에서 만들어진 규범적 여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여성’들을 구성해내는 작업이었다. ‘페미니스트’ 역시 규범적 여성과는 구별되는 성차별에 대한 정치적 자각을 한 여성에 대한 호칭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위치를 변화시키고, 성차별을 종식시키고자 하는 과정에서 여성을 아직 도래하지 않은 새로운 ‘여성’, 새로운 젠더관계를 모색하고 구상하는 주체로 범주화해왔고, 이러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개념들을 만들어왔다.

섹스, 젠더, 몸

대학이나 일반 사회교육 기관에서 행해지는 여성학 강의에서, 가장 먼저 소개하는 개념이 섹스와 젠더일 것이다. 페미니즘의 사전적인 의미에서 섹스는 생물학적인 차이로서의 여자와 남자, 젠더는 사회·문화·역사적으로 정의되는 여성(성)과 남성(성)이라고 정의된다. 단순한 자연적 차이를 지닌 여자와 남자는 특정한 사회문화 속에서 소녀와 소년이 되고, 여학생과 남학생이 되고, 아내와 남편이 되고, 어머니와 아버지, 노총각과 비혼녀 등이 되는 과정을 겪는다.

그 과정은 남자와 여자에게 기존 사회문화가 부과하는 규범으로서의 여성성과 남성성이 몸에 체현되는 과정이고, 여기서 만들어지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젠더이다. 단순히 생물학적인 차이라고 간주되는 섹스와 달리, 젠더는 특정한 사회 내에서 규범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여자와 남자는 몸으로 일상을 살아내면서, 그 사회의 규범을 몸에 각인하고 몸적 실천 혹은 수행을 통해 규범화된 젠더를 정상화 그리고 ‘자연화’한다.

한국에서 남성과 여성의 범주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학술적인 논쟁이 아니라, 매일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논쟁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여성정책이 양성평등 정책인지 성평등 정책인지의 문제는 매우 첨예한 논쟁거리다. 양성평등은 젠더평등(gender equality)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정부의 공무원들을 위해, 2005년에 여성가족부가 고안한 용어이다. 그 당시 페미니스트들은 이 용어가 젠더의 의미를 탈각시키고 있고, 또 양성을 생물학적 성차로 등치시킬 오용 가능성 때문에 채택을 비판했음에도, 남성과 여성 간의 평등을 언급하는 개념으로 공표되었다. 그리고 이 용어는 2014년 ‘여성발전기본법’이 개정되는 과정에서 ‘성평등기본법’안을 제치고 정책언어로 채택되어 ‘양성평등기본법’으로 공식화된다.

페미니스트들은 양성평등이라는 정책언어가 남녀의 불평등한 권력의 문제를 다루는 전환적인 틀이 되기가 어렵고, 남성과 여성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거나 혹은 그러한 구별을 혼란시키는 성별 등은 논의에서 배제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성평등의 담론적 효과는 이원론에 입각하여 남성과 여성만을 구분하여 성차와 젠더를 동일시하게 되고, 정책으로서의 양성평등의 주 업무는 이미 과잉 대표되었거나 과소 대표되어 있는 기존 정책의 성별 불균형만을 조정하는 데 초점을 둘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은 현실이 되고 있다.

최근 여자대학에 입학한 트랜스젠더 여성을 ‘여성’의 범위에 포함시켜 여자 대학생으로 여대에서 수학할 수 있게 할 것인지 아니면, 그녀가 원래 ‘남성’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순수한 여성’이 아니므로 여대에 진학할 수 없는 것인지를 둘러싸고도 논쟁이 많았다. 그녀는 여대의 진학을 포기했지만, 무엇이 여자가 되는 기준인가, 누가 ‘여자’인가라는 질문을 우리 사회에 제기했다. 트랜스젠더 여성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원적 구별만이 제도로 존재하는 곳에서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여대의 공간은 ‘여자’를 어떻게 정의해내는 곳인가라는 질문 또한 제기했다.

한국 페미니즘의 곤경

“양성평등” 정책과 트랜스젠더 이슈는 한국 사회에서 젠더로서의 ‘여성’이 구축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들 그리고 새로운 젠더 관계의 영역들이 끊임없이 생물학적, 자연적 그리고 규범적이라는 담론, 제도, 권력들에 의해 간섭되고 규제되고 또 제한되는 것을 보여준다. 생물학적 성차 담론은 여성의 범주를 논하는 데 가장 큰 규제 권력이다. 1970년대 서구에서 제2의 물결 페미니스트들은 남성과 여성의 성별 위계를 설명할 때 생물학적 환원주의로 빠지는 것을 가장 우려했다. 왜냐하면 불평등과 종속이 생물학적 성차에 기인한다는 본질주의적인 접근은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방식으로 여성 주체를 구성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2015년 한국 사회에서 소위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등장한 치열한 영(영)페미니스트 운동 세력의 일부는 여성 연대의 기초를 ‘생물학적 여성’에 둔다. 그래서 생물학적 여성들이 경험하는 개인적 현실이 중요하고, 거기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다. 생물학적 여성이 아닌 사람들은 여성이 살아온 고통이나 피해, 사유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트랜스젠더 여성의 대학 입학 사건에 관여하는 그들의 논리 역시 평등, 자유 혹은 정의라는 개념보다는 여성이 누구인지에 대한 경험을 중시한다. 이런 맥락에서 섹스와 별개로 구성되는 젠더 역시 생물학적 여성 고유의 경험과 인식주체로서의 여성을 지우기 때문에 반대한다.

여성운동이 생물학적 여성에 기반한다는 말은 이제까지 여성운동이 추구해온 방향에서 볼 때 많은 질문이 생기는 말이다. 운동의 주체가 동일성을 지닌 생물학적 여성이 되면 더 통합적이고 집합적인 운동의 주체가 되는가? 생물학적 여성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성기가 여성을 설명하는 가장 중심적인 기준인가? 성기가 핵심이 될 때 그 상징성과 문화적 의미는 기원이 생물학에 있는가, 아니면 사회문화적인 것에 있는가? 여성 생물학의 문화적 사회적 구성 내용을 없애면 순수한 자연적 차이만을 지닌 남자와 여자가 남는가? 그 관계는 평등한가 아니면 지배적인 남자와 피해자로서의 여자 관계인가?

생물학적 여성과 남성이라는 말은 사람들로 하여금 남녀의 문제가 사회정치적인 문제라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그래서 여자와 남자의 관계는 자연의 종과 유사성을 공유하고, 현재의 섹슈얼리티라는 것도 남녀의 존재론적 차이에 의해 발현되는 자연이고 본능이라는 논리에 기대어 현재의 젠더관계 자연성을 주장하고 싶어한다.

이전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은 사회가 그리고 문화가 여성들을 생물학적 신체 부위로 환원시키는 것, 생물학적 여성 담론이 여성들이 구축한 역사성과 정치성을 삭제하는 것 등을 비판해왔다. 그리고 생물학적 여성이란 말이 여성을 자연화·본질화시키면서 여성 간의 차이를 무화시키고, 차이를 구축하는 계급, 인종, 섹슈얼리티, 나이 등이 만들어내는 여성 경험의 다양성과 가능성 그리고 여성들이 차이를 정치적인 의제로 만들어온 역사를 박탈한다고 비판해왔다.

생물학적 여성 연대가 여성 범주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토대는 아니다. ‘여성’ 범주를 생산해온 페미니즘의 역사는 여성 범주의 생산이 생물학적 몸의 토대 위에서가 아니라, 젠더구조와 사회의 다른 지배 구조들이 맞물리면서 새로운 ‘여성’이 구성되어왔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서 그 시대의 제도나 이데올로기 체계의 의미망 속에서 태어나고 살아가기 때문에, 의미와 가치가 완전히 지워진 세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역사, 사회 속에 존재하는 특정한 관계의 양상들, 즉 제도의 모습을 변화시키면서 여성과 남성의 관계, 젠더의 관계 양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페미니스트 주체들이 생산되는 정치적인 장을 창조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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