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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국회가 싸우는 게 문제가 아니라 국회에서 잘 싸우는 게 중요하죠

등록 2020-07-04 15:12수정 2020-07-04 15:52

[토요판] 은유의 연결
박선민 의원 보좌관

17~21대 국회 일한 ‘5선 보좌관’
<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 출간
농민·노숙인 등 목소리 정책화해
국회에서 법안 만들며 보람 느껴

김제로 귀농했다 국회 보좌관으로
일하지 않는 국회 비판 이해하지만
‘의회는 정당끼리 대립·갈등하는 곳’
“삶에 영향을 미치는 법안”에 보람

하위직급 여성, 상위직급 남성
서열화된 국회서 실력 인정받아
“보좌관은 ‘비선출직 정치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해요”

지난 6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5선 보좌관’ 박선민씨는 “정당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의회정치의 본질인 만큼 국회에서는 잘 싸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지난 6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5선 보좌관’ 박선민씨는 “정당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의회정치의 본질인 만큼 국회에서는 잘 싸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정치의 심장부’라 하는 국회의사당 면적은 10만 평이다. 푸르고 드넓은 이곳을 200명의 청소노동자가 관리한다. 잘 정돈된 쾌적한 일터로 출근하는 국회의원은 300명. 그들을 수행하는 보좌진은 2700명이다. 각 의원실에서 함께 일할 동료 9명을 국회의원들이 알아서 채용한다. 그래서 국회 안에는 300개의 회사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박선민(47)은 5선 보좌관이다. 17대 현애자 의원(민주노동당)부터 21대 이은주 의원(정의당)까지 국회의원 5명과 일하며 통칭 ‘진보정당’의 의회정치 현장을 지켜왔다.

‘그것도 여성으로!’라는 말을 붙이지 않을 수 없다. 4급 보좌관의 여성 비율은 8.5%에 불과하다. 남성 구성원이 대다수인 일터에서 여성 노동자로, 거대 양당으로 구획된 곳에서 소수 정당인으로 예민하게 보고 치열하게 배운 것을 그는 최근 <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후마니타스)에 담아 출간했다. 이 책은 대학 졸업 후 김제로 귀농해 애호박 농사 등을 지으며 8년을 살다가 국회로 들어간 그가 몸으로 익힌 ‘16년 차 보좌관의 국회사용설명서’다. 국회 정치 불신의 시대, 그는 왜 냉소 대신 가능성을 이야기할까? 그의 새 일터가 된 이은주 의원실에서 6월17일 박선민 보좌관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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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쁠 때, 아주 바쁠 때, 제일 바쁠 때

―21대 국회가 5월31일에 개원했죠. 근황은 어떠세요?

“임기 시작 때가 아주 바쁜 때 중 하나예요. 물론 바쁠 때, 아주 바쁠 때, 제일 바쁠 때 이렇게 있지만요.(웃음) 이은주 의원이 배정된 행정안전위원회 업무를 준비해요. 노동조합이나 관련 단체와 간담회를 열고 전문가를 초빙해 의원실 내부 세미나도 하고요. 국회의원이 선거 때 내건 공약을 구체적으로 사업화하기 위한 4년을 보좌진이 준비해요. 텃밭을 가는 시기죠.”

―그럼 제일 바쁜 때는 언제예요?

“정기회 때죠. 9월부터 11월, 예산 통과될 때까지.”

박선민 보좌관은 인터뷰 당일에도 오전 9시, 10시, 11시 반, 그리고 오찬 세미나까지 일정 4개를 마치고 오후 2시 인터뷰 자리에 나왔다고 했다.

―이렇게 바쁜데, 책은 언제 쓰셨어요?

“국회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20대 국회 때 되게 컸잖아요. 일하지 않는 국회라고. 나는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어느 장소에 가도 제가 자꾸 국회 대표처럼 변명을 하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정치발전소’라는 곳에서 10년 전부터 강의했던 원고가 있어서 그걸 토대로 내용을 많이 고쳐서 냈어요.”

박선민을 만든 시간
박선민을 만든 시간

―욕을 먹어서 작업에 탄력이 붙은 거네요.

“네, 막판에. 국회에 대한 변명?”(웃음)

―‘국회는 왜 맨날 싸워?’라는 질문은 정치의 본질을 간과한 거라고 책에 쓰셨죠. ‘의회는 본질적으로 정당끼리 대립하고 갈등하는 곳이다’라고.

“네. 싸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잘 싸우는 게 중요하죠. 또 제가 보면 국회가 일도 많이 하거든요. 토론회가 많아서 간담회실을 예약하기 힘들 정도예요. 일을 양적으로 많이 하는데 정말 그게 질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잘 다루고 있는가는 저도 회의적이고, 그런 면을 국민들이 알아보신 거 같아요.”

―삶의 현장이랑 좀 더 밀접한 연결 통로가 필요하겠네요.

“그게 굉장히 중요해요. 개인의 목소리를 저희가 다 대변할 수는 없어요. 노조나 정당 같은 결사체가 그 역할을 해야죠. 집약된 목소리를 의회 안에서 정책화하는 게 정치인 본연의 업무인데, 그 과정이 사라져버린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장 평등하게 반영할 수 있는 장이 ‘의회’라는 것. 그 확고한 믿음이 박선민을 국회로 이끌었다. 이전 직업은 농부다. 농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 1년간 일했다. 아예 농사를 지으려고 김제로 귀농을 한 게 1996년. 그 무렵 농산물 수입 개방이 시작됐다. ‘뭘 하든 못 먹고 살겠어?’라는 마음으로 갔지만 8년 만에 농가 부채만 몇억 대가 됐다. 2004년 1월 정부는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을 맺겠다고 했고 국회는 비준 절차에 동의했다. 성난 농민들의 상경투쟁 대오에 그도 있었다. 그러나 뉴스에는 시위로 인한 교통체증만 짧게 보도됐다. 이 사건으로 그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농민들 이야기를 도시 사람에게 들려주려면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걸어야겠구나.’ ‘국회 안에 농민 편을 들어주는 국회의원은 단 한 사람도 없구나.’

그해 치른 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농민들은 민주노동당에 대대적으로 입당했고 그 결과 노회찬, 단병호, 강기갑 등 10명의 후보가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그때 당선된 제주 여성 농민 출신 현애자 의원이 보좌관을 수소문하던 중 그가 낙점된 것. 박선민은 이후 18대 고 곽정숙(통합진보당), 19대 박원석(진보정의당), 20대 윤소하(정의당) 의원 보좌관을 연임했다.

―다섯 번을 각각 다른 의원과 일했어요. 흔한 경우는 아닌 거죠?

“4년 임기를 한 의원님과 보낸 건 자부심이 들어요. 보좌관이 중간에 많이 교체되거든요. 다섯번 다 초선 비례의원과만 일을 했는데 그건 저희 ‘진보정당’의 한계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이은주 의원실에선 어떻게 일하게 된 거예요?

“이은주 의원님이 출마를 결심하면서 저한테 국회 업무 전반에 대해 가르쳐달라고 하셨어요. 이분은 공부하면서 시작하시는 분이구나, 저도 호감을 가졌고요.”

정의당 비례 5번으로 당선된 이은주 의원은 서울지하철공사에서 역무원과 노동조합 활동가로 27년간 일했다. 성균관대 재학 당시 친구였던 김귀정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사회 운동에 꾸준히 참여해오다가 정치에 나섰다고 그가 전했다.

―박 보좌관님은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소명을 갖고 국회에 들어왔잖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입법 사례가 있다면요?

“18대 국회 때 만든 ‘노숙인 지원법’(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을 꼽아요.”

―어떤 법이죠?

“이 법이 있기 전에는 노숙인을 격리하고 시설로 보내는 정책 위주였어요. 법 제정 후에는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이 생겼어요. 쪽방 주거비 지원, 일자리 연결 같은 걸 지방자치단체가 하게 됐죠.”

―이 법안에 당사자의 목소리를 어떤 식으로 반영한 거예요?

“그때 관련 단체랑 저희가 ‘홈리스 1천명 서명운동’을 했어요. 1531명이나 동참했고, 국회 앞에서 노숙인 80여명이 모여서 청원인 대회도 열고, 동자동 쪽방촌 공원에서 현장설명회도 하고. 노숙인 당사자분들 목소리를 직접 듣고 같이 만들어갔다는 것이 가장 보람찼어요.”

―이런 과정에서 보좌관은 어떤 역할을 해요?

“사람들은 법안 발의와 통과만 보지만, 법안 발의 전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법안을 성안하고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모든 과정을 보좌관이 해요. 이견이 나오면 협의하고 조율하고 행정부를 설득하는 일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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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목소리 들리면 무조건 “비서관”

국회는 직급 사회다. 보좌진 내에도 서열이 있다. 보통 국회의원 1명에 보좌진은 9명인데 4급 보좌관 두명, 5급 비서관 두명, 6급~9급 비서 각 한명이 팀을 이룬다. 그중 4급 보좌관은 법안 발의, 정책 질의, 상임위 활동 관련 자료 준비, 대외 업무 등을 맡는다. 2020년 기준 4급은 남성 비율이 90% 이상. 8급과 9급은 60% 이상이 여성이다.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국회도 여성이 주로 낮은 직급에 분포됐다.

―4급 보좌관 중 여성이 소수이다 보니 일하면서 겪는 문제가 있을 것 같아요.

“19대 국회 때 기획재정위원회에 들어갔거든요. 상임위원회는 장관이랑 정부 부처 국실장이 앉고 의원들이 앉고 뒤에 보좌관이 배석하는 구조예요. 근데 상임위장 전체에서 여성이 딱 두명 있었어요. 경제를 다루는 데는 특히 그래요.”

―총 몇명이었는데요?

“50여명에서 2명이었는데, 저랑 당시 김현미 의원님이었어요.”

국회의 원구성 시에도 여성 의원은 보건복지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로 쏠린다. 박 보좌관은 12년을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실에서 일했다.

“의원실에서 전화를 받을 때 ‘예, 박선민 보좌관입니다’라고 해도 상대편은 여자 목소리면 무조건 습관적으로 ‘비서관님’이라고 해요. 정부 부처에서도 그러니 오죽하겠어요. 또 의원실까지 찾아오는 외부자나 관계자는 그래도 국회 내부를 좀 아는 분들이거든요. 제가 사무실 제일 안쪽 보좌관 자리에 앉아 있어도 무조건 나이 든 남성한테 가서 인사해요. 보좌관인 줄 알고요. 저는 그렇게 오시는 분들은 인사 안 해요. 저도 무시.”(웃음)

―의원 갑질도 언론에 종종 보도돼요.

“제가 일한 의원실은 진보정당 소속이니까 의원들이 스스로 그러지 않으려고 많이들 노력하세요. 근데 국회 안에서 그렇지 않은 정치인들은 너무 많죠.”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지금도 퇴근할 때 주차장까지 나가서 인사해야 하는 의원실도 꽤 있어요. 가방 들어주고 승용차 문 대신 열고 닫고…. 그걸 의전이라고 생각하죠. 의원 자신은 환경을 생각한다고 텀블러 들고 다니는데, 텀블러 설거지는 보좌관을 시키고. 되게 모순적인 거죠. 사소하지만.”

―보좌관이 고용이 불안정하잖아요. 금태섭(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보좌관이 바뀌지 않는 것만으로도 ‘꿈의 의원실’이라고 했다던데요. 국회의원 ‘면직사유서’ 한 장이면 바로 해임되고.

“선거 때 전부 집에도 못 가고 되게 고생하잖아요. 선거 끝난 다음 다 모아놓고 보좌진 전원 교체하겠다, 이런 경우가 재선된 분들 중에 있고요. 그런 게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문제 같아요.”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장기근속을 하셨어요. 박 보좌관의 장점이 뭘까요?

“열심히 하는 거? 책도 쓰고.”(웃음)

―더 구체적으로 자랑해주세요.

“제 판단을 많이 신뢰해주시는 것 같아요. 국회에서 오래 일을 했고, 또 단호한 면? 여론이나 상황에 잘 흔들리지 않으니까. 의원님이 싫어하실 수도 있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하는 사람.”

박선민 보좌관이 6월17일 국회의사당 본관을 배경으로 서 있다. 그는 18대 국회 때 만든 ‘노숙인 지원법’을 가장 기억에 남는 입법 사례로 꼽았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박선민 보좌관이 6월17일 국회의사당 본관을 배경으로 서 있다. 그는 18대 국회 때 만든 ‘노숙인 지원법’을 가장 기억에 남는 입법 사례로 꼽았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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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갈등을 잘 다루는 게 정치

천직으로 보이는 그의 보좌관 생활에 위기가 찾아온 때는 10년 차 즈음이다. 2015년 세월호 사건으로 청와대 앞에서 정의당 의원들이 단체로 단식농성을 했다. 정치 안에서 풀어내지 못하고 다시 또 거리에 나온 상황이 괴로웠던 그는 오랜 고민 끝에 “딱 마음먹고” 사표를 제출했다. 19대 박원석 의원 보좌관직에서 2년 반 만에 하차했다. 1년 반을 쉬고 다시 20대 국회로 복귀했다. 세 아이 양육을 위한 생계비 마련도 시급했지만, 정치를 쉬면서 정치에 대한 열망이 선명해졌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국회구나. 이 일이 나한테 제일 잘 맞고 여기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구나”라고 깨달았다.

―정치에 어떤 매력이 있는 거죠?

“법안을 만들고 예산을 편성하고 그걸 통해 작지만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바로 영향을 미치는 거요. 그게 굉장히 두려운 일이거든요. 무서워요, 항상. 근데 잘해서 성과가 나면 너무나 보람차요.”

―선출직 의원을 하면 더 힘이 생기는데요?

“제가 선출직을 안 나오는 100가지 이유가 있는데, 선거운동을 못 한다, 모르는 사람이랑 밥 못 먹는다, 악수 못 한다 이런 거요.”(웃음)

―와, 준비된 답변!(웃음) 더 큰 정당에서 일해보고 싶은 생각은요?

“정당을 이동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정부 운영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정당 입장에서는 교섭단체가 되고 싶고, 개인적으로는 행정 부처의 장관 보좌관이 될 수도 있고, 청와대로 갈 수도 있고. 행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실제로 정부를 운영하는 일에 참여하는 거. 좀 다른 입장에서 직접 정치에 참여해보고 싶은 꿈은 있어요.”

―당장 21대 국회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를 뭐라고 보세요?

“차별금지법이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같은 구체적인 입법 과제는 당에서 많이 말씀을 하시니까. 저는 양극단으로 갈라져버린 정당이 다시 모여서 갈등을 다뤄야 하는데 지금 만날 기회가 주어지지 않잖아요. 여당이 좀 더 포용적인 자세를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힘으로 밀어붙이면 사실 그건 쫓아내는 거거든요.”

―일단 만나야 한다?

“남북도 만나야 하고.”(웃음)

―어떤 면에서 정치가 자기편을 만드는 일이잖아요. 설득의 기술이 있으신가요?

“일단 상대 이야기는 다 들어야 하는 것 같아요, 끝까지. 그러면 진짜 타당성 있는 것도 있거든요. 그런 건 양보를 해야죠. 그래야 그다음에 타협 지점이 서로 찾아져요. 그냥 제 걸 먼저 다 얘기하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의견이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는 거, 어렵죠.

“처음엔 그걸 못했어요. 저희 주장이 옳은 것 같아서요. ‘아니, 왜 이걸 몰라? 현장은 이렇단 말이야. 왜 약자들의 삶을 모르니?’ 그런 이야기를 하고 ‘돈 때문에 못 해?’ ‘돈이 뭔데?’ 이렇게 자꾸 화를 냈는데, 그게 별로 효과적이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주장을 펴는 건 좀 천천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얘기를 하다 보면 타협 지점이 나오기도 해요.”

―박 보좌관님 말씀 듣다 보니 농사랑 정치가 비슷하다는 느낌이 문득 들어요. 씨 뿌리고 다지고 기다린다는 점에서요. 농사 경험이 정치에 끼친 영향이 있다면요?

“하나는, 뭘 해도 그보다 힘들진 않아요.(웃음) 농사일은 너무 힘들어서. 제가 육체노동에 대해서 고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처음엔 환상을 가졌죠. ‘땅은 정직하다. 일하는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근데 그게 경제적으로 연결이 되지는 않죠. 그래서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계획을 세워도 빈곤해질 수 있구나, 사회안전망이 있어야 되겠다.’ 그걸 생활 속에서 여실하게 느꼈어요.”

_______
의원과 보좌관은 상보적 관계

그는 일상의 문제를 의회의 과제로 연결하는 본능적인 감각이 있는 듯했다. 보좌관도 정치인이구나, 국회의원처럼 의회정치의 한 축이구나 깨닫자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그럼 국회의원이 하는 정치와 보좌관이 하는 정치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갑자기 당일에 상임위 전체회의 개최 통보가 와요. 회의에 참여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빠르게 결정을 해야 하죠. 다른 의원실의 의견을 듣고,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여, 참여할 경우에 대비한 질의문과 참여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발언문을 모두 작성해놓고, 의원님께 보고를 드립니다.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준비해놓는 거죠. 선출직 정치인은 보이는 곳에서, 보좌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한다고 보시면 돼요. 그래서 저는 보좌관을 ‘비선출직 정치인’이라고 말해요.”

국회의원과 보좌관은 상보적 관계다. 서로가 제 존재 이유다. 그래서 스타 국회의원은 나올 수 있지만 정치는 혼자 할 수 없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뛰어남’이 아니라 ‘개인의 부족함을 보완할 팀’”이라고 그는 정리한다.

오늘도 국회가 시끄럽다면 그건 사회적 갈등이 국회 안으로 들어왔다는 증거다. 건강한 심박동 소리다. 이 소란을 통과하고 나면 또 누군가의 삶의 자리가 생기고 숨 쉴 구멍이 나는 것을 박선민 보좌관은 많이 보고 먼저 본 사람이다. 민주주의는 세력의 확장보다 세력의 조직화가 중요하다는 것, 부디 결사체를 조직해 국회를 잘 활용하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그가 덧붙인다. “단, 의원실로 전화는 너무 많이 하지 마세요. 일을 못 해요.”(웃음)

녹취 홍혜원

▶은유: 글 쓰는 사람. 글쓰기 수업도 한다. <글쓰기의 최전선> <다가오는 말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등을 펴냈다. 2005년부터 여러 매체에 칼럼을 쓰고 인터뷰를 해왔다. 성폭력 피해 여성, 국가폭력 피해자, 성소수자, 산재 노동자까지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기록했다. 사람을 살게 하는 말을 모으고 나누는 인터뷰를 하고 싶다. ‘은유의 연결’은 4주에 1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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