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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나쁜 여자’ 아니라 세상에 도전하는 ‘나쁜 페미니스트’ 되길

등록 2020-06-07 09:31수정 2020-06-07 19:34

[토요판] 기획
페미니즘 어디로 가는가? ⑤‘나쁜 페미니스트’의 정치학

당대의 통념에 저항한 페미니스트
마녀로 불리거나 도덕적 비난 받아
신여성부터 한국에서도 예외 아냐

‘희생양 논리’에 기반한 가부장제
나쁜 페미니스트는 희생양 틀 두고
자신의 위치만 역전시킨 전략 반대

구조변화 없이 여성의 파이 되찾는
성공에만 관심 큰 ‘나쁜 여자’ 담론
다른 여성 희생에 눈감는 한계 명확
페미니스트들은 세상의 질서를 바꾸기 위해 손가락질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최근의 낙태죄 폐지운동을 두고도 페미니스트를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여성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시대의 규범을 뒤흔들기로 작정한 페미니스트들은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았다. 2019년 3월8일 낙태죄 폐지 기자회견.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페미니스트들은 세상의 질서를 바꾸기 위해 손가락질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최근의 낙태죄 폐지운동을 두고도 페미니스트를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여성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시대의 규범을 뒤흔들기로 작정한 페미니스트들은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았다. 2019년 3월8일 낙태죄 폐지 기자회견.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에 도전한 여성들은 ‘나쁜 페미니스트’였다. 페미니스트라면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지금 존경받는 과거의 페미니스트도 당대에는 부도덕하다고 손가락질 당했다. 가부장 체제에 저항하고 사회적 통념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성스러움과 당대의 도덕을 위반했던 페미니스트는 ‘마녀’(witch)로 불리며 비난당했다.

대표적으로 올랭프 드 구주는 프랑스의 권리선언에 여성이 배제되어 있음을 비판하다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뜨개질이나 해야 하는 여자가 노예와 여성의 인권, 동거와 이혼의 권리를 외쳤으니 그야말로 ‘몹쓸’ 여자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19세기 말 영국에서는 반바지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거나 장식 없는 블라우스에 타이를 매고 카페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토론하는 여성은 천박하다고 비난받았다. 이들은 여성에게 주어진 가정이라는 영역의 경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20세기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스메들리는 피임에 관한 문헌을 배포한 혐의로 형을 살았고, 출산조절 운동을 했던 여성들은 ‘불경한’ 성 급진주의자로 낙인찍혔다(실라 로보섬).

페미니스트들은 아예 ‘나쁜 페미니스트’를 선언하기도 하였다. 부정적인 낙인을 긍정적으로 전유하자는 것이었다. 서프러제트 운동의 기수 팽크허스트는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반란자가 되자고 했고, 조 프리먼은 ‘드센년(bitch) 선언문’(1969)에서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드센년’이 되어 이분법적 성별 체제를 변혁하자고 선언하였다. 이들은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게임 규칙”에 저항한다는 이유로 페미니스트들이 욕을 먹어야 한다면 오히려 자랑스럽게 받아들이자고 제안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1920~30년대 집 밖으로 나와 서울 종로 거리를 활보했던 신여성은 ‘퇴폐적’ 여성으로 낙인찍혔고,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카페를 이용하는 여학생은 ‘사치 중독자’로 욕을 먹었다(서지영). 호주제 폐지 운동이 점화되었을 때 유생들은 페미니스트를 상고시대부터 내려오는 불문율을 깨는 ‘부도덕한’ 여성으로 매도했고, 최근의 낙태죄 폐지 운동을 두고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를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여성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대의 규범을 뒤흔들기로 작정했고 그런 점에서 욕을 먹는 것은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희생양 논리’를 넘어서

남성에 비해 형편없는 임금을 받는 여성들은 집에서는 남편의 폭력에, 공장에서는 관리자의 성폭력에 시달리곤 했다. 가정에 유폐된 여성은 교육받지 못하거나 능력이 있다 해도 제대로 된 지위를 받지 못했다. 욕망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욕망의 대상에만 만족해야 하는 삶, 자신의 목소리로 말할 기회가 없는 삶은 말 그대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페미니스트는 이러한 문제가 내 탓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한 여성들이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은 이 세상에서 혼자 잘 사는 길이 아니라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는 가부장 젠더체제에 도전했다.

앨리슨 위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부장 체제는 ‘희생양 논리’(sacrificial logic)에 기반하고 있다. ‘희생양의 논리’는 하나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가 희생할 수밖에 없는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여성은 남성을 위해, 패자는 승자를 위해, 노예는 주인을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 가부장 체제에서 남성은 주체가 되기 위해, 주체의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여성을 열등한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주인이 노예의 노동 없이 주인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점에서 남성이 주체가 되기 위해 여성을 대상화하여 멸시하는 여성혐오의 구조는 전형적으로 ‘희생양 논리’를 전제로 한다.

희생양 논리에 저항하는 나쁜 페미니스트들은 기존의 틀을 그대로 둔 채 그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역전시키는 전략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는 모든 여성의 생존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패자를 희생양으로 하여 승자가 생존하는 논리 안에서 여성도 재력과 능력만 있다면 남성처럼 잘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다른 여성들의 노동을 희생으로 할 때만 잘 살 수 있는 구조라면, 이 구조 아래서 살아남는 것은 ‘여성’이 아니라 능력 있는 ‘나’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페미니스트는 가부장 체제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와 동맹하여 희생양 논리를 강화하고 있음을 비판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아래서 여성은 육아 및 가사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했으며 여성의 일이라고 간주되는 저임금의 핑크 노동(베이비시터, 요양보호사 등)이나 비정규직 노동 등으로 내몰렸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몇몇의 능력 있는 여성들을 대표로 내세웠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적 빈곤, 문화적 멸시, 폭력, 정치적 대표 불능을 여성 개인의 무능력으로 치부하였다.

구주와 같은 자유주의 페미니스트가 여성뿐만 아니라 흑인 노예와 어린이 그리고 노약자의 인권을 생각했던 것은 그들이 여성과 같은 희생양의 논리에 따라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래디컬 페미니스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여성차별이 인종차별과 같은 논리에 기반하고 있음을 정확히 분석하여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아버지의 소유물로 취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같은 희생양 논리에 기반하고 있음을 간파했다. 이후에 페미니즘이 반자본주의, 반인종주의, 성소수자 운동과 연대하게 된 것은 흑인 노예이자 백인 여성의 가정부, 여공 등으로 착취되는 흑인 여성의 경험이 단순히 여성으로서의 억압 경험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쁜 페미니스트들’은 개인으로서의 ‘나’의 위치를 넘어 ‘우리 여성’을 고려하는 방향을 끊임없이 모색했고 이를 위해 희생양 논리에 따르는 세상과 불화했다.

‘나쁜 여자’가 되는 게 페미니즘인가?

최근 유리천장 깨뜨리기 담론과 함께 ‘나쁜 여자’의 키워드가 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세간의 이목은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정치계와 경제계에서 고위직에 오른 여성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여성으로서 남성의 자리를 차지한 만큼 이들은 온갖 욕을 먹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들 역시 희생논리에 기반한 가부장 체제를 뒤흔드는, 세상에 저항하는 ‘나쁜 페미니스트’인가?

나는 이들이 ‘나쁜 여자’일 수는 있어도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불리기에는 부족하다고 본다. 체제변혁 없이 남성의 파이를 되찾아오는 데까지만 관심을 두는 ‘나쁜 여자’는 99퍼센트의 여성을 위해 세상을 변혁하는 데 관심을 두는(낸시 프레이저) ‘나쁜 페미니스트’의 정치학을 퇴색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콘돌리자 라이스는 국무장관에 올라 미국의 적극적인 군사개입을 강조하는 데 열을 올렸고,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 후보는 가정과 혼전 순결을 강조하고 낙태를 반대하는 등 모성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총기 소지에 찬성하였다. 이들은 유리천장을 깨고 고위직에 올랐지만 여성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는 전쟁에 저항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공모했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는 경력의 사다리 정점에 오른 여성 시이오(CEO)로서 성차별을 규탄하는 듯 보이지만 체제의 변화보다 여성의 개인적 선택과 자기계발을 강조한다. 남편과 육아와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하는 그녀의 성공한 모습의 뒤에는 낮은 임금에 돌봄 노동을 하는 이민자 여성이 있다.

이들은 가부장 자본주의 체제, 희생양 논리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들은 남성의 지위를 탈환한 여성들이지만 돌봄 노동자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지위를 고민하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 니나 파워는 페미니즘을 도둑맞았다고 통탄했으며, 낸시 프레이저는 이들이 고작 1퍼센트를 위한 페미니즘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캐서린 로텐버그는 기업 시이오나 유명인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페미니즘 리더 담론을 정의 대신 행복을, 체계의 변화 대신 개인의 자기계발을 강조하여 인적 자본을 최대화하는 신자유주의의 통치술이라고 분석했다.

우리의 페미니즘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 사회에서도 야망 담론을 중심으로 ‘나쁜 여자’가 되겠다는 외침이 들려온다. 이들은 여성이 ‘생존’하기 위해 도덕 따위는 벗어던져야 하다고 강조한다.

몇몇 래디컬 페미니스트는 여자도 얼마든지 부도덕해질 수 있으며, 남자만큼 혹은 남자보다 더 잔인해질 수 있다고 말하면서 빼앗긴 파이를 되찾자고 주장한다. 4비운동(비연애, 비섹스, 비결혼, 비출산)과 탈코르셋 운동을 통해 아낀 돈과 시간을 자기계발에 투자하여 전문가로 성공하자고 독려하기도 한다. 일단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지상의 과제인 이들에게는 신자유주의적 경쟁의 틀을 바꾼다든지 다른 소수자들의 형편을 살피는 것은 사치로 여겨진다. 모든 사회적 소수자를 지지하면서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백인 중산층 여성의 환상’이라고 비판한다. 정치적 올바름은 경력단절을 통해 경제적 위기감을 느껴 보지 못한 사람들의 ‘도덕적 훈계’일 뿐이다.

이들의 불안하고 다급한 목소리는 분명 고위직에 오른 특권층 전문가 집단이나 유명인을 중심으로 부상하는 미국 신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음조와는 다르다. 그러나 이 페미니스트들이 가부장 자본주의와 희생양의 논리를 뒤흔드는 ‘나쁜’ 페미니스트인지, 가부장 체제 안에서 개인의 성공에 매진하는 길들여진 신자유주의 주체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불법촬영과 엔(n)번방을 규탄할 때 이들은 ‘우리 여성’을 위해 가부장을 뒤흔드는 나쁜 페미니스트 같지만, 여성의 생존과 노동자, 이민자, 트랜스젠더, 장애인 등의 여타 다른 소수자의 생존을 대립시킨 채 후자를 ‘적극적’으로 배제할 때는 과연 ‘우리 여성’을 위한 새로운 체제를 고민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개인적으로 열심히 자기계발을 해서 전문가가 되자는 다짐을 주고받을 때는 그냥 신자유주의의 희생양 논리에 길들여진 나쁜 여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한다.

우리의 페미니즘 어디로 가는가? 나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성공한 ‘나쁜 여자’가 아니라 세상에 도전하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길 바란다.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도덕적 올바름만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희생양의 논리를 비판하는 것은 단순한 도덕이 아니라 ‘우리 여성’의 생존을 위한 방향이기도 하다. 희생양의 논리를 그대로 둔 채 여성의 빼앗긴 파이를 되찾아오겠다는 전략은 사실상 현재의 경쟁 시스템에서 능력 있는 여성들에게만 유리하다. 능력 있는 여성이 먼저 성공하여 다른 여성을 이끌자는 전략도 여성 개인의 윤리에 의존하는 방식이다. ‘나쁜 페미니스트’는 희생양 논리를 넘어서는 변혁적 세계에 대한 모색을 함께 해야 한다.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 한국의 페미니즘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강남역 사건 이후 등장한 새로운 페미니즘 흐름 앞에 던져진 질문이다. 페미니즘들 사이의 입장 차이는 점점 분명해지고 있지만 비판적 논의는 사실상 침묵 속에 있었다. 페미니스트 연구자 김은실, 권김현영, 김영옥, 손희정, 이현재가 연속 기고로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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